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영화 ‘콜’에서 전종서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영숙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영화 ‘콜’에서 전종서가 맡은 오영숙은 현재로부터 20년 전의 과거에 살고 있는 28세의 여성이다. 억압적인 신엄마(이엘 분)의 ‘신딸’로 키워지던 그는 가학적인 모녀 관계 속에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광기를 억누르고 살던 중, 현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동갑내기 김서연(박신혜 분)과 신비한 무선전화기로 연결되면서 그의 조언을 듣고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조금씩 바꿔 나간다.
동갑내기라는 점, 가족 관계 속 냉랭한 기류 등의 공통점을 찾으며 우정을 쌓던 중 영숙이 과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서연의 아버지를 살려주면서부터 둘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게 된 서연과 달리 여전히 악몽 같은 삶에 갇힌 영숙은 결국 그의 신엄마를 살해한 뒤 걷잡을 수 없는 광기로 현재를 살고 있는 서연까지 위협하게 된다.
전종서는 이처럼 빠르게 극단으로 치닫는 영숙의 감정 변화에 대해 “모든 것을 기민하게, 확대해석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굉장히 극단적인 부분이 있는 캐릭터예요. 아주 작은 감정이나 상황, 사소한 말 한 마디도 굉장히 기민하게 받아들이는 거죠. 예컨대 언제 전화주기로 약속했는데 그 시간에 전화를 주지 않는다든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사소한 걸 좀 더 확대해석해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런 작은 불씨들이 화근이 되고, 마치 눈덩이를 끝까지 굴려서 크게 만든 뒤 그게 폭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게 영숙이의 감정이었다고 생각해요. 큰 저택에 신엄마와 둘이서만 갇혀 살며, 서연이를 만나기 전에 친했던 친구와는 관계가 삐뚤어졌고 집 밖으로 출입도 맘대로 할 수 없죠.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풍선처럼 모든 게 다 ‘일보직전’인 상태로 살다가 서연이로 인해 그 풍선을 터뜨리게 된 거예요.”
과거에 살며 현재를 위협하는 연쇄살인마 영숙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전종서는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영숙이로 연기하면서 1차, 2차 거듭하다 보니 영숙이란 캐릭터가 좀 더 선명해지더라고요. 이 아이는 굉장히 천진난만하고, 장난기가 가득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그런 악동 같은 웃음소리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웃음소리가 나왔던 것 같아요. 이 장면에서 웃어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기보단 순간순간 제가 연기하면서 느끼기에 이 부분이 재밌으면 실제로 웃음이 나왔고(웃음). 서연에게 ‘너희 아빠를 내가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웃는 장면도, 누군가의 생사가 걸린 문제가 나에겐 일종의 게임이 될 수도 있다는 굉장히 비정상적인 사고를 천진난만하게 하는 그런 캐릭터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촬영을 마친 뒤 집에 오면 온몸에서 열이 날 정도로 열연했다는 전종서는 영숙이 ‘독보적인’ 캐릭터이길 바랐다고도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유사한 다른 작품의 캐릭터나 영화보단 영숙을 구성할 수 있는 음악이나 사진 작품에서 그의 존재를 찾았다고 했다. 대중들에겐 ‘Bad guy’(배드가이)로 유명한 미국의 가수 빌리 아일리시가 영숙의 모티브가 됐다.
‘거장’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데뷔작으로, 전종서는 연이은 스크린 주연작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첫 시작을 ‘거장’ 이창동 감독의 영화로 시작해 본인의 이름보다 감독의 이름으로 먼저 불려야 했던 전종서였다. 그런 만큼 이번 ‘콜’이야말로, 그의 이름 석 자로 바로 설 수 있는 첫 작품이 되는 셈. 그렇기에 영숙을 더 완벽하고 독보적인 ‘전종서만의 똘기’로 무장해야 했다. 고민하고 연구한 만큼 그 결과도 성공적이다.
‘콜’에 이어 내년 개봉이 예정된 ‘우리, 자영’과 전종서의 할리우드 첫 진출작인 ‘모나리자 앤 더 블러드문’까지 이어지는 모든 작품에서 그는 주연을 맡고 있다. 데뷔 연차로 이제 고작 3년 된 배우에게 있어 이 길이 마냥 꽃길로만은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종서는 이것 하나만큼은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도전적이고 기존의 틀을 많이 깰 수 있고, 파격적이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좀 더 미친 영화’라면 앞으로도 서슴없이, 또 거침없이 임하겠다”는 각오였다.
“저는 작품을 만나는 것에서 제게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대신 그 작품에, 그 배역에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죠. 주인을 만나는 작품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작품을 최대한 어떻게 자기화시켜서 캐릭터를 만드는지, 그게 제가 해야 하는 일인 거죠. 개인적으로 저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기의 제 모습이 제가 투영하는 어떤 캐릭터로 필름 안에 담겨서, 언제가 되더라도 돌려 볼 수 있는 이야기로 남는다는 게 좋아요. 그게 제가 연기를 하게 만드는 많은 이유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그리고 분명한 건, 기존에 어떤 이유들 때문에 선택을 좀 꺼리고 조바심을 냈던 그런 작품이나 캐릭터들에 더 거침없이 임하고 싶다는 거예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