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구단 역사상 최초 외국인 감독인 카를로스 수베로 선임을 발표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한화 구단은 26일까지만 해도 ‘새 사령탑을 선임하는 과정에 있다. 최종 후보를 국내외 지도자 3인으로 압축했고, 최종 후보 3인에 카를로스 수베로가 포함된 건 사실이지만 아직 결정된 건 아니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멕시코 매체의 보도와 외국 기자들의 트윗으로 인해 한화는 더 이상 공식 발표를 미룰 수 없었다. 마침내 27일 오전 8시 36분 ‘한화이글스, 제12대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선임’이라는 내용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그렇다면 카를로스 수베로는 어떤 인물일까.
1972년생인 수베로 감독은 한화 박찬혁 신임 대표이사 및 정민철 단장과 동갑이다. 1991년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시작으로 5년간 선수로 뛰었지만 줄곧 마이너리그 선수로 활약했다. 선수 생활은 크게 빛을 보지 못했지만 지도자로 남다른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1년 텍사스 레인저스를 시작으로 15년 동안 시카고 화이트삭스, LA 다저스, 밀워키 브루어스를 거치며 마이너리그 사령탑을 역임했다. 2016년 밀워키 브루어스 1루 코치로 승격됐고, 2019년까지 1루 및 주루코치로 활동했다. 이 시절 에릭 테임즈, 최지만과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베로 감독은 2019 프리미어12에서 베네수엘라 야구 대표팀 감독을 이끌었다. 오는 2021 도쿄올림픽에도 베네수엘라 대표팀을 이끌 예정이지만 한화 사령탑에 오르며 대표팀을 더 이상 이끌 수 없게 됐다. 수베로 감독의 강점은 데이터 야구에 능하고, 선수들과의 소통에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베로 감독의 한화 차기 감독 내정설이 가장 먼저 알려진 곳은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니얼 김(ESPN KBO 인사이더)이 운영하는 ‘DKTV’를 통해서였다. 그는 5일 전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렸다.
‘메이저리그 소스에 의하면 한화 감독은 이미 정해졌다. 즉 외국인 감독이 선임될 예정이다. 구단 오피셜이 나오지 않아 확정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미국 쪽에선 결정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구단 발표 전이라 이름을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차기 한화 감독은 메이저리그 코치 경력 4년, 프리미어12 대표팀 감독 경력에다 마이너리그에서 오랫동안 코치와 감독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선수들과의 소통 능력과 수비 쪽에 강점을 갖고 있는 지도자라 한화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수베로 한화 신임 감독(왼쪽)은 지난 2019시즌까지 밀워키 브루어스 1루 및 주루코치로 활동했다. 사진=연합뉴스
대니얼 김의 방송이 공개된 후 다음날 한화는 정민철 단장이 11월 21일 외국인 감독 후보 인터뷰와 외국인 선수를 보기 위해 미국(플로리다 올랜도)으로 출국했다고 발표했다. 한화는 정 단장의 출국이 외국인 감독 선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못 박았지만 단순히 인터뷰를 위해 귀국 후 2주일의 자가 격리를 감수하고 미국으로 출장을 떠났을 리는 만무했다.
정 단장이 출국했을 때는 이미 수베로 감독 영입이 어느 정도 확정된 상태였고, 세부적인 내용을 논의하고 인사하기 위해 미국행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수베로 감독이 한화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그는 최소 2명의 외국인 코치를 데려올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는 일찌감치 코치진을 대거 정리했다. 1군 송진우 투수코치, 이양기 타격코치를 비롯해 퓨처스 김해님 투수코치, 김성래 타격코치, 채종국 수비코치, 차일목 배터리코치, 전형도 작전·주루코치, 육성군 장종훈 총괄, 재활군 구동우 코치 등 무려 9명이었다.
이후 정 단장은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두산 조성환 코치와 접촉해 조 코치를 한화 코치로 영입했다. 당시 정 단장은 조 코치에게 대변혁의 중심에서 젊은 선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 코칭스태프가 필요하다며 조 코치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베로 감독은 아마도 수석코치와 투수코치를 데려올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서 대니얼 김은 또다시 유튜브 ‘DKTV’를 통해 수베로 감독과 함께할 투수코치에 대한 정보를 풀어냈다. 대니얼 김은 투수코치 후보로 ‘메이저리그 올스타 2회 출전, 올스타전에서 승리 투수 경험이 있고, 메이저리그 코치 경험은 없지만 뉴욕 양키스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육성에 일가견이 있는 지도자’라고 특징지었다. 즉 감독은 마이너리그 출신이지만 투수코치는 메이저리그에서 2회 올스타에 출전할 정도로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정보를 종합해보면 가장 근접한 인물이 1997년과 1999년 올스타에 출전했고, 1997년 올스타전에서 승리 투수에 오른 호세 로사도다. 그는 2011년부터 뉴욕 양키스 마이너리그 투수코치로 활약했다.
대니얼 김은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관련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게 된 배경으로 “메이저리그 관계자로부터 정보를 입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베로 감독의 지도자 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어냈다.
“최근까지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메이저리그 코치로 4년 동안 활약했다. 데이터와 분석에 능한 밀워키 데이빗 스턴스 사장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수베로 감독의 지도력이 더욱 궁금해진다. 실력이 없었다면 밀워키에서 1, 2년도 아니고 4년을 머물 수 없었을 것이다.”
대니얼 김은 한화가 창단 최초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 것과 관련해서 다양한 야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선택이라고 해석했다.
“외국인 감독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수베로 감독이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한국 야구를 이해하고, 한화 이글스의 팀 문화를 파악하느냐가 중요하다. 2018년 SK 와이번스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힐만 감독을 그 해 만난 적이 있었는데 힐만 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자신이 일본 팀(니혼햄 파이터스)을 이끌 때 실수했던 게 마음이 급한 나머지 너무 빨리 자신의 색깔을 입히려 했던 부분이라고. 급하게 팀 색깔을 바꾸려다 보니 부작용이 많았고 돌이켜보면 그 방식이 좋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반면에 SK에서는 2년 동안 단계별로 색깔을 입히려 했고, 그 부분이 선수들에게 신뢰를 얻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부분을 수베로 감독한테 그대로 전하고 싶다.”
2016년 10월, SK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인 트레이 힐만에게 사령탑을 맡겼다. 그는 2006년 니혼햄을 우승시키고 미국으로 돌아가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 감독을 역임하며 미국, 일본 야구 문화의 장단점을 고루 알고 있는 상태였다. 힐만 감독은 부임 첫 해 SK를 와일드카드 결정전으로 이끌었고, 2018년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뒤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힐만 감독은 SK를 이끌며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췄다. SK가 힐만 체제 이후 ‘거포군단’으로 변모한 부분, 수비 시프트와 적극적인 작전으로 약점을 메운 부분 등은 힐만 감독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베로 감독은 구단을 통해 KBO리그에 도전하게 된 배경으로 “인생에 있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곤 하는데 나에게는 지금이 그런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한화로부터 감독직을 제안 받았을 때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 수베로 감독은 한화의 연락을 받고 친분이 있는 힐만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밝혔다. 1월 중순 입국 예정인 그는 “앞으로의 3년은 우리에게 힘든 시간이겠지만 팀이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흥미로울 것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