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케이팝 열풍을 이끄는 글로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마침내 그래미에 입성하자, 미국 음악전문 매체 빌보드가 내놓은 평가다.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상이자 그만큼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그래미가 결국 BTS에 손을 내밀었다. 그래미 어워드를 주관하는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가 11월 25일(한국시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후보를 발표하고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BTS를 지명했다. 이로써 BTS는 그래미 63년 역사상 처음 후보로 지명된 한국 대중가수로 등극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상이자 그만큼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그래미가 결국 BTS에 손을 내밀었다. 그래미 어워드를 주관하는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BTS를 지명했다.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래미 어워드는 빌보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와 더불어 ‘미국 3대 음악상’으로 꼽힌다. 전통성이 가장 강한 그래미에서 그동안 한국 클래식이나 국악 장르의 음악인이 후보에 지명된 경우는 있지만 대중음악 가수가 후보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그만큼 장벽은 높았고, 앞서 빌보드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수상 성과를 거뒀던 BTS에게도 그래미는 ‘꿈의 무대’로 통했다. 후보 지명 직후 BTS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힘든 시기, 우리의 음악을 들어주고 공감해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며 “그래미 후보 아티스트라는 기적을 만들어준 건 아미(팬클럽) 여러분”이라고 인사했다.
#방탄소년단 그래미 입성…케이팝 새 역사
BTS는 최근 새 앨범 ‘BE’를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로 공감을 얻고 있다. 새 앨범 출시 시기가 마침 그래미 후보 발표 시기가 맞물리면서 그 결과에 시선이 집중돼왔다. 실제로 11월 20일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RM(본명 김남준)은 “(그래미 진출은) 늘 다음 목표로 언급하던 것 중 하나이기에 긴장하고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BTS는 그동안 ‘빌보드 양대 차트 1위’ ‘그래미 시상식 참석’ ‘스타디움 투어’ 등을 목표로 두고 하나씩 이뤄왔다. RM의 말처럼 그래미 후보 진출은 BTS가 이루려던 마지막 목표나 다름없었다.
BTS는 올해 8월 처음으로 영어 가사로 발표한 싱글 ‘다이너마이트’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또 한 번 증명했다.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했다. 이를 통해 그래미 후보 지명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평가도 받았다. 올해 2월 발표한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 : 7’ 역시 BTS에 힘을 실어주면서 이번 후보 지명이 가능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BTS가 후보에 오른 ‘베스트팝 듀오·그룹 퍼포먼스’는 2012년 신설된 그래미 팝 장르 부문 가운데 하나다. 그래미의 4대 본상인 ‘제너럴 필드’에 속하지 않지만, 한국 가수는 물론 아시아 가수로도 처음 후보에 진출했다는 사실에서 의미가 크다. BTS는 2021년 2월 1일 열리는 시상식에서 저스틴 비버의 ‘인텐션’,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레인 온 미’, 테일러 스위프트와 본 이베어의 ‘엑사일’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의 히트곡과 겨룬다.
#케이팝 위상에도 그래미 입성 왜 어려웠나
BTS는 그동안 케이팝을 넘어 세계 음악 시장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왔다. 2017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 소셜 아티스트’ 수상을 시작으로 지난해 본상인 ‘톱 듀오·그룹’ 수상의 저력을 이어왔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도 2018년 ‘페이보릿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서 ‘페이보릿 듀오·그룹’ 등 3연속 수상 역사를 써왔다. 오직 하나, 그래미의 문만 견고했다.
1959년 시작한 그래미는 음악 전문가 단체인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수상자를 뽑는다. 전통을 앞세워 상업적인 성과보다 음악적 성취에 무게를 두는, 음반업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수치를 기반으로 후보와 수상자를 뽑는 빌보드나 팬들의 투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와도 그 차이가 뚜렷하다. 영화예술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수상작과 수상자를 뽑는 미국 아카데미시상식과 비슷하다. 아카데미시상식이 백인 남성 위주의 수상자 선정으로 줄곧 비판받았던 것처럼 그래미 역시 흑인 아티스트나 여성 뮤지션에 유독 인색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래미도 최근 들어 변화를 시도했다. 2019년 6월 방탄소년단 멤버를 포함해 1186명의 신규 회원을 받았고, 이들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 등 154명의 전문가도 회원으로 새롭게 위촉했다. 신진 세력 영입을 통해 ‘변화’를 예고한 셈이다. 여성 회원의 비중도 기존 26%에서 49%로 늘렸다. 성별과 인종에 대한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관심은 과연 본 시상식에서 BTS가 수상할지 여부로 쏠린다.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는 12월 7일부터 한 달 동안 최종 투표를 진행한다. 수상자는 내년 2월 1일 열리는 제63회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에서 공개된다. 사진=그래미 어워드 공식 페이스북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래미의 보수성이 BTS의 후보 지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최근 미국 팝 시장을 주도한 흑인 음악가들이 그래미로부터 소외 받으면서 촉발된 ‘백인 중심’이라는 비판이 BTS에게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다양성 확보와 대중 정서를 반영한 후보 선정에 어느 때보다 공을 들일 수밖에 없던 그래미가 올해만큼은 BTS의 성과를 지나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외신 반응도 뜨겁다. AP통신은 “케이팝 제왕이 최초로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며 “그래미를 꿈이라고 말했던 BTS의 꿈이 이뤄졌다”고 소개했다.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버라이어티‘도 “BTS가 그래미 후보 지명에 환호했고, 팬클럽 ‘아미’도 케이팝의 전설에 축하를 보냈다”고 썼다. 로이터는 “케이팝 센세이션 BTS가 첫 번째 그래미 후보로 지명되면서 한국 그룹으로서 큰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1개 부문 후보에 그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매체도 있다. USA투데이는 “현재 BTS보다 더 큰 성과를 이룬 그룹이 없는 데도 1개 부문 후보에만 오른 이유가 궁금하다”며 “미국 주류 음악에서 케이팝의 존재감을 그래미도 인정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이제 관심은 과연 본 시상식에서 BTS가 수상할지 여부로 쏠린다.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는 12월 7일부터 한 달 동안 최종 투표를 진행한다. 수상자는 내년 2월 1일 열리는 제63회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에서 공개된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