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77)이 내각을 구상하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11월 23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국가안보팀의 핵심 구성원을 발표했던 바이든은 이 자리에서 “미국이 돌아왔다! 우리는 세계를 다시 이끌 준비가 돼있다”라고 선언했다. 지난 4년 동안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망가졌던 미국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그동안 워싱턴의 ‘아웃사이더’를 자칭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곳곳에 비전문가 내지는 신선한(?) 인물을 배치했던 것과 달리 바이든은 시작부터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반트럼프’를 선언한 듯 보란 듯이 워싱턴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 출신의 베테랑들을 두루 배치하면서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의 차별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백인 남성들이 주를 이뤘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다양한 인종과 배경, 그리고 성비 균형을 고려한 내각을 꾸리게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핵심 참모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바이든 정부가 앞으로 추구할 방향을 유추해볼 수 있다.
조 바이든의 외교안보 분야 인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국가정보국(DNI) 국장으로 지명된 에브릴 헤인스다. 역대 최초로 여성 국가정보국 국장이 탄생할 전망이다. 사진=AFP/연합뉴스
바이든은 외교안보 분야의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미국은 ‘힘의 모범’이 아니라 ‘모범의 힘’으로 세계를 이끌어나갈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외교 부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자신의 ‘동맹 리더십’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 밖에도 바이든은 ‘미국 우선주의를 버리겠다’ ‘미국다운 행정부를 만들겠다’ ‘미국의 다양성을 반영해서 정책을 결정하겠다’라고 말하는 등 기자 회견 내내 ‘반트럼프’ 의사를 뚜렷이 밝혔다. 지금까지 발표된 바이든 정부의 인선이 다소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종이다. 백인은 물론이요, 흑인과 아시아계 가릴 것이 두루 발탁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최대한 여성 참모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도 엿보인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 출신의 관료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지난 8년간 백악관에서 호흡을 맞췄던 인물들과도 다시 힘을 모을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 정부의 참모들과 달리 비교적 경험과 경력이 풍부한 전문직 인사들로 구성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와 관련,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바이든 행정부에는 각 부처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들이 대거 포진할 예정”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가리켜 ‘경험 많은 전문가들의 복수’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이제 트럼프식의 충동적인 정책 입안은 끝났다”고도 전했다.
한편으로 미 언론들은 바이든이 다른 무엇보다 외교안보 분야의 인선을 가장 먼저 발표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바로 바이든 행정부가 앞으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실제 바이든은 대선 전부터 줄곧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비판한 바 있으며, 무엇보다 파탄 나다시피 한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이를 발판으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왔다.
그리고 이런 의지를 표시하듯 바이든은 안보 분야의 인선을 발표하면서 “이는 동맹국들과 협력할 때 비로소 미국이 최대강국이 된다는 나의 핵심적인 신념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을 설득하기 위해서 대체로 무난한 인물들을 지명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튀거나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보다는 묵묵히 워싱턴에서 경력을 쌓아온 유능한 인재들 위주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50년 가까이 워싱턴에 몸담아온 정치 베테랑인 바이든은 관료주의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런 배경 덕분에 내각을 구성하는 데 있어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며, 이미 지난 8년간 오바마 행정부에서 호흡을 맞췄던 보좌관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후보군이 넘쳐났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 인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은 국가정보국(DNI) 국장으로 지명된 에브릴 헤인스(51)다. 역대 최초로 여성 국가정보국 국장이 탄생하게 될 전망이다. 국가정보국은 미국 내 17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자리로 사실상 해당 분야의 최정점에 위치해 있다. 헤인스는 오바마 정부에서 중앙정보국(CIA) 부국장과 국가안보 수석보좌관을 역임한 바 있으며, 당시에도 두 번 다 최초의 여성이란 점에서 화제가 됐다.
왼쪽부터 유엔 주재 미국대사 지명자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국토안보부 장관 지명자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무장관 지명자 토니 블링컨. 사진=AFP·AP/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유엔 주재 미국대사로 지명된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68)의 면면도 화제다.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를 역임했던 흑인 여성인 그린필드는 현재 바이든 인수위원회에서 국무부 담당 기관검토팀 팀장을 맡고 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루이지애나의 빈민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8남매 가운데는 물론 가문에서 유일하게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로써 그린필드는 오바마 행정부 때 유엔대사로 임명됐던 최초의 흑인 여성인 수전 라이스에 이어 두 번째로 유엔대사직에 앉게 될 전망이다.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명된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60)도 화제다. 쿠바 아바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민자 출신으로 첫 라틴계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명됐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차관보를 지냈으며, 국토안보부 미국시민 이민서비스국 국장도 역임했다. 당시 불법체류 청년들이 추방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추방유예 제도인 ‘다카(DACA)’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국무장관에 지명된 토니 블링컨(58)은 바이든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바이든이 상원의원으로 일할 때부터 내내 곁을 지켰으며, 지난 30년 동안 의회, 국무부, 백악관에서 두루 요직을 거친 베테랑으로 알려져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국무부 차관보, 대통령 보좌관, 국가안보실 수석보좌관 등을 지냈으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과 미 상원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에 앞서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지냈고, 이 밖에도 대통령 특별보좌관, 유럽담당 선임보좌관, 연설문 작성 및 전략기획수석 등을 맡기도 했다.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이란식 해법(핵 동결을 전제로 단계적으로 경제 제재를 풀어주는 방식)’을 적용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대북강경파로 분류되는 블링컨이 강력한 대북제재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과 반대로 바텀업 방식의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앞으로 대북 문제에 있어서도 다른 노선이 펼쳐질 전망이다.
그런가 하면 국가안보보좌관에 낙점된 제이크 설리번(43)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했으며, 오바마 1기 때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부비서실장으로도 일한 바 있다. 현재는 바이든의 수석 정책보좌관 자리를 맡고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클린턴의 정책보좌관을 지냈고, 이보다 앞선 2008년 대선 경선 때는 클린턴의 정책실장을 지낸 바 있다.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론 클라인(63)은 그간 앨 고어와 바이든 등 두 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번에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 오르면서 한 단계 승진을 하게 된 셈이 됐다. 또한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당시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에볼라 대응 조정관’으로 활약을 한 덕분에 ‘에볼라 황제’라는 별명도 얻었다.
민주당의 ‘큰어른’인 존 케리(76)가 기후특사로 지명된 점도 눈에 띈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했던 케리는 2004년 조시 부시 전 대통령의 민주당 대항마로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이런 거물급 인사를 기후특사로 지명했다는 점이야말로 바이든 정부가 기후변화 문제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잘 나타낸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실제 기후변화 문제는 바이든 후보의 핵심 공약이자 과제이기도 했으며, 이를 증명하듯 바이든 정부에서 기후특사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도 참석하게 될 예정이다.
민주당의 ‘큰어른’인 존 케리(왼쪽)가 기후특사로 지명된 점도 눈에 띈다. 케리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파리 기후협정을 설계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사진=EPA/연합뉴스
케리가 기후특사로 지명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2019년 세계 기후위기 퇴치를 위한 전담기구인 ‘월드 워 제로’를 만든 핵심 인물인 케리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파리기후협정을 설계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도 했다.
백악관의 얼굴 역할을 맡게 될 대변인 지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초의 흑인 여성 대변인이 될 것으로 점쳐지는 카린 장-피에르는 바이든 선거캠프에서 선임고문 역할을 맡았으며, 오바마와 마틴 오말리의 대선 캠프에서 활약한 경험도 있다. 또한 과거 NBC와 MSNBC의 정치 평론가를 비롯해 정치활동위원회의 최고 공보책임자로도 일한 바 있다.
성소수자 흑인 여성인 시몬 샌더스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바이든 캠프에서 수석고문을 지낸 샌더스는 2016년 버니 샌더스 대선 캠프에서 전국언론비서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런가 하면 백인 여성인 케이트 베딩필드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바이든의 커뮤니케이션 담당 이사를 맡았던 측근 인사다. 바이든 캠프에서도 선대부본부장 겸 커뮤니케이션 담당 이사를 맡기도 했다.
이런 인선에 대해 한편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놓고 있기도 하다. 오바마 정부 시절의 인물들이 대거 복귀함에 따라 혹시 ‘제2의 오바마 정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다. 이와 관련, 진보적 성향의 민주당원들 대다수는 “단순히 오바마 시절로의 복귀는 원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인즉슨, 이미 과거에도 많은 좌파 인사들이 오바마 정부의 느린 변화에 답답함을 토로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의 복제판이라는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이든 정부가 어떤 변화와 성장을 보여줄지 미국을 넘어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