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빈, 허경민, 최주환(왼쪽부터) 등 두산 출신 FA들이 대거 시장에 나오며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처음 FA 자격을 얻은 선수가 13명, 재자격 선수가 9명, 이미 FA 자격을 취득했지만 FA 승인 신청을 하지 않고 자격을 유지한 선수가 3명이다. 올해 처음 시작되는 FA 등급제를 기준으로 하면 A등급이 8명, B등급이 13명, C등급이 4명으로 나뉜다.
굵직한 선수들이 많다. 특히 두산 베어스 출신 FA들이 대거 시장에 나왔다. 내야수 허경민 최주환 오재일, 외야수 정수빈, 투수 유희관 이용찬이 모두 A등급이다. 재자격 선수 중에는 프랜차이즈 스타들도 많다. KIA 타이거즈 양현종,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다. KIA 최형우, LG 트윈스 차우찬, 삼성 라이온즈 우규민 등도 다시 한 번 FA 자격 요건을 채웠다.
다만 각 구단의 재정 상태가 이번 FA 시장의 변수다.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시즌의 여파로 10개 구단 금고가 거의 동났다. 반드시 데려와야 할 선수 한 명에게 ‘올인’을 하거나, 필요한 선수가 있어도 너무 비싸면 잡지 못할 처지다. 그 어느 시즌보다 올해 FA 시장 판도를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다.
#FA 등급제, 처음으로 시행된다
이번 스토브리그는 FA 제도가 처음 시작된 1999년 이래 21년 만에 가장 큰 변화를 맞이했다. 준척급 FA들과 베테랑 FA들의 숙원과 같았던 FA 등급제가 최초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올해 초 열린 KBO 이사회에서 규약 변경에 합의했고, 유예기간 없이 2020시즌 종료 후 곧바로 시행하기로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선수의 나이나 경력, FA 자격 취득 횟수, 주전 혹은 비주전 여부 등에 관계없이 KBO 규약 제172조 ‘FA 획득에 따른 보상’ 조항이 모든 FA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됐다. 다른 팀으로 FA를 보낸 원 소속구단은 선수를 데려간 구단으로부터 그 선수의 직전 시즌 연봉 200%에 해당하는 보상금과 상대 구단 20인 보호선수 외 1명의 선수 계약을 양수하거나 연봉의 300%에 해당하는 금전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다르다. 신규 FA는 기존 FA 계약자들을 제외한 선수들의 최근 3년 평균 연봉과 평균 옵션 금액으로 순위에 따라 등급을 나눈 뒤 아래 등급일수록 완화된 보상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
처음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구단 내 연봉 3위 이내와 리그 전체 연봉 30위 이내인 A등급 △구단 내 연봉 4~10위와 전체 연봉 31~60위인 B등급 △구단 내 연봉 순위 11위 이하와 전체 연봉 순위 61위 이하인 C등급으로 각각 분류된다.
이 가운데 A등급 선수를 영입하는 구단만 기존 보상안과 마찬가지로 전년도 선수 연봉의 300% 현금 또는 보호 선수 20인을 제외한 선수 1명과 연봉 200% 현금을 원 소속팀에 보상해야 한다. 반면 B등급 선수가 이적했을 때는 원 소속구단이 묶을 수 있는 보호선수 수를 25명으로 늘리고 보상 금액도 전년도 연봉의 100%로 완화했다. C등급 선수는 보상선수를 내줄 필요 없이 전년도 연봉의 150%만 보상하면 된다.
또 2021시즌 종료 뒤부터는 구단 연봉 순위와 전체 연봉 순위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해당 등급 안에 편입될 수 있다. 만약 팀내 연봉 순위가 3위 이상이라 해도 전체 30위 안에 들지 못하면 A가 아닌 B등급으로 내려간다는 얘기다. 다만 이번에는 규약 변경 후 곧바로 새 제도가 시행되는 점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전체 연봉 순위 30위 이내 선수는 모두 A등급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다시 한 번 FA 자격을 얻은 양현종은 해외진출을 도모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임준선 기자
#FA 9명 배출한 두산, 가슴 쓸어내린 이유
주전 선수들이 한꺼번에 FA 자격을 얻은 두산은 이 예외 규정 덕에 가슴을 끌어내렸다. 올해 두산에서 나오는 FA는 총 9명. 두산 왕조를 이끈 ‘황금 세대’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앞서 언급한 유희관, 이용찬, 오재일, 최주환, 허경민, 정수빈 외에 김재호(내야수) 권혁 장원준(이상 투수)이 추가됐다. 권혁은 이미 은퇴를 선언했고, 장원준도 최근 2년간은 전력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김재호는 바로 직전 한국시리즈까지 주전 유격수로 뛴 핵심 자원이다. 두산으로선 자칫 내야 주전 전원이 이탈할 위기를 맞이한 셈.
여기에 한시적 예외 조항마저 없었다면, 신규 예비 FA 6명 가운데 팀내 연봉 순위 3위 안에 드는 선수는 투수 유희관뿐이다. 다른 주전 선수들을 내보내고도 A등급의 보상을 받지 못할 뻔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리그 전체 연봉 순위로 집계한 덕에 오재일, 최주환, 허경민, 정수빈, 유희관, 이용찬 등 6명이 모두 A등급으로 분류됐다. 내부 FA를 모두 잡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두산 입장에선 보상 선수로 전력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두산은 등급제 즉시 적용에 동의하는 대신, 새 제도의 최대 피해자로 남을 뻔했던 위기를 넘겼다.
이 외에도 35세 이상 선수가 새로 FA가 됐을 때는 연봉 순위와 관계없이 C등급을 적용해 선수 보상 없이 이적할 수 있도록 했다. 또 FA 자격을 두 번째로 얻은 선수는 신규 FA B등급과 동일하게 보상하고, 세 번째 이상 FA 자격을 따낸 선수는 C등급과 같은 규정을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줄기차게 주장해 온 FA 기한 단축은 올 시즌 뒤가 아닌 2023년 시행으로 미뤄졌다. 기존 FA 자격은 고졸 선수 9시즌, 대졸 선수 8시즌 충족이 조건이었다. 이제는 2022시즌이 끝난 시점부터 고졸 선수가 기존의 9시즌이 아닌 8시즌을 채워도 FA 자격을 얻는다. 대졸 선수는 8시즌이 아닌 7시즌을 채우면 FA가 될 수 있다. 2015년 이후 입단한 고졸 선수들과 2016년 이후 입단한 대졸 선수들이 매 시즌 정해진 등록일수를 채웠다면, 2년 뒤 이 혜택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두산 출신 FA를 잡아라! 올해 시장 판도는?
벌써 A급 FA들을 잡기 위한 경쟁도 시작됐다. FA 재자격 선수 중 가장 이름값이 높은 KIA 출신 양현종은 해외 리그 진출을 추진할 전망이다. 이대호는 롯데를 떠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FA 시장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선수는 두산 내야수 허경민과 최주환이다.
정규시즌을 6위로 마감한 KIA와 7위 롯데, 8위 삼성, 9위 SK 와이번스, 10위 한화 이글스는 모두 올해 FA 시장에서 B등급 이상 선수를 영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허경민과 최주환은 이 다섯 팀 가운데 복수의 구단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카드다.
특히 최주환은 수도권 A 구단 행이 기정사실로 점쳐지고 있다. 당초 허경민에게 가장 관심을 보였던 A 구단은 그보다 몸값이 더 낮고 장타력은 더 좋은 최주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계에는 FA 자격 명단 공시 전부터 “최주환이 A 구단의 1순위 영입 후보다. 적극적으로 영입에 나설 것이고, 이변이 없다면 곧 A 구단 행이 확정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새로 부임한 감독이 ‘수비력을 갖춘 내야수 영입’을 원했고, 구단이 그 적임자로 최주환을 택했다는 것이다. 최주환에게는 5강에 진출한 두 팀도 관심을 보였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의 존재가 더욱 간절한 건 하위권 팀이다.
허경민 역시 이번 FA 시장의 ‘최대어’ 대접을 받고 있다. “몸값이 4년 60억 원에서 출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허경민은 당장 주전 3루수 자리가 급한 B 구단과 1년 내내 좋은 내야수를 찾아 헤맨 C 구단의 영입 후보 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 가운데 허경민 영입이 더 절실한 팀은 B 구단이다. 당장 그라운드 안팎에서 허경민의 존재가 절실하다. 반면 C 구단은 내부 FA 단속을 먼저 한 뒤, 허경민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문제는 B 구단보다 C 구단의 자금 사정이 더 넉넉하다는 것이다. B 구단은 최근 수년간 외부 FA를 거의 영입하지 않았다. 팀 재건을 위한 모기업의 결단과 구단 수뇌부의 추진력이 필요하다.
오재일은 지방 D 구단 영입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홈런이 잘 나오는 구장을 사용하고, 왼손 거포 1루수를 가장 필요로 하는 팀이라서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20홈런을 넘기고 1루 수비도 수준급으로 평가받는 오재일이라면 분명 D 구단에 최적의 카드다. 몸값 논의가 관건으로 보인다.
리그 정상급 수비력과 빠른 발, 남다른 야구 센스를 자랑하는 정수빈은 E 구단이 노리고 있다. 외야 주전 선수들이 팀에서 빠진 데다, 팀 센터라인의 중심을 잡아 줄 선수가 필요해서다. 영입 의지에 미치지 못하는 재정 상태가 역시 걸림돌. 두산에서 선발과 마무리로 모두 활약했던 투수 이용찬 역시 많은 팀이 2순위 영입을 고려하고 있다. 오랜 기간 검증된 선발 투수지만,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받은 게 다른 팀들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다. 내년 5월에야 복귀할 수 있고, 내구성에 물음표가 붙는다. 그래도 건실한 오른손 투수 보강을 원하는 팀에게는 나쁘지 않은 FA다.
이들 외의 다른 FA 선수들은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다. LG 출신 왼손 투수 차우찬이 관심권에 들어와 있는 정도다. 지방 한 구단 운영팀장은 “두산 출신 A등급 선수들의 행선지가 정해져야 다른 선수들의 향방도 판가름 날 것 같다. 하지만 올해는 모든 구단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 ‘필수 영입 선수’가 아니라면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모기업 재정 악화가 널리 알려진 두산은 내부 FA 한두 명을 잡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