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시인
[대구=일요신문] 이상화 시인의 삶을 품은 병풍 한 점이 대구시에 기증된다.
대구시는 원 소장자인 민족지사 포해 김정규(1899-1974)의 삼남 김종해(1938년 대구출생)씨가 이상화 시인과 대구를 중심으로 교류했던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병풍 한 점을 시에 기증했다고 1일 밝혔다.
빼앗긴 들을 노래하던 시인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대구시에 기증되는 이 병풍은 ‘금강산 구곡담 시’를 담은 10폭 병풍으로 죽농 서동균(1903-1978)이 행초서로 쓴 서예작품이다.
병풍의 마지막 폭에 1932년 죽농 서동균이 글씨를 쓰고 시인 이상화(1901-1943)가 포해 김정규에게 선물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서화작품 가운데 이처럼 제작연도와 얽힌 사연이 뚜렷하게 기록된 것은 드문 사례다.
공개행사는 3일 오전 10시 30분 대구미술관에서 채홍호 행정부시장과 기증자 김종해씨, 이원호 이상화기념관장,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글씨를 쓴 서동균은 근현대기에 활동한 대구의 대표적인 서예가이자 수목화가다.
김정규는 합천 초계 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며 대구노동공제회 집행위원이었다. 일본에 유학해 주오(中央)대학, 메이지(明治)대학 등에서 수학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신간회 활동도 한 민족지사다.
이 병풍이 제작될 당시인 1932년은 서동균이 30세, 이상화 32세, 김정규 34세의 청년으로 각각 두 살씩이 차이 나는 또래였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기에 민족정신을 잃지 않았던 대구의 젊은 엘리트였으나 이들이 친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었다.
하지만 이 병풍은 이상화가 10폭이나 되는 대작을 부탁할 만큼 서동균과 막역한 사이였고, 김정규는 이상화로부터 이런 대작을 증정 받을 만한 인물이었음을 알려준다.
이상화는 신간회 대구지회 출판 간사로 있으며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사건에 연루돼 대구 경찰서에 구금됐다. 활동시기와 장소는 달랐지만 김정규는 1920년대 항일운동으로 2년 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고 신간회 활동에도 관여했다.
대구에서 활동한 김종해 씨는 이상화 고향인 대구에 병풍을 기증키로 하고 직접 대구시로 연락했다.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은 바로 작품을 확인하고 기증 절차를 밟았다.
김종해 씨는 “선친께서는 상화 시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병풍이라고 지극히 아끼셨다. 병풍을 보며 금강산 구곡담 시를 직접 따라 쓰기도 할 만큼 좋아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1974년 선친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집에서 소중히 보관해 오다 상화 시인의 고향인 대구가 이 작품을 보관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던 중 마침 대구시에서 문화예술아카이브 구축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연락했다”고 전했다.
경북대 외래교수인 서화연구자 이인숙 박사는 “이 병풍은 일제강점기인 근대기 대구가 보유한 최대의 자산 중 하나인 이상화의 국토에 대한 생각, 교류관계, 문화활동 등을 알려주는 유물이란 점에서 중요하다“면서 ”이상화와 관련된 스토리로 근대의 문화지형을 충실하게 확장하고 근대기 대구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서사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채홍호 행정부시장은 “선대의 교류를 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증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면사 ”이번 기증을 계기로 근대기 예술가들의 교류, 독립운동 관련 연구가 이어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성영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