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취임 3주년 특별기자회견’ 차 청와대 춘추관에 입장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집권 4년차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기자들 앞에 선 횟수는 총 6차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중 150차례 기자회견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회, 박근혜 전 대통령은 5차례 기자회견을 열었다.
임기 초반이던 2018년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은 문 대통령에게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의 방법으로 언론과 소통하는 것은 또 그 가운데서도 핵심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언론과 접촉을 더 늘려나가도록 그렇게 노력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올해 문 대통령은 두 차례 취재진 앞에 얼굴을 드러냈다. 신년 기자회견과 취임 3주년 기자회견이었다. 가장 최근인 5월 10일 ‘취임 3주년 기자회견’ 특별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소통이란 단어를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취임사에서 소통이란 단어를 세 차례 강조했던 것과 사뭇 달라진 풍경이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취재진 질의응답에서만 소통이란 단어를 세 차례 언급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대국민 소통 관련 언급은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등 대북 외교 현안을 설명하는 데에 소통이란 단어를 활용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의 청와대 분수대 앞 시위 장면. 사진=박은숙 기자
9월 8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불통 행보를 꼬집었다. 주 원내대표는 “전임 대통령을 ‘불통’으로 몰아붙인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 기자회견 몇 번 했느냐”고 물었다. 주 원내대표는 “국민이 퇴진을 요구하면 끝장토론도 하겠다던 대통령은 내가 국민을 대신해 던진 10가지 질문에 답이 없다”고 덧붙였다.
주 원내대표는 7월 16일 대통령 국회 개원 연설을 앞두고 민감한 정치적 이슈부터 정책 관련 내용까지 총 10가지 질문을 문 대통령에게 건넨 바 있다. 여야 협치, 윤미향 사태, 경제정책 전환 여부, 탈원전 정책 폐기 여부, 남북관계, 부동산대책, 백선엽 장군 현충원 안장 논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피소, 2021년 4월 재보궐 선거 무공천 여부 등을 묻는 질문이었다. 야당 원내대표 질문에 문 대통령이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셈이다.
11월 28일엔 국민의힘 차기 대권 주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문 대통령 불통 행보를 지적했다. 원 지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노무현 정부 2.0으로서 국민과의 소통, 상대와 대화가 있을 것이란 기대가 우려보다 컸다”면서 “문 대통령이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해서 그런 기대를 키웠다”고 했다.
원 지사는 “하지만 당선 후 현실은 약속과 판이하다”면서 “대통령이라면 가져야 할 소통이란 기본 의무에 너무나 무심하다”고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어 원 지사는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와 더 비슷하다”면서 “문 대통령은 중요한 현안에 대해서도 침묵할 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은 11월 25일부터 청와대 분수대 앞에 진을 치고 1인 시위에 나섰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공식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추미애-윤석열 갈등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 불통을 지적하는 야당 공세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대통령은 충분히 소통을 하고 있으며 기자회견보다 SNS 소통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옹호론도 대두되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취재진과 대면 접촉을 하는 것보다 SNS를 통해 ‘편집권’을 쥐는 것이 청와대 입장에선 더욱 얻는 것이 많은 소통 방법이라 생각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조금 더 시각을 넓혀보면 쌍방향 소통 부재가 곧 불통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잡아내지 못한 것이라 볼 수 있다”고 했다.
2017년 5월 10일 취임식 당일 문재인 대통령.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문재인 정부의 소통 기조를 상징하는 공약이었던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도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2019년 1월 4일 유홍준 광화문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은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여러모로 소통 공약과 관련해선 스텝이 꼬이는 문재인 정부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침묵이 최선일 것이란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채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여러 사안이 원래 의도대로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그런 상황에 대통령이 개입하면 문제가 더 커지고 잃을 게 많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정치 문제가 자꾸 대통령과 연결되면 불이 청와대로 옮겨 붙는다”면서 “문 대통령이 갈등 조정자로 등장하면 또 다른 이슈가 불거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문 대통령 리더십은 ‘선비 리더십’에 가깝다”면서 “문제를 마주함에 있어 정치가의 책임 있는 행동보다 은은하게 지켜보는 선비적 행동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