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 수원대 교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천 개의 바람’을 좋아했지만, 그 시가 떠오르는데도 엄마 사진 앞에서 운다. 그간 나는 내가 그렇게 엄마를 좋아했는지도 몰랐고, 내 안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는 줄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엄마를 모시고 있었던 것이 그나마 큰 위안이 됐다. 그것이 엄마가 내가 준 가장 큰 선물이었음을,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항암을 하면서 엄마의 신체는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갔다. 암세포는 줄었다는데, 그렇게 걷기 좋아했던 엄마의 몸은 산책조차 힘든 몸이 되었다. 죽음이 자기 일이 아니었을 때는 생각 없이 “죽으면 천국 가는 거지” 했던 엄마가 막상 죽음의 그림자가 덮치니 그간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음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문득문득 혼잣말처럼 혹은 나를 향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리냐며, 엄마는 오래오래 살 것이라는 말로 엄마의 물음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에게 죽음에 관한 책들을 읽어주면서 함께 죽음에 관해 공부해갔다. 그중에 아니타 무르자니의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가 있었다.
아니타는 홍콩에서 성장한 인도여성이었다. 그녀는 사회적 권위를 존중하며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암에 걸리고 말기암 환자가 되어 의식불명 상태에 들어갔다. 그 시간에 그녀는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암투병을 하다 죽은 절친을 만난다. 그들을 만나 생의 장엄함과 생명의 신비에 놀라며 행복해하고 있을 때 아버지로부터 돌아가라고, 돌아가서 할 일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모든 것이 변한 것이다. 15년 전의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병이 왜 찾아왔는지 성찰하게 됐다. 젊은 그녀에게 암은 우연히 닥친 외적 불행이 아니라 생명이 가진 엄청난 힘이 생에 대한 두려움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란다. 과거에 그녀는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답을 찾으러 바깥으로 나갔단다. 그것은 내면의 ‘나’를 신뢰하지 않고 ‘나’의 힘을 외부에 누군가에게 준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그 느낌을 먼저 들여다보고 차분해진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한단다.
그녀가 말한다. 시간을 내서 느낌을 관찰하고 자기중심을 확인하고 나면 힘들게 하던 문제들이 상당부분 사라져 있는 것을 본다고. 읽어주는 책을 유심히 듣던 엄마가 돌아가시기 2주 전쯤에 했던 말을 인상적이다.
“죽는 것도 별 거 아닌 것 같다. 사는 것과 비슷한 거 같아. 마음 놓고 받아들일 수밖에.”
나는 석양녘 심장에서부터 차오르는 그리움에 울기도 하고 한밤중엔 엄마가 문득문득 느꼈을 죽음의 공포가 등짝으로 퍼져가 온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나는 이 상실의 아픔까지 고맙다. 엄마가 마지막을 함께 해주어서 고맙다. 많이 사랑받았으니 고맙고, 그 사랑을 기억할 수 있어 고맙다. 돌이켜보니 모두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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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