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검찰청에서 원전 사건은 신성식 반부패부장과 조남관 차장(직무대행) 지휘를 받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추미애 장관 라인으로 분류된다. 이는 시작일 뿐이라는 게 검찰 내 지배적인 관측이다. 법무부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겨눈 대전지검 수사 라인에 대한 12월 원포인트 인사설까지 나오고 있다.
대전지검이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의혹 수사를 두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무 배제된 사이 대검찰청과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지검에서는 산업부 내 사건 핵심 관계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필요성을 대검찰청이 반려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대검 시간 끌기?
대전지검이 우선 주목한 혐의는 산업부 내 자료 삭제다.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던 도중 심야에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444개 파일을 지운 산업부 전·현직 국장급 공무원 등에 대한 구속영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올렸다. 이를 보고받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보강 수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하라”고 지시했고, 대전지검은 보강 수사를 거처 11월 23일 대검 반부패부에 “영장을 청구하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24일 오후 6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해 직무 배제 및 징계 청구 발표를 했고 그 후 12월 1일 오후까지 대검 반부패부는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대검찰청 조남관 차장과 신성식 반부패부장은 대표적인 ‘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된다. 올해 하반기 인사 때 대검 차장검사로 임명된 조남관 법무부 검찰국장(사법연수원 24기)은 전북 전주 출생으로 전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장을 맡았다. 2000년에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1과장으로 활동하며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조사 중 사망한 최종길 전 서울대 법대 교수 의문사 사건을 조사하기도 했다.
전남 순천 출신으로 순천고와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한 신성식 반부패부장(사법연수원 27기)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때 채널A 기자 녹취록에도 없는 내용을 KBS에 흘려줘 오보를 유발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논란 속에서도 그는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동시에 특수 수사를 총괄 지휘하는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에 임명됐다.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윤석열 총장 밑에 조남관 차장–신성식 부장 라인을 놓고 “견제용으로 친정권 검사 심어두기”라는 해석이 나온 바 있다.
조남관 대검 차장은 올 하반기 인사 때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임명됐다. 전북 전주 출생으로 전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장을 맡았다. 사진=이종현 기자
검찰의 한 관계자는 “최근 대검찰청에서 구속영장 청구를 반대한 이유가 ‘조직적 증거인멸은 수사 본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건 때 증거인멸로 영장을 청구했던 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냐”며 “증거인멸의 경우 구속 가능성이 높은데 구속될 경우 청와대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인 탈원전이 흔들리게 될 것을 우려해 검찰이 정치적인 고려를 하다 보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역시 “증거인멸 등으로 구속될 경우 신병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수사 때 더 적극적으로 처벌을 피하기 위해 본 혐의에 대한 진술에 협조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위법적인 경제성 평가 조작이 있었다’는 게 감사원 판단이라면 청와대에서부터 시작된 탈원전 정책에 맞추기 위해 산업부가 어디까지 위법하게 했는지를 확인하는 수사에서 청와대 정책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수사를 방해하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검사)는 빠르게 속도를 올려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앞서 11월 5일 산자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한국가스공사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고,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을 비롯해 청와대에 파견됐던 산자부 고위 공무원 자택과 사무실도 압수수색하고 이들이 사용했던 휴대전화도 확보했다. 11월 내로 한수원 실무진 조사를 마무리하고 다음달부터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등 정부 핵심 인물에 대한 소환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게다가 증거인멸에 가담한 인물들은 구속영장을 청구해, 신병을 확보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윤 총장 직무 배제 결정 이후 대전지검 안팎에서는 수사 자체가 멈춰 섰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산업부 소식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압수수색 후 일주일가량은 관련 참고인 및 피의자 소환도 잇따라 이뤄지고 이미 넘어간 감사원 자료를 토대로 구속영장 청구도 거론되는 등 속도가 붙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수사가 멈춰선 분위기”라며 “아무래도 윤석열 총장과 추미애 장관 갈등에서 대전지검의 원전 수사가 ‘적지 않은 책임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신성식 대검 반부패부장은 채널A 기자 녹취록에 없는 내용을 KBS에 흘려줘 오보를 유발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됐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검사장으로 승진하는 동시에 특수 수사를 총괄하는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이 됐다. 사진=이종현 기자
대전지검은 “(윤 총장) 거취와 무관하다.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언론에 밝혔지만, 이두봉 지검장 등 간부급 검사 라인 등은 직무 배제 결정이 있었던 11월 24일 곧바로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남아 상황을 예의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는 “이런 정권을 겨눈 사건은 수사팀과 총장의 소통이 얼마나 잘 이뤄지는지가 수사에 있어 가장 큰 동력”이라며 “총장 부재 상태에서 원칙대로 수사한다고 하더라도 조남관 대검 차장(총장 직무대행) 체제에서 권력형 비리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나, 수사팀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인사로 검찰 전체 시그널?
그와 동시에 대전지검 원포인트 인사설도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스멀스멀 ‘12월 중 대전지검만 인사하는 내용’이 법무부 안팎에서 거론됐다. 윤석열 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두봉 대전지검장을 비롯, 박지영 차장검사와 이상현 형사5부 부장검사가 인사 대상으로 거론되는데, 이들은 모두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의혹 수사를 지휘하는 간부 라인에 해당한다. 이들을 ‘좌천성’으로 손보는 인사를 통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주려 한다는 설이다.
앞서의 검찰 관계자는 “윤석열 총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검사들은 물론,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했던 간부급 검사들이 대거 좌천된 가운데 대전지검 수사 간부급 검사들마저도 좌천되면 ‘정권 허락을 맡고 수사를 하라’는 시그널을 확실하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지금 검찰 분위기가 예전과 같지 않은 게 변수지만 추미애 장관이 추진 중인 윤석열 총장 해임과 대전지검 간부 원포인트 좌천성 인사가 검찰 전체를 장악하는 한 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