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마라도나(가운데)는 당시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왼쪽)의 방한 기간 중 한국을 찾아 대표팀을 상대로 보카 주니어스 유니폼을 입고 ‘재기전’을 펼쳤다. 오른쪽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마라도나는 축구계 역사를 통틀어서도 ‘넘버 원’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선수시절 세리에A 중하위권을 전전하던 나폴리에 2회의 리그 우승을 안겼다. 나폴리 역사상 2회 우승을 전부 마라도나가 만들어낸 것. 그의 고국 아르헨티나와 나폴리를 포함한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는 그를 신으로 섬기는 ‘마라도나교’도 존재한다.
마라도나의 최고 업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1986 멕시코월드컵 우승이다. 7경기 5골 5도움으로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잉글랜드와 8강에서는 ‘신의 손’ 사건과 동시에 홀로 2골을 넣으며 영웅에 등극했다. 핸들링 반칙으로 1골, 약 70m 단독 드리블 이후 1골로 축구 역사상 최악의 골과 최고의 골을 1경기에서 3분 간격으로 기록했다.
그의 축구 인생에 빛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수생활 말년,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양성 반응이 나오기도 했고 마약 투약도 적발됐다. 선수생활 이후에는 마약에 중독돼 심장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극성 파파라치를 향해 총을 쏘는 등 직설적 감정 표현으로, ‘축구의 신’이기도 하지만 ‘악동’으로 불리는 일도 잦았다.
마라도나는 2017년 방한 당시 작은 이벤트임에도 열정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마라도나는 한국 축구와도 인연이 깊다. 그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1954 스위스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출전한 대회 본선(1986 멕시코월드컵)의 첫 상대였다. 아르헨티나와 대한민국의 첫 A매치이기도 했다. 당시 대표팀은 박창선이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을 기록했지만 3골을 내주며 패배했다. 마라도나는 90분 풀타임 출전하며 3골에 모두 관여했다.
마라도나는 1995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2002 월드컵 유치에 사활을 걸던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 방한 일정에 맞춰 마라도나가 소속된 아르헨티나 명문 보카 주니어스가 초청된 것이다. 마라도나와 보카는 김병지, 하석주, 홍명보, 황선홍 등이 뛰던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치러 2-1 승리를 거뒀다. 당시 경기는 마라도나의 약물 관련 징계 이후 첫 공식 경기였기에 ‘마라도나 재기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방한 경기와 함께 마라도나는 2002 월드컵 유치전에서 한국을 지지해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는 그의 한국에 대한 각별함보다 ‘축구황제’ 펠레에 대한 반발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 펠레와 비교 대상이 됐던 마라도나는 펠레가 일본을 지지하자 그 반대로 한국을 지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첫 만남 이후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축구가 마라도나와 맞섰다. 맞대결을 펼친 인물이 허정무 감독이었기에 더 많은 이목이 쏠렸다. 이들은 24년 전 선수로 월드컵 무대에서 경기를 펼친 이후 감독으로 재대결을 가진 것이다.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육탄전을 펼친 허 감독의 ‘태권수비’가 회자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24년 전 3-1에 이어 이 경기에서 4-1 승리를 거뒀다.
2017년 3월에는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 조추첨식에 참가하기 위해 다시 내한했다. 아르헨티나 후배 파블로 아이마르, 신태용 감독, 대회 홍보대사인 배우 류준열 등과 이벤트성 풋살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작은 이벤트였지만 따뜻한 팬서비스로 호평을 받았다. 조추첨식에서는 마라도나가 직접 뽑은 공에서 한국이 나오며 아르헨티나와 함께 A조에 배치됐다.
마라도나의 전 소속팀 나폴리는 젠나로 가투소 감독을 포함한 선수단이 마라도나 사망 이후 첫 공식 경기에서 등번호 10번과 그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섰다. 사진=나폴리 페이스북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는 마라도나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였던 나폴리는 구장명에 그의 이름을 넣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모든 축구대회에서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르헨티나는 정부가 나서 3일간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많은 축구팬, 관계자들의 애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축구의 신’ 마라도나의 존재는 영원히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