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속에도 공격적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선 현대백화점그룹의 명암이 내년쯤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최준필 기자
#코로나19에도 외형 확대한 현대백화점그룹
올 초 신년사에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2020년을 그룹의 새로운 10년의 출발점이자 성장을 위한 실질적 변화를 실천해 나가는 전환점으로 삼고,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지 않으면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셈이다.
실제 현대백화점그룹은 올해 공격적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시작은 면세점 사업이다. 지난 2월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두산타워에 시내면세점 2호점을 열었다. 지난 3월에는 2000억 원을 증자해 확보한 자금으로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따냈다. 현대HCN의 방송통신 사업부를 매각해 마련한 1조 원가량은 화장품 사업에 투입되고 있다. 기능성 화장품 전문기업인 클린젠코스메슈티칼에 이어 천연화장품 원료 기업 SK바이오랜드를 인수했다. 12월 중순에 본입찰 예정인 CJ올리브영 상장 전 지분매각에도 뛰어든 상황이다.
신규 매장 출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을 개장했다. 지난 11월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을 오픈했다. 코로나19로 매출에 직격타를 맞고 부실점포 폐점, 매각 등의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신세계·롯데와 상반된 행보다.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곳은 내년 2월 오픈 예정인 현대백화점 여의도 파크원점이다. 2016년 9월 정지선 회장이 파크원에 백화점을 출점하겠다고 밝힌 지 4년여 만의 오픈이다. 파크원점은 지하 7층~지상 9층 규모로 영업면적만 8만 9100㎡다. 신세계 강남점을 뛰어넘고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백화점이 된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과 협업한 매장도 선보일 전망이다.
이진협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파크원점의 성패가 현대백화점의 주가를 결정할 것”이라며 “올해 오픈한 매장보다 서울 중심부에 신규 오픈하는 파크원점의 중요성이 크다. 매출액 추정치가 6000억 원 수준으로 전체 백화점 사업부 매출의 약 8%를 차지할 정도”라고 말했다.
올해 현대백화점그룹은 서울 동대문에 시내 면세점을 오픈한 데 이어서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따냈다. 사진=연합뉴스
#공격 경영, 신의 한 수 될까
문제는 코로나19의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오픈에 따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여의도는 상업지구 특성상 주말 유동인구가 적어 모객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백화점은 주말 매출이 평일보다 2배가량 높다. 고객을 끌어모아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더욱이 경쟁 점포가 건재하다. 영등포 상권에 있는 신세계·롯데백화점도 날을 세우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11개월에 걸쳐 리뉴얼은 마쳤다. 6270㎡ 규모의 1층 명품관을 꾸미고 프라다·루이비통·구찌·까르띠에·불가리 등 20여 개 해외 브랜드를 유치했다. B동 건물 1층은 대형마트로 탈바꿈했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도 20·30대 인구 비중이 31.9%에 달하는 상권의 특성을 반영한 리뉴얼을 12월 내 완료할 예정이다.
파크원점은 3대 명품이라 불리는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를 유치하지도 못한 상태다. 명품은 백화점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어 수익성과 직결된다. 3대 명품이 모두 입점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명품 매출이 40%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코로나19 여파에도 명품 시장의 성장세는 안 꺾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주요 백화점 전체 매출이 14.2% 감소하는 가운데서도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2% 증가했다. 현대백화점만 보더라도 해외명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40% 늘었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입점 시기에 맞춰서 3대 명품을 입점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라면서도 “오픈 후에도 3대 명품이 서울 시내 백화점, 면세점에 적지 않게 입점한 상황에서 여의도에 신규 입점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명품 유치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11월 정기 임원인사에서 이재실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면세점 대표를 맡겼다. 백화점 출신 인사를 등용해 3대 명품 유치에 성공한 신세계면세점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대표는 현대백화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3대 명품 유치에 전력을 다할 전망이다. 올해 현대백화점그룹은 면세점 2곳을 추가 오픈해 총 3곳을 운영 중이지만, 3대 명품을 단 하나도 입점시키지 못했다.
현대백화점은 사업 다각화에 나서면서 외형을 확대했으나 수익성은 악화된 상황이다. 올해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 8024억 원, 447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16%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26.5% 줄었다. 면세점 누적 적자는 약 1235억 원에 달한다. 신사업으로 선택한 화장품업계의 업황 역시 불투명하다. 업계 1위 아모레퍼시픽은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시행하기도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올해 현대백화점그룹은 기존 사업 확대에 집중하는 동시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신사업에 뛰어들었다”며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몰라 오프라인 점포, 면세점, 화장품 등에서 투자한 만큼 수익성을 기대하긴 아직 이르다”고 지적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