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를 둘러싸고 시끌시끌하다. 마치 홈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처럼 ‘나 같으면…’ ‘내 딸이었으면…’하며 왕실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것. 히트 드라마 ‘오싱’의 작가, 하시다 스가코는 이러한 상황을 “왠지 모두가 쓸데없이 참견하는 친척이 된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일본 열도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를 둘러싸고 시끌시끌하다. 2017년 9월 3일 마코 공주와 대학 동창 고무로 게이의 약혼 발표 기자회견 모습. 사진=AP/연합뉴스
일본 왕실의 마코 공주가 동갑내기와 사랑에 빠졌다. 상대는 대학 동창인 고무로 게이(小室圭·29). 도쿄에서 법률사무소 직원으로 일하는, 이른바 평민 출신이다. 2017년 9월 마코 공주는 기자회견을 열어 “고무로와 약혼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두 사람은 더 없이 행복한 모습이었다. 마코 공주는 “태양처럼 밝게 웃는 그의 미소에 끌렸다”고 밝혔고, 고무로 역시 “공주님은 나를 달처럼 조용히 지켜봐주는 존재”라며 치켜세웠다. 젊은 커플의 탄생은 보는 이로 하여금 훈훈함을 자아냈다.
세간에서는 “평범한 사무직인 고무로가 공주의 배우자감으로는 다소 처지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었지만, 훨씬 많은 이들이 축복을 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결혼은 순탄하게 진행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 주간지의 보도가 나오면서 여론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주간여성’은 2017년 12월 26일호에서 “고무로의 어머니가 과거 교제한 남성으로부터 돈 400만 엔(약 4200만 원)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공짜로 알고 받았다”는 고무로 측과 “엄연히 빌려준 돈”이라며 펄쩍 뛰는 전 애인 측의 설전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설상가상 고무로의 모친이 폭력단과 관련이 있으며, ‘정체가 의심스러운 신흥종교 신자’라는 의혹도 나왔다. 또 “고무로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분신자살했고,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도 아버지의 자살 후 얼마 안 돼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뿐 아니다. “고무로 측이 왕실에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다”는 보도까지 나오자 비판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일본 왕실은 “마코 공주의 결혼을 2020년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마코 공주의 마음은 굳건한 듯싶다. 지난 11월 13일 마코 공주는 “우리는 서로가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며 “결혼은 이런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내놓았다.
최근 아버지 후미히토 왕세제도 두 사람의 결혼을 공식 인정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후미히토 왕세제는 11월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마코 공주가 고무로와 결혼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주관적인 느낌으로 결코 많은 사람이 납득하고 기뻐해주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아마 딸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헌법에도 결혼은 오직 양성의 합의에 근거한다는 게 있다. 본인들의 마음이 정말로 그렇다면 부모로서는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왕실이 고무로 어머니 가요 씨의 금전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사진=NNN 뉴스 캡처
아사히신문은 “딸의 마음이 3년이 가까운 시간에도 변치 않자, 왕세제도 결혼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기꺼운 승낙은 아니지만, 마코 공주의 결혼이 조만간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일본 왕실 여성은 일반인 남성과 결혼하면 왕족의 지위를 잃게 된다. 이때 왕실경제법 규정에 따라 ‘일시금’이 주어지는데, 왕족이 처음 독립생계를 꾸릴 때 받는 이른바 준비금 같은 것이다. 마코 공주의 경우 약 1억 4000만 엔(약 14억 8000만 원)이 될 전망이다. 단 법적으로 정해진 금액은 아니기 때문에 감액될 가능성도 있다.
초점은 “거액의 일시금이 전부 세금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약혼자의 금전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은 터라, 많은 일본인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더욱이 “스가 정권이 ‘결혼한 여성 왕족을 특별직 공무원으로 대우해주는 제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고령화·저출산 문제는 일본 왕실도 피해가지 못했다. 가뜩이나 왕족 수가 부족한데, 여성 왕족마저 결혼으로 차례차례 평민이 되면서 왕실은 꽤나 골치를 앓아왔다. 이에 일본 정부는 왕족 구성원의 감소로 인한 공무 부담을 덜어줄 대책으로 ‘고조(皇女·공주)’라는 직책을 만들어, 여성 왕족이 결혼 후에도 왕실 업무를 분담토록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특별직 공무원이 되면 역시 ‘혈세’에서 수당을 지급받게 된다.
따라서 마코 공주의 결혼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다. 한 네티즌은 “1억 엔이 넘는 일시금 외에도 평생 세금을 수당으로 가져간다. 세금으로 약혼자의 빚까지 갚아주는 게 아니냐”며 우려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왕족의 공무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향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격 요건이 엄격해야 한다. 국민감정을 이토록 무시하며 ‘결혼하려는 분’은 공무를 담당하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마코 공주 결혼 시 1억 엔이 넘는 세금이 지급되는 데 대한 비판 댓글들. 사진=야후재팬 캡처
물론 비판 여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남성은 나고야TV의 인터뷰에서 “마코 공주 아버지가 허락한 것처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결혼은 어디까지나 두 당사자들 간의 문제”라는 속내를 비쳤다.
왕실 저널리스트 야마시타 신지는 “여론이 계속 악화되면 마코 공주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왕실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세 가지 방법이 거론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고무로 측이 금전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약혼을 공식화하는 ‘납채 의식’을 치른 뒤 결혼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 왕족이 결혼하는 단계다. 고무로 측이 기자회견 등에서 문제 해결 경위를 잘 설명해 국민을 납득시킨다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관련 행사를 생략할 수도 있다. 납채 의식이 왕실의 전통이긴 하지만, 정해진 의무는 아니기 때문이다. 야마시타는 “남성 왕족과 달리 여성 왕족은 결혼 시 왕실회의를 거칠 필요가 없다.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간소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류가 수리되면 마코 공주는 남편의 호적으로 들어가, 왕실계보에서는 제적된다.
끝으로 결혼보다 먼저 왕실계보에서 이탈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이 희망할 경우 왕실회의가 열리고,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이탈할 수 있는 것. 찬성과 반대가 같을 땐 회의 의장인 총리의 판단에 맡겨진다. 과연 마코 공주의 결혼은 어떤 엔딩을 맞을까. 싸늘한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후미히토 일본 왕세제 가족은? 후미히토 왕세제는 지난해 퇴위한 아키히토 전 일왕의 차남이다.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이기도 하며, 차기 왕위 승계 1순위로 알려졌다. 1990년 가쿠슈인대학 1년 후배인 기코 왕세제빈과 결혼. 슬하에 마코 공주, 가코 공주, 히사히토 왕자를 두었다. |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