많은 것을 가진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는 말이 참으로 빈곤하다. 강용석 의원은 정말 그런 말들을 하며 학생들과 저녁을 먹었을까? 그랬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온 것일까? 그가 가진 권력과 부와 명예가 하찮아 보인다.
“사실 심사위원들은 내용은 안 듣는다. 얼굴을 본다.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로 이뤄진 구성이 최고다. 그래야 시선이 집중된다.” 저렇게 뻔뻔한 말을 솔직한 말이라 생각해 내뱉는, 생각 없는 사람이 심사위원인 토론회는 그 자체로 개그의 소재 아닌가. 개그라면 차라리 웃고 넘겼을 텐데! 개그가 아닌 현실이라면 그런 줄도 모르고 진지하게 참여한 학생들은 얼마나 모욕적이겠는가.
옛날 어른들이 왜 나쁜 소리를 들었으면 귀를 씻으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나쁜 것, 무례한 것이 익숙해지고, 거짓된 것에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까지 들먹이며 예쁜 것이 권력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유혹의 에너지임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라면?
사실 요즘 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성형왕국인지 그 원인을 본 것 같아 힘이 빠지기도 한다. 타고난 품위를 버리고 화면이 요구하는 대로 얼굴과 몸을 만들려 발버둥치게 만드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선 이미 아름다움이 참, 많이도, 그리고 깊이도 오염되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갑순이만이 알고 있는 갑돌이의 아름다움은 갑순이의 달을 신비하게 했고, 용왕이 알고 있는 심청이의 아름다움은 연꽃을 피워 올렸다. 그런데 요즘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풍문에 맞추고 화면에 맞추고 자본주의적 고정관념에 맞춘다.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외면하면서 소심해지거나 무례해지거나 뻣뻣해지거나 하는 것이다.
무굴제국의 최고의 권력자였던 악바르 대제를 아는가? 그는 인도 전역을 통치했던 이슬람 제국의 황제였다. 그 악바르가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여자가 있었다. 힌두교를 신봉했던 아메르 왕국의 조다 공주였다. 조공이 바쳐지듯이 악바르의 부인이 된 그녀는 유일신 알라를 믿는 악바르에게 시집을 오면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했다. 그녀의 왕국이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녀는 오롯하게 두 가지 조건을 내걸면서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악바르를 남편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첫째는 그녀의 종교를 인정해달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그녀의 처소에 그녀의 신상을 모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황후’가 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를 지키며 살고자 했던 그녀는 그래서 아름다웠다. 진짜 아름다운 것은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의 태도에서 나온다. 조다처럼. 우리는 그것을 품위 혹은 품격이라고 한다.
이번에 강용석 의원은 그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리라. 무엇보다도 산산조각 나야 하리라. 산산조각난 디오니소스가 죽음 이후에 다시 짜 맞춰져 새롭게 부활한 것처럼 그는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그렇지 않고 재수 없이 걸렸다고 분노하고 끝나면 그 빈곤하고 왜곡된 세계관은 더욱 더 비틀린 채로 유지되지 않겠는가.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