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 레전드’ 송재익 캐스터가 지난 2년간 현장을 지킨 K리그 무대를 떠나게 됐다. 사진=이종현 기자
1970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한 송 캐스터는 40년 가까이 스포츠 현장을 지켰다. 그의 목소리로 전해진 월드컵만 6회, 하·동계 올림픽만 8회였다. 1997년 일본에서 열린 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한일전에서의 “후지산이 무너집니다”라는 문구는 아직까지 전설적인 멘트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SBS로 적을 옮겨 스포츠 현장을 목소리로 전하던 그는 10여 년의 공백을 가지다 지난 2019년 중계석으로 돌아왔다. K리그2 중계를 자체 제작하던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제의를 받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2020시즌 들어선 K리그1까지 활동 무대를 넓혔다. 2년간 54경기 중계를 맡은 그는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K리그 중계석을 떠날 뜻을 밝혔다. 지난 11월 21일 마지막 중계방송에서 “지금까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캐스터 송재익이었습니다”라는 클로징 멘트는 작은 울림을 줬다. 기성세대에겐 향수를 젊은 세대에겐 신선함을 불러 일으켰던 레전드 송재익 캐스터를 일요신문이 만났다.
인터뷰를 위해 연락을 취하자 송 캐스터는 “팔자에 없는 일이 자꾸만 일어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앞서 마지막 중계방송을 앞두고 연맹 측은 송 캐스터의 ‘고별 방송’을 예고했다. 당시 경기를 마치고 송 캐스터에게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는 “중계석에서 내려가는데 기자들이 몰려 질문을 하고 사진을 찍어대더라. 결국 연맹 관계자가 기자회견실로 가자고 하더라. 캐스터로선 드문 일을 겪었다. 20여 년 전 MBC에서 SBS로 방송사를 옮길 때 이후 그렇게 많은 취재진 앞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라며 웃었다. 이어 “오늘 인터뷰를 위해 집을 나서는데 집사람이 ‘당신 팔자가 세서 그렇다’고 하더라. 요 며칠은 정말 내 팔자가 드센 것 같기도 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고별 방송이 화제가 되며 주변의 안부 연락도 쇄도하고 있다. 송 캐스터는 “후배 아나운서 등 지인들이 수도 없이 연락이 온다. 한동안 연락 없이 지내던 과거 ‘콤비’ 신문선 해설위원과도 한참 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존경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신문선으로부터 문자가 길게 왔다. 바로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다. 이번 일로 내가 시끄럽기는 한가보다”라며 웃었다.
신문선 해설위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송재익 선배는 과거 오랜 기간 나와 호흡을 맞췄던 분이다. 고령에도 현장에서 활약을 하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이번 기회에 연락을 드렸다. 방송을 등지고 좀 두문불출 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며 입을 열었다.
신 위원과 송 캐스터는 MBC와 SBS를 거치며 스포츠 중계방송의 전성기를 몸소 겪은 이들. 당시 월드컵 중계 등 각 채널 통합 시청률이 50%를 훌쩍 넘기도 했다. 시청률 경쟁이 이어지며 이들이 방송사를 옮기는 당시로선 드문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사이 국내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2002 한일월드컵이 존재하기도 했다.
신 위원은 “송 선배 소식을 들으며 과거 생각이 많이 났다. 과거엔 해외에 중계를 나가서 한 방에서 같이 잠을 자는 등 형제처럼 지내기도 했다”면서 “송 선배는 철저한 자기 관리에 있어서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다. 그 연세에 그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2~3년 더 하셨으면 한다.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는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 선배의 마지막 중계만큼은 과거 추억을 되살려 나와 함께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방송을 멀리하고 지냈지만 송 선배와 호흡을 맞춘다면 얼마든지 한번쯤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1월 21일 서울 이랜드와 전남 드래곤즈의 K리그2 최종전은 송재익 캐스터의 ‘K리그 고별 방송’이 되기도 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송재익-신문선 콤비가 중계석에 서는 모습을 아예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송 캐스터는 이번 K리그 중계에서 물러나는 것이 영영 중계석을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건강상의 문제라든가 하는 것은 전혀 없다. 다만 이 나이가 되도록 매주 지방을 오가는 스케줄이 다소 부담이 된다”며 “저녁 경기 중계를 나가면 집에 12시가 다 돼 돌아올 때도 있다. 밤 운전이 무서워졌다. 내가 80세를 바라보고 있는데 면허를 반납하는 나이다. 주변에선 자녀들이 위험하다고 차를 빼앗아 간다더라. 나 역시 밤늦게 운전하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코로나19 상황 또한 작별의 요인이 됐다. 그는 “최근에도 친구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그렇게 됐다. 운전도 그렇고 내가 이거 하다가 횡사할 일 있나(웃음). 가족들 만류도 많았고 해서 그만두게 됐다. 가족들은 후련해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방송계를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니다. 11월 29일 열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과 로이 존스 주니어의 복싱 매치 중계를 맡기도 했다. 그는 “타이슨이 돌아온다는 뉴스를 보고 내심 ‘내가 저거 (중계)하는 건 어떨까’ 생각하던 차에 마침 연락이 왔다. 내가 과거 타이슨이 에반더 홀리필드 귀를 물어뜯을 때 중계를 했었다”며 “타이슨이 54세고 존스가 51세라더라. 그 경기를 복싱 레전드 홍수환과 함께 중계하게 됐다.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상황이 맞아 떨어진다면 중계석에 앉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K리그 중계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요청이 온다면 일회성으로 얼마든지 나설 수 있다. 축구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말했다.
반세기 가까이 스포츠 캐스터로 활동한 그다. 그 사이 그가 중계하는 경기에서 활약을 펼치던 선수는 함께 마이크 앞에 서는 해설위원이 되기도 했다. 송 캐스터는 “이번에 K리그 중계를 맡으면서 이상윤 해설과 호흡을 많이 맞췄는데 내가 한창 캐스터를 할 때 주축 선수로 뛰던 인물이다. 그런데 이상윤도 벌써 해설을 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더라.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다. 2년 동안 나랑 호흡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너무 잘해줬다. 고생했다는 말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내심 ‘마지막 경기는 이상윤하고 하면 어떨까’ 생각을 했는데 억지로 그러지는 않았다. 지난 2년간 내 일정 조율은 그냥 연맹 쪽에 맡겼다. 특별대우를 바라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외에도 세월의 흐름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장에 나가니 나를 알기 어려울 나이의 아이들이 사인해달라, 사진 찍어달라고 쫓아온다. 그런 아이들이 오면 ‘2002년에 몇 살이었냐’고 묻는다(웃음). 이어서 나를 아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한다. 그럼 왜 나랑 사진을 찍느냐고 하면 돌아오는 답이 ‘아버지가 사진 찍어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구나. 많은 추억 남겼다. 1990년대 내 팬클럽을 자처하던 철부지는 이제 회사 대표가 됐더라.”
송 캐스터는 “작년 10년여 만에 현장에 돌아오니 달라진 것이 많더라. 방송 스타일도 다르고 사용하는 어휘도 달라졌다. 과거의 ‘센타링’이라든가, ‘헤딩’이라는 말을 이제는 안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송 캐스터만의 ‘복고풍 중계’는 젊은 세대 팬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는 “과거엔 선수가 화면에 잡히면 그 선수에 대한 키나 출신 학교 등 정보를 읊어줬다. 요즘엔 인터넷으로 다 찾아볼 수 있으니 그걸 안하더라. 이젠 그게 촌스러워진 것이다. 안 해도 되면 나로선 편해진 것이다”라며 웃었다. 리그 심판들의 본업을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중계를 하면 항상 그 종목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너무 선수에게만 집중되기보다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심판들의 경기장 밖 직업을 소개했다. 사람마다 운동장 사각형 안에서의 생활이 있고 밖에서의 생활이 있지 않나. 휴대폰 매장을 한다든가, 중학교 체육 선생님도 있고….”
그는 중계 현장에 대한 약간의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이 나이에 이런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 “아쉬운 소리 한 가지만 하자면 10년 만에 돌아왔는데 방송 환경이 여전히 열악하다. 아무래도 연맹에서 직접 제작을 하다 보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며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 해 나갈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이나마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고 짚었다.
10년여 만의 현장 복귀에 빛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5월 부천 FC 1995와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나섰다가 일부 팬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제주가 부천에서의 연고 이전을 했던 양 팀의 복잡한 역사에 대해 ‘과거에 연연해선 안 된다,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한 발언이 지적을 받은 것이다. 송 캐스터는 이에 대해 지적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밝혔다.
“섭섭하게 느꼈을 부천 팬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다. 내가 마음을 잘 어루만지지 못했다. 다만 제주 편을 들어준 것은 아니다. 그날 현장에 가니 부천 팬들이 강한 구호를 외치고 하더라. 과거가 마음 아픈 것은 이해하지만 눈 부라리고 원수 대하듯 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경기장 위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천의 아픔은 알고 있지만 내가 중계석에서 너무 부천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것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더 조심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롱런 비결로는 절제와 겸손을 꼽았다. “해야 할 일 꼭 하는 것, 안 해야 할 일 꼭 안 하는 것이 절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분별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데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겸손 역시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겸손한 척’이라도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했다고”도 했다. “평범하게 내 자리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는데 평범하지 않은 상황들이 벌어진 것 같다”면서 “과분한 일로 여기고 평생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겠다. 지난해 복귀를 하면서도 내가 축구에 많은 신세를 졌기에 그걸 갚는다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또 다시 너무 큰 관심을 받았다. 언제나 발전이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