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쯤 술자리를 끝내고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 길거리에서 흡연하며 대화를 더 이어가거나, 택시나 대리기사를 기다리다 귀가 시간이 늦어진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이유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밤 9시 술자리를 끝내고 인근 모텔에서 2차까지 즐긴 뒤 귀가하는 이들이다.
유흥업소로 출근하던 보도방 소속 접대여성들이 요즘에는 일반음식점 등 다양한 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하다. 사진=임준선 기자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유흥업계는 영업 중단과 재개 과정을 몇 차례 반복했다. 이와 함께 보도방 업체들을 중심으로 한 변종 불법 유흥업이 급부상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상향으로 다시 룸살롱 등 유흥업소는 문을 닫았지만 이런 변종 유흥업이 크게 번성하고 있다.
지난 8월 16일 거리두기 2단계 조치로 유흥업소에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지면서 영업이 중단되자 호프집 등에서 불법 변종 유흥업이 시작됐다. 그렇다고 이런 영업을 호프집 업주가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 보도방 업체에서 적절한 호프집을 예약한 뒤 룸살롱 영업상무 등을 통해 단골 고객을 소개받아 모객 행위를 한다. 예약된 손님들이 호프집을 찾으면 미리 와서 대기 중인 접대여성들과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갖는다. 그리고 술자리가 끝나면 모텔 등으로 2차를 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8월 23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만남의 장소를 호프집에서 고깃집이나 횟집 등 일반음식점으로 바꿨다. 접대여성들과 술을 마시고 2차를 가는 시스템은 똑같다. 다만 밤 9시까지는 술자리가 끝나야 하는 만큼 최대한 일찍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것과 2차 비용이 늘어난 게 달라진 점이다. 접대여성들도 어차피 하루에 손님을 한 명밖에 받을 수 없는 터라 급하게 업소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소위 말하는 ‘긴 밤’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셈이다.
그렇다고 정말 긴 밤은 흔치 않다. 보도방 업체 직원들은 2차 장소 밖에서 대기하며 접대여성들이 일을 빨리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렇지만 보다 여유롭게 2차 시간을 주고 조금 늦어도 전화해서 채근하지 않는다. 대신 비용을 평소보다 비싸게 받는다.
보도방 업체들이 룸이 있는 고급 음식점을 끼고 연말 틈새 불법영업을 노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하다. 사진=일요신문DB
더 큰 문제는 송년회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방역 당국의 송년회 모임 자제 당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보도방 업체들은 이런 송년 모임을 대상으로 불법 영업을 노리고 있다. 연말 ‘접선’ 장소는 공개된 형태의 호프집이나 일반음식점이 아닌 룸이 있는 고급 음식점이 될 전망이다. 이렇게 될 경우 룸 안에서 사실상의 술 접대가 가능하다. 룸살롱과 거의 유사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이다.
기존에는 룸살롱이 비싼 주대를 챙기고 접대여성을 공급하는 보도방은 테이블 차지(TC, Table Charge)와 2차 비용을 접대여성과 나눠 갖는다. 그런데 요즘 보도방이 주도하는 불법 유흥업은 룸살롱은 빠진 채 보도방이 룸살롱보다 비싼 TC와 2차 비용을 챙긴다. 보도방 입장에선 손님들과 직접 거래선을 뚫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이 부분만 해결하면 훨씬 더 큰 수익이 가능하다. 손님들 입장에서도 남의 시선을 피해 비싼 주대를 내며 룸살롱을 드나들 필요 없이 자신들이 정한 술자리에 접대여성을 불러 2차까지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기존 룸살롱 업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면서 아예 유흥업계의 생태계 자체가 크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강남에서 룸살롱을 여러 개 운영하는 한 유흥업계 큰손의 설명이다.
“룸살롱은 술값이 비싼 데다 안주도 맛있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손님들이 어딘가에서 1차를 하고 2차로 룸살롱에 온다. 그런데 아예 1차 술자리에 접대여성이 출장 가는 형태가 늘어나면 누가 룸살롱을 찾겠는가. 정상적으로 세금 내고 영업하는 룸살롱만 다 죽어나가고 유흥업계와 윤락업계의 경계도 모호해지면서 불법 영업만 급증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집합금지 명령에도 불법 영업을 하려는 룸살롱들도 있는데 보도방에서 접대여성을 보내주지 않는다더라. 정말 답답하다. 룸살롱과 보도방의 관계가 이렇게 역전될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