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전두환 씨가 만든 대통령별장 청남대의 전두환대통령길. 사진=이송이 기자
1983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부터 대통령 공식 별장으로 이용됐던 청남대는 일반인에게 개방된 2003년 4월까지 20년여 동안 여섯 명의 대통령에 의해 89회, 472일 이용됐다. 본관 외에도 182만 5000㎡(55만 3000평)에 헬기장과 골프장을 비롯해 양어장과 야외수영장까지 갖췄다.
뒤로는 산을, 앞으로는 대청호를 두르고 지어진 청남대는 대통령 별장답게 입구를 걸어 잠그면 산과 호수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 쉽게 침입할 수 없는 구조다. 입구까지 들어오는 길도 외길로 뻗어있어 경호에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 지금도 승용차가 청남대 안까지 들어오려면 미리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 단, 관광버스나 시내버스를 이용해 들어가는 경우는 제외다.
2015년에는 역대 대통령 10명의 동상이 모두 마무리됐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대통령 동상은 대통령기념관이 있는 양어장 주변에 세워졌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의 동상은 각 대통령의 길 입구에 세워졌다. 최근 훼손으로 문제가 불거진 전두환 동상도 이 가운데 하나로 전두환 대통령길에 세워져 있다.
청남대에는 등산로 외에 몇 개의 산책로가 있는데 저마다 대통령의 이름이 붙어있다. 전두환 대통령길을 비롯해 노태우 대통령길, 김영삼 대통령길, 노무현 대통령길, 김대중 대통령길, 이명박 대통령길 등 총 6개다.
그런데 걷다보니 관광객에게서 흔히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가장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로 꼽히는 산책로가 전두환 대통령길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무장애 나눔길로 숲속에 약 1.5km의 데크길이 연결되어 있어 노인이나 아이, 몸이 불편한 사람도 걷기 편하게 돼 있다. 걷다보면 다른 대통령길과 달리 유난히 세심하고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다는 느낌도 든다. 또 전두환 대통령길 중간에는 청남대와 대청호를 360도로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가장 많은 관람객이 자연스레 이 산책로를 찾게 된다.
전두환 대통령길을 걷다보면 여기저기서 관광객들의 놀라움과 불만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사진=이송이 기자
한 관광객은 “어머, 여기 전두환의 길이래, 근데 왜 이렇게 예쁘게 잘 다듬어 놨데? 동상까지 있네? 이거 이대로 놔둬도 되는 거야?” 라며 혀를 끌끌 찼다. 또 다른 관광객은 “여기선 사진 찍지 마, 기분 나쁘다”며 사진을 찍어달라는 일행의 요청을 거절했다. 한 할아버지 관광객은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이런 범죄자의 동상을 자랑스레 세워두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 공무원은 그렇다 치고 이걸 가만히 놔두고 구경하는 국민들이 다 팔푼이 같다”고 한탄했다. 어떤 이들은 전두환 대통령길이 있다는 자체로 놀라움을 표시하며 단체로 오던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전두환 대통령길을 걷다보면 이렇게 여기저기서 관광객들의 놀라움과 불만들이 심심찮게 들렸다. 전두환 동상을 훼손했다는 관람객이 방문하기 전이었지만 언제든, 누구에 의해서든 그런 상황이 쉽게 올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됐던 본관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본관 별장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는 전두환 씨의 사진들이 여기저기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침실과 거실, 연회장, 골프장 등에서 전 씨가 가족들과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 들어있었다. 다른 대통령의 사진은 거의 없었고 유독 전 씨와 그의 가족들 사진만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전 씨의 모습은 젊었고 대통령이던 시절의 위세를 짐작케 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본관 건물 내에서는 무슨 이유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청남대 별장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는 전두환 씨와 그의 일가가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는 사진들이 내부에 전시되어 있다. 내부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사진=이송이 기자
전두환 대통령길과 청남대 별장 본관의 모습만 본다면 전두환 씨가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가 직접 사용한 물건들을 전시함으로써 위엄까지 부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전두환 씨는 청남대 이곳에서만큼은 아직 전직 대통령으로서 상당한 예우를 받고 있는 듯 보였다.
전두환 대통령길 중간, 호숫가 정자 옆으로 전두환 씨가 청남대에서 쉬는 모습과 함께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를 만든 대통령’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송이 기자
반면, 노무현 대통령길과 김대중 대통령길은 산자락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좀 떨어진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길은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등산로다. 청남대의 빗장을 연 노무현 대통령의 동상은 김대중 대통령길, 김영삼 대통령길, 노무현 대통령길이 만나는 지점에 김대중 대통령 동상과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 여러 혐의로 재판 중인 이명박 대통령길은 매표소와 가장 가깝게 위치한다. 역시 초입에 동상이 서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