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김종인 비대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레이더부터 먹통
박근혜 정부 때 최종 무산된 ‘가덕도 신공항’ 방안을 민주당이 다시 꺼내들 것이라는 얘기는 많이 나왔었다. 문재인 대통령 정치적 근거지가 부산이란 점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버리지 못하는 PK 민심을 여권이 외면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었다.
민주당의 ‘가덕도 프로젝트’는 지난해 2월부터 불이 당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부산을 찾아 지역 경제인과의 오찬 간담회를 하면서 “부산 시민들이 신공항에 대해 제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부산과 김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남권 5개 광역단체가 연관된 것이어서 정리되기 전에 섣불리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면서도 “결정을 내리느라 사업이 더 늦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사업이 더 늦어져선 안 된다”라는 발언은 ‘정부가 뭔가 해야 한다, 할 것이다’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 등 여당은 물론 정부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3월 이낙연 당시 총리는 국회에서 “공항에 대한 조정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고, 같은해 6월 20일 국무총리실 주관의 재검증 방침을 전격 도출했다. 이어 2019년 12월 6일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출범했고, 이들은 지난 11월 17일 사실상 김해신공항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표를 내놨다.
여당 입장에서 가덕도 신공항은 ‘오거돈 성추행 사건’으로 수세에 몰린 민주당을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구해줄 수 있는 버릴 수 없는 카드였다. 실제 민주당은 검증위가 발표한 지 열흘도 지나기 전인 11월 26일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을 발의했다. 향후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제동걸기 시도가 더 이상 없도록 ‘대못’을 박아놓자는 의도가 법안에 녹아 있다.
이 같은 여당과 정부의 일사불란한 움짐임을 볼 때 ‘급조된 계획’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지금까지 레이더망을 가동하지 못했다. “설마 설마”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의 푸념이다.
“부산·경남 의원들의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찬성 의견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검증위 활동을 대놓고 비판할 수 있는 압박 동력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검증위가 활동한 1년여 동안 제대로 된 대응 조치를 내놓지 못했고, 오거돈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여당이 가덕도 신공항을 세게 밀어붙일 것이라는 당내 의견은 제기됐지만 대응책은 만들지 못했던 것 같다. 당 지도부는 물론, 대다수 구성원들이 이 부분에 대한 경계에 소홀했다.”
#관제탑도 우왕좌왕
외부에서 접근하는 공격을 차단하고 당 내부를 통제하는 관제탑 격인 국민의힘 투톱은 민주당이 띄운 ‘가덕도호’가 날아오르자마자 혼비백산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검증위의 김해신공항 원점 재검토 발표가 나온 11월 17일 당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는 엇갈린 의견을 노출했다.
대구를 지역구로 둔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정부의 김해 신공항안 폐기와 가덕도 신공항 추진 움직임에 대해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덕을 보려고 변경을 추진하는 것 같다”고 비판하면서 이를 ‘월성 1호기의 판박이’로 규정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국책 사업을 함부로 절차에 맞지 않게 하는 건 감사를 받아야 하고, 절차가 점검돼야 한다”며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주 원내대표와 결이 달았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감사가 필요하다는 데) 비슷한 생각”이라면서도 “새로운 공항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면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강구를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사실 김종인 위원장은 가덕도 신공항이 몰고 올 당내 자중지란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는 앞서 11월 11일 부산을 방문해서도 “정부가 결론을 낸다면, 부산 신공항에 대해 당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승리를 마지막 성취라고 밝혀왔던 김 위원장인 만큼 TK와 PK의 균열 갈등은 보지 못한 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바라는 PK 표심만 인식한 것으로 비쳐졌다.
당 투톱의 의견이 나뉘는 사이 당 내부는 난리가 났다. 뒤늦게 김종인 위원장이 11월 19일 기자들과 만나 “당내에 특별한 이견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가덕도 신공항으로) 확정된 사안도 없다”며 수습에 들어갔지만, 이미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상태였다.
11월 20일 국민의힘 부산지역 국회의원 15인이 공동발의한 ‘부산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제출하고 있는 하태경(오른쪽) 박수영 의원.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부산 의원 15명 전원이 11월 20일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신속한 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내용의 특별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주 원내대표가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의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오거돈 성추행 선거에서 신공항 선거로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공식 규정한 직후 일어난 일이었다.
원내사령탑의 경고를 무시하면서 항명에 준하는 돌발행동이 일어나자 주 원내대표는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주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정권과 민주당이 부산시장 선거를 위해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던진 이슈에 우리가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에게) 강하게 질책도 했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의원은 “김해신공항 좌절시키고 가덕도에 공항 만들어준다는 얘기는 집권세력이 국민의힘 갈라 치려고 쇼하는 것인데 여기 넘어간다니 정말 답답하다”고 발끈했다. 박인숙 전 의원 역시 11월 21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이 던진 독약 묻은 미끼를 덥석 물고, 서로 원수가 돼 싸운다.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는 다 잊히고, 도대체 뭐 하는 짓거리들인가”라고 질타했다.
#솟아날 구멍은?
당내에서는 순리대로 풀어 가면 정부여당의 갈라치기 전략이 곧 탄로 나고, ‘가덕도는 그림의 떡일 뿐’이라는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는 의견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중앙부처 관료 출신으로 행정을 잘 아는 의원들을 비롯해, 공항정책을 오래 다뤄오며 동남권 신공항 역사를 꿰고 있는 원외 인사들까지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들은 여당의 ‘가덕도 띄우기’에 반격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국민의힘 경남도당위원장인 윤한홍 의원이다. 윤 의원은 창원시 마산회원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지만 가덕도에 적극적인 여타 PK 의원들과는 다른 소신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힘 경남도당은 최근 김해신공항이 사실상 백지화 상태에 들어가자 “안전 절차 확장성 등 이런저런 이유를 들고 있으나 모두 핑계일 뿐이다. (부산시장 보궐) 선거 유불리만 감안한 포퓰리즘 정치가 국가 미래와 영남 주민들의 염원을 집어삼킨 것”이라는 공식논평을 냈다.
윤 의원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서울시에서 공무원 생활을 오래 했고, 청와대에서도 근무한 바 있다. 경남도 행정부지사를 지내는 동안 동남권 신공항이 최종적으로 김해국제공항 확장으로 결론 나는 과정도 직접 목격했다.
국회의원 재임기간 대부분을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보내면서 동남권 신공항 추진 과정을 지켜본 이학재 국민의힘 인천시당 위원장도 11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가덕도 신공항은 절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가덕도공항은 지난 2016년 공항설계 분야 세계적인 전문기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수행한 타당성 검토에서 큰 점수 차이로 3위를 했고, 2위는 밀양이었으며 김해신공항이 1위를 해 그동안 공항 건설이 추진돼 왔다. 그런데 민주당은 과학적, 기술적 근거도 없이 김해신공항을 무산시키고 가덕도신공항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부산 시민, 나아가 국민을 우습게 보고하는 짓거리다”라고 비판했다.
중앙부처 관료 출신의 국민의힘 한 의원은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김해신공항을 검증한 검증위의 판단 자체가 결정권한이 없는 자문일 뿐이다. 법적 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검증위 판단을 국토부 공무원이 그대로 인용하면 추후 정권이 바뀌었을 때 직무유기나 직권남용 소추까지 당할 수 있다. MB(이명박) 정권 4대강 사업도 엄청난 강도의 수사가 국토부와 기재부 최고위 결정 라인까지 들어갔다. 하지만 법적 절차를 지켰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이미 꼴찌로 판정 났던 가덕도를 새 공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세밀한 절차가 있어야 한다. 특별법을 만든다고 한들 추진하는 공무원들이 자리를 내걸고 모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라고 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