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개발공사에서 사내 폭행사건이 뒤늦게 드러났다.
지난 3월 충청남도개발공사 내부에서 일어난 김 아무개 씨와 관련된 두 건의 중요한 판결이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에서 선고됐다. 김 씨가 관리직인 A 씨, 직속상관인 B 씨를 폭행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다. 판결문에는 B 씨의 폭행이 자세하게 서술돼 있다.
직장내 갑질 폭행 피해자인 김 씨는 2013년 7월 9일 충청남도개발공사에 입사했다. 그는 서울지역 대학에서 토목공학과를 전공하고 설계사로 일하다 공기업인 충청남도개발공사에 공채로 입사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 씨는 2016년 3월 충청남도개발공사 직원휴게실에서 김 씨와 문화재발굴사업 예산산정 문제로 이견이 있어 말다툼을 하게 된다. B 씨는 김 씨가 상급자인 자신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를 냈다. B 씨는 김 씨의 멱살을 잡고 무릎으로 복부를 가격했다. B 씨는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진 김 씨 상체를 발로 밟았다.
많은 회사 사람이 이 사건을 목격하거나 알게 되면서 김 씨는 정신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이 사건으로 상당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입었고 현재도 그로 인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며 “피고인이 범행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며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관리직인 A 씨 사건은 지난 11월 12일 대법원 판결까지 선고됐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2015년 5월 14일 충청남도개발공사 건물 7층 베란다에서 A 씨가 주먹으로 김 씨 얼굴과 턱 부위를 수차례 때렸다. 이 사건도 다수의 충청남도개발공사 직원들이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
이 사건으로 A 씨는 1심에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A 씨가 범행을 극구 부인하면서 오히려 피해자를 여러 가지로 비난해 피해를 가중시킨 점, 피해자가 심각한 우울증, 불면증 등 정신적 피해를 호소해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더 자세하게 당시 상황을 판결에 적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충청남도개발공사 직원 C 씨는 “2016년 5월께 회식자리에서 A 씨가 김 씨를 보면서, ‘내가 김 씨를 때렸더니 지금은 일을 잘한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어 피해자 김 씨 진술을 뒷받침했다. 또 다른 직원 D 씨도 ‘당시 피해자가 주저앉아 우는 것을 봤다’며 ‘베란다에 있던 사람에게 폭행 사실도 들었다’고 밝혀 폭행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는 A 씨 말의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김 씨는 충개공을 퇴사한 뒤에도 정신적인 고통이 계속됐고 정신과 치료를 장기간 받았다.
2015년과 2016년에 벌어진 사건이 이제야 판결이 나게 된 것은 김 씨가 너무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 충청남도개발공사를 떠난 것과 연관이 있다. 폭행 사건 등을 겪으면서 김 씨는 정신적으로 무너졌고 2016년 12월 충청남도개발공사를 퇴사했다. 이후 김 씨는 당시 상황이 떠오르곤 해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었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2018년 12월 김 씨는 결국 A 씨와 B 씨, 두 사람을 고소할 준비를 한다. 김 씨는 “직장을 10년 넘게 다녔지만 회사에서 두들겨 맞은 것은 충청남도개발공사 때밖에 없다. 내 병이 폭행 사건과 연관돼 있음을 깨닫고 당시 사건을 진술해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직원들에게 안부 전화를 돌리며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지 물어봤다. 18명 가운데 대부분이 당시 폭행을 기억한다고 답했다. 그 기록을 경찰에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기록을 제출한 뒤 돌아오는 건 오히려 직원들의 반발이었다. 당시 상황을 아는 직원 E 씨는 경찰에서 조사를 요구하자 김 씨에게 전화해 ‘B 씨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E 씨는 “나는 B 씨 도와준다. 그렇게 알라는 의미에서 전화했다. 당신은 회사를 그만뒀지만 나는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A 씨와 B 씨는 각각 대법원, 1심 판결에서 범행이 인정됐지만 별다른 타격은 없는 상황이다. 충청남도개발공사는 인사위원회를 열고 A 씨는 훈계 처분, B 씨는 대법원 확정 판결 전까지 징계 처분을 보류했다. 충청남도개발공사 관계자는 “A 씨는 폭행 사건 발생 이후 수사 의뢰한 시점이 징계 시효를 도과해 징계처분 할 수 없어 훈계했다”며 “B 씨는 대법원 확정 판결 결과 통보 시 인사위원회를 다시 열겠다”고 말했다.
이런 입장과 달리 충청남도개발공사 인사 규정 38조 직위해제에는 ‘형사사건으로 구속되거나 기소된 자’는 직위를 해제한다고 돼있다. 또한 충청남도개발공사 징계 및 포상 시행내규에 제7조에서도 기소유예 및 공소제기 결정이 되면 징계 기준에 따른다고 돼 있다. 1심 판결이 났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공소만 제기돼도 직위해제된다는 기존 규정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다.
충남지역 국회의원실에 근무했던 한 국회 관계자는 “지방 공기업은 기본적으로 서로 챙겨주고 밀어주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 또 지방 공무원, 공기업 특성상 혼맥까지 늘어난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가 된다. 여건상 냉정한 징계가 나오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 씨도 이 말에 동의한다. 그는 “내가 근무를 못해 맞은 게 아니다. 2015년 12월 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인정받기 위해 미친 듯이 일했지만 서울에서 온 나는 폐쇄적인 지방 사회에서는 타지인, 외지인이었을 뿐이다”라고 호소했다. 김 씨는 지난해 3월 A 씨와 B 씨, 충청남도개발공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