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라온 박영진 울산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가 게시한 글이다. 사상 초유의 분위기다. 그리고 26일은 ‘검란(檢亂)의 날’이 됐다. 41개 일선청의 검사들이 하나로 뭉쳤다. 6명의 고검장을 비롯, 17명의 검사장과 차장·부장검사, 평검사들이 일제히 성명서를 통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 및 징계위원회 회부 조치에 반발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 직무정지 결정 이틀 뒤인 11월 26일은 ‘검란의 날’이었다. 이날 고검장과 지검장, 차장·부장검사, 평검사들이 회의 등을 거쳐 중론을 모은 성명서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 사진=이종현 기자
평검사들까지 반발에 합류하면서 7년 만의 검란이자, 사상 최대의 검란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검찰 조직의 내분을 상징하는 검란이라는 표현은 2013년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당시 이후 7년 동안 등장하지 않았는데 지금의 검란은 채 전 총장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검사들의 추가적인 집단행동은 한동안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추 장관은 검사들의 반발에 굴하지 않고, 윤 총장의 징계 심의 기일을 12월 2일로 정했다고 밝혔다. 법적 다툼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윤 총장도 직무정지 처분의 집행정지(가처분)와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각각 제기하며 법적 다툼에 착수했다.
#‘직무배제’ 거센 후폭풍
추미애 장관이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정지 조치’ 카드를 꺼내든 것은 11월 24일 화요일 오후. 추 장관은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을 직접 찾아 윤 총장에 대한 직무 배제 사실을 전격 발표했다.
추 장관이 밝힌 윤 총장의 비위 사실은 △언론사주와의 부적절한 접촉 △조국 전 장관 사건 등 주요 사건 재판부 불법 사찰 △채널A 사건·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감찰·수사 방해 △채널A 사건 감찰 정보 외부 유출 △총장 대면조사 과정에서 감찰 방해 △정치적 중립 훼손 등 모두 6개다.
여권도 힘을 보탰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추 장관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법무부의 감찰 불응 등 6개의 혐의를 들어 직무를 정지시킨 윤 총장에 대해 “법무부가 밝힌 윤 총장의 혐의가 충격적이다.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방향을 당에서 검토해달라”면서도 “윤 총장은 검찰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달라”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하지만 최근 평검사 접촉을 늘리며 내부 결속 강화에 집중해온 윤석열 총장의 카드는 먹혀들었다. 검찰 내부망에서 산발적으로 나오던 검사들의 반발은, 추미애 장관의 직무정지 결정에 폭발했다. 직무정지 결정 이틀 후인 11월 26일 고검장과 지검장, 차장·부장검사, 평검사들이 회의 등을 거쳐 중론을 모은 성명서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 내용은 모두 동일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를 재고해 달라는 항의 내용이 담겼다.
추미애 장관이 밝힌 윤 총장의 비위 사실은 △언론사주와의 부적절한 접촉 △조국 전 장관 사건 등 주요 사건 재판부 불법 사찰 △채널A 사건·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감찰·수사 방해 △채널A 사건 감찰 정보 외부 유출 △총장 대면조사 과정에서 감찰 방해 △정치적 중립 훼손 등 모두 6개다. 사진=박은숙 기자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가장 먼저 입장을 올린 것은 6명의 고검장들이었다. 조상철 서울고검장 등은 “검찰총장의 임기제도는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 외풍을 차단하고 직무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법률적 장치”라며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행사에서부터 직무 집행정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다는 우려가 있다. 판단 재고를 법무부 장관께 건의한다”고 비판했다. 배성범 법무연수원장도 별도의 글을 올려 “검사들의 인식과 입장 표명에 뜻을 같이한다”고 힘을 보탰다.
그 뒤로는 대검 중간간부들이 뜻을 밝혔다. 손준성 수사정보담당관 등 대검 중간간부 27명 역시 검찰 내부망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검찰총장 직무집행정지는 위법, 부당하다”며 “법치주의를 훼손하므로 직무집행 정지를 재고해 달라”고 추 장관에게 요청했다.
그 후 서울동부지검과 대구지검, 의정부지검, 천안지청 평검사 등이 직무집행정지를 철회 혹은 재고해 달라며 성명서를 냈고 김후곤 서울북부지검장 등 17명의 일선 검사장들도 “대다수 검사들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걱정한다. 직무정지와 징계청구를 냉철하게 재고해 달라”고 밝혔다.
이 성명에서 ‘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되는 3명의 검사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 이정수 서울남부지검장 이름은 빠져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의 반발도 이어졌다. 서울중앙지검 사법연수원 35기 부부장검사들은 “검찰총장 직무정지는 충분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이뤄져 절차적 정의에 반하고 검찰개혁 정신에도 역행한다”며 조치 철회를 요구했고, 서울중앙지검 평검사들도 회의를 열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며 “이번 조치를 즉시 취소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의 검란과는 다른 분위기인 점도 이례적이다. 2012년에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놓고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재경 중수부장 간 대립이 있었지만 이는 한 총장의 검찰 운용방식에 대한 검사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었다. 한 총장은 일선 검사들의 회의와 대검 차장검사 이하 간부들의 ‘명예로운 퇴진’ 요구를 받고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번처럼 상대가 법무부 장관이었던 경우는 처음이었다. 또 고검장이나 지검장과 같은 검사장, 평검사 모두 입장을 낸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다른 곳의 반발은 쉽게 예상을 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은 부장검사 등 간부급부터 지검장까지 ‘선택받은 사람’들이 많은 곳이어서 가장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결국 부부장검사 이하로는 입장이 나오지 않았느냐”며 “지금 서울중앙지검 내에서는 간부급과 평검사들 간 입장 차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들었다. 윤 총장을 겨눈 수사도 분명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상 초유의 검란 후 결정은 결국 법원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정지 조치에 이은 엄청난 규모의 검란이었지만, 결국 이에 대한 결정권은 법원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추미애 장관은 징계 수순을 밟고 있다. 윤 총장 측에게 12월 2일 오후 4시, 징계 심의 회의 개최 및 출석을 통보했다. 윤 총장 측은 특별변호인은 참석하지만 윤 총장 참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윤 총장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11월 26일 징계와는 별도로 윤 총장은 먼저 직무에서 배제된 데 대해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섰다. 서울행정법원에 직무정지 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내고 처분 취소소송도 제기했다. 이를 언론에 밝히는 입장문에서 6가지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하며 여론전에도 나섰다.
윤 총장은 △언론사주와의 부적절한 접촉에 대해서는 ‘우연히 만나 당시 문무일 총장에게 보고했는데 총장 인사검증 때 문제도 되지 않았다’고 해명했고 △조국 전 장관 사건 등 주요 사건 재판부 불법 사찰은 ‘공소수행을 위해 이미 공개된 자료들을 참고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추미애 장관이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정지 조치’ 카드를 꺼내들자 윤석열 총장도 직무정지 처분의 집행정지(가처분)와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각각 제기하며 법적 다툼에 착수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채널A 사건·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감찰·수사 방해 의혹은 ‘총장의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한 것’이며 그 밖의 의혹들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검찰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총장 임기제가 있다”며 “사실상 해임과 다름없는 직무집행 정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부정”이라고 맞섰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채동욱 전 총장처럼 결국 윤석열 총장도 옷을 벗고 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윤 총장을 잘 아는 법조인들의 반응은 다르다. 윤 총장의 측근 가운데 한 명은 “윤 총장과 채동욱 전 총장은 사건 흐름이 다르다. 윤 총장은 원칙론자로 납득하지 못할 이런 공세에 오히려 더 단단히 버티는 스타일”이라며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치는 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일 서울행정법원이 윤 총장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다면 직무정지 명령은 취소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진 효력이 중단된다. 하지만 집행정지 효력이 중단된다고 하더라도, 법무부는 징계를 추진 중인 상황이다. 법무부 징계위는 대부분 법무부 장관이 추천한 위원들로 구성된 만큼 해임 등 윤 총장에 대한 중징계 조치가 예상된다. 이에 대해 윤 총장이 또 ‘취소해달라’는 소송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윤 총장이 최근 자기 정치를 하기 위한 움직임을 한 부분도 분명 있지만, 검찰개혁이라는 명분과 윤 총장 찍어내기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행보이며 이를 징계할 명분도, 과정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추 장관이 계속 권력으로만 밀어붙이면 검찰 반발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선 윤 총장의 측근은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징계가 나온다면 이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도 없지 않느냐”며 “징계는 해임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해임 징계가 나오게 된다면 검사들이 또 다른 집단행동이 나오지 않겠나. 다만 이는 정치권에 대한 여론전에 불과하기 때문에 윤 총장은 법적 다툼으로 맞서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론은 추미애 장관에게 다소 불리해 보인다. 리얼미터가 지난 25일 TBS 의뢰로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정지 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응답자 56.3%가 ‘잘못한 일’이라고 답했다. ‘잘한 일’이라는 평가는 38.8%였고 ‘잘 모르겠다’는 4.9%였다. 국민 7명 중 4명 꼴로 ‘추 장관이 잘못했다’고 답한 셈이다.
법무부 징계에 대한 반발 움직임도 예상된다. 12월 10일로 소집 일정이 잡힌 법무부 외부감찰위원회(감찰위) 위원들은 “12월 2일 윤석열 총장에 대한 검사징계위원회 이후에 회의가 열리면 구색 맞추기에 불과해진다”고 반발하면서 임시회의 소집 요청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윤 총장은 어떻게든 법원의 힘을 빌려서 징계 등에 대응하려 할 것이고 이에 맞서기 위한 기자회견 등 여론전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윤 총장은 검찰 내에서도 ‘명분’을 중시하며 수사했던 특수통이지 않나. 법적 다툼이나 여론전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여태껏 보여주지 않았던 과감한 수들을 던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