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진 종로학원 창업자가 별세했다. 사진=종로학원 홈페이지 캡처
종로학원 집안은 상속 재산 문제로 유족들 간 갈등이 불거진 상황이다. 지난해 정태영 부회장의 여동생인 은미 씨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서울PMC 대주주인 정 부회장의 갑질경영을 막아달라고 국민청원을 올렸고 정 부회장은 여동생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2월 정경진 회장 아내이자 정태영 부회장 모친인 조 아무개 씨가 별세했다. 모친은 자신의 남은 재산 약 10억 원을 장남에 비해 비교적 대접받지 못한 두 동생 해승·은미 씨 몫으로 남기겠다고 유언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남편 정경진 회장과 아들 정 부회장은 ‘유언장의 필체가 평소 고인의 것과 다르다’며 유언 증서 진위 여부를 놓고 다퉜다.
법원에서는 필적 감정 결과 모친 필체가 맞다고 판결했다. 이에 지난 8월 정태영 부회장과 정경진 회장은 유류분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은미 씨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91세 치매 부친이 자식 상대 소송을 한다는 걸 납득할 수 없다”며 “어머니 유산 돌려달라는 게 아버지 뜻일 리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정 회장은 별세했지만 유류분 청구소송은 계속 진행된다. 최강용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소송 당사자가 사망하더라도 변호사가 소송대리인으로 선임돼 있는 경우에는 소송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된다. 따라서 정 회장의 소송위임장이 위조됐음을 입증하지 않으면 소송은 정상적으로 계속된다. 정 회장이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에서 승소하면 이 유류분은 다시 법정상속 비율에 따라 자녀들인 정태영 부회장과 해승·은미 씨에게 상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소송을 냈을 당시에도 소송은 유산 문제가 아니라 해묵은 가족 갈등이 이유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승소하면 받는 돈이 수천만 원인데 반해 정 부회장 연봉은 약 40억 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경진 회장이 자식들에게 돌려받는 유류분이 다시 자식들에게 상속된다고 볼 때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종로학원은 가장 유명한 입시학원으로 명성이 높았다. 사진=이종현 기자
조 씨 유류분 청구소송과 별개로 정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번에는 해승·은미 씨의 유류분 청구소송 제기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정경진 회장은 2005년 종로학원(현 서울PMC) 지분 57%를 정태영 부회장에게 물려줬고 은미 씨도 일부 받았다. 이 지분은 서울PMC의 감자 등을 거쳐 정 부회장이 73%, 은미 씨가 17%를 갖게 됐다. 해승 씨는 약 5.4%를 보유했었지만 유상소각된 바 있다. 해승 씨는 지분을 유류분 이하로 받은 것으로 보여 유류분 청구소송을 하면 지분 일부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모친 조 씨의 유산은 10억 원이었고 유류분 청구소송 규모도 약 2억 원 정도였다. 반면 지분 이 외에도 정 회장 재산은 훨씬 많다고 한다. 최근 정 회장이 종로학원에서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만 약 40억 원 정도로 알려졌다.
만약 해승·은미 씨가 유류분 청구소송을 하게 된다면 정경진 회장이 유언장을 남겼는지, 그 유언장의 내용이 어떤지에 따라 소송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종로학원 내부에서는 현재까지 정 회장 유언장이 공개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장례 절차 중인 데다 경황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았을 뿐 유언장 존재 가능성은 남아 있다.
‘문 대통령도 우리 학원 출신’ 별세한 정경진 회장은 누구? 그는 1950년대 말 수학 과목 스타강사로 활약했다. 1965년 정 회장은 “우수한 학생도 입시에 실패할 수 있으니 이들을 모아 가르쳐 보자”며 종로학원을 열었다. 정경진 회장은 ‘수학의 완성’으로 ‘수학의 정석’이 나오기 전까지 대한민국 수학 참고서 시장을 가장 먼저 평정했다. 그는 1966년 같은 학원 강사였던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의 ‘수학의 정석’을 출간해 베스트셀러로 키웠다. 종로학원 최전성기에는 매년 학원생 2100명 가운데 1000명 이상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했다. 연세대(500여 명)와 고려대(400여 명) 입학생도 거의 1000명에 육박했다. 본고사 마지막 해인 1996년에는 2100명 가운데 1187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종로학원 수강생은 ‘종로대학생’ ‘예비 서울대생’으로 불렸다. 정 회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종로학원 출신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꼽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1971년 종로학원에 수석 입학했고 다음해 경희대 법대에 수석 입학했다. 정 회장은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 합격했지만 입학금 8000원이 없어 등록을 못하고 있을 때 안성농업학교 서무주임이 1만 원을 빌려줘 대학교에 들어간 일화로 유명하다. 그런 과거 때문인지 정 회장은 용문장학회를 설립했다. 설립 초기에는 대학생 위주, 이후부터는 초중고생을 위주로 학생들에게 생활비까지 포함된 장학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7000여 명이 장학금의 수혜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다만 정 회장은 건강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 30대부터 당뇨가 심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심각한 심혈관 질환을 겪기도 했다. 80세를 넘으며 치매도 진행돼 2017년에는 정식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부부 사이 금슬이 좋았는데 부인이 지극 적성으로 간호하다 병을 얻어 오히려 2019년 2월 먼저 세상을 떠났다. 2008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는 “오후 헬스클럽에서 두어 시간 운동을 한 뒤 귀가해 아내와 저녁을 같이하고 텔레비전 드라마, 뉴스 등을 보는 게 요즘 사는 맛”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 회장은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는 얘기가 많았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차녀 정명이 씨와 결혼했다. 정 부회장은 ‘여의도 연봉왕’으로 꼽히며 한 해 40억 원 이상을 수령한다. 차남 정해승 씨는 전 이루넷 사장으로 2000년대 초반 과거 김택진 NC소프트 대표와 함께 벤처 부호로 꼽히기도 했다. 막내 정은미 씨는 종로편입학원 대표를 지냈고 2014년 해커스그룹에 편입학원을 매각했다. |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