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은 현대건설에 한빛 3·4호기 가동 중단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건설 본사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현대빌딩. 사진=최준필 기자
지난 9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한빛 3·4호기 공사 당시 현대건설이 야간에 부실공사를 하면서 공극이 발생했다고 한빛원자력안전협의회에 보고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현대건설에 보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0월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도의적으로 현대건설에서 최소한의 조치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협의를 하고 있다”며 “성의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공문도 보냈다”고 전했다.
국정감사 이후에도 정치권과 지역사회에서는 현대건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수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26일 기준 한빛 3·4호기의 정비 기간은 각각 818.5일과 1186.5일에 달한다. 발전손실량과 발전손실금은 각각 3444만 메가와트(MWh), 2조 562억 원에 달한다. 이 의원은 “부실공사로 인한 피해가 한수원뿐 아니라 지역주민과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비용 책임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상태에서 재가동은 안 되며 현대건설도 이번 사건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지난 10월 28일에는 최남우 한수원 기술부사장이 영광군의회 한빛원자력발전소대책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지속적으로 사과를 표명하기 위해 협의를 요청했으나 현대건설에서는 검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며 “조만간 현대건설 측에서도 용기 있는 시인과 사과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한빛 3호기를 재가동하면서 원자력안전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영광군, 영광군의회 등 관련기관과 △부실공사 관련 피해 보상 △한수원의 사과 △제도 개선 추진 등을 합의했다. 하지만 부실공사 관련 피해 보상은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한수원 한빛본부 관계자는 “원전이 있는 지자체는 지방세를 걷을 수 있고,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 사업도 받기에 지역민들과 지자체에 대한 피해보상이 필요하다”면서도 “현대건설에 보상 관련 요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진행된 건 없다”고 전했다.
한수원 측은 현대건설이 한빛 3·4호기를 건설한 이후 국내를 대표하는 원전 시공사가 된 만큼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현대건설은 한빛 3·4호기 건설 후 월성 2·3·4호기, 한빛 5·6호기, 신고리 3·4호기, 신한울 1·2호기 등 국내 원전 9개의 시공을 맡았다.
앞의 한수원 한빛본부 관계자는 “한빛 3호기 보수비용은 한수원이 냈고, 관련 비용을 현대건설에 청구할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시효가 지나 현대건설에 법적으로 소송을 걸 수는 없고, 도의적인 책임을 요구하고 있지만 반응이 없다”고 전했다. 민법에 따르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된다. 한빛 3호기는 1995년, 한빛 4호기는 1996년 준공됐다.
한수원 측은 현대건설에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지만 현대건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전라남도 영광군에 위치한 원전 한빛 3호기. 사진=연합뉴스
현대건설은 한빛 3·4호기의 결함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보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공사 기간이 촉박하면 야간공사를 해야 하는데 원안위에서는 야간공사를 한 것 자체가 부실이라는 식으로 얘기한다”며 “설계대로 공사를 하지 않았거나 구조상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만 부실공사라고 할 수 있으며 아직 현대건설의 책임이 명확하지 않은데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정치권과 한수원의 요구를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탈원전 이슈로 국내 원전 해체가 예정된 상태고, 현대건설도 이에 발맞춰 원전 해체 기술 관련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발주처인 한수원과 사이가 나빠져 좋을 게 없는 상황이다. 또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처럼 현대건설이 한수원과 팀을 이뤄 해외 원전 수주전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이 한수원과 관계가 악화해도 향후 사업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보기도 한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한수원이 갑의 입장이었고 시공사들은 한수원에 협조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계약 이상의 추가적인 협조는 보기 어렵다”며 “한수원 같은 공기업은 국가계약법에 따라 입찰을 해야 하기에 감정에 따라 특정 업체를 배제할 수 없고, 이를 잘 아는 시공사가 굳이 한수원의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다”고 전했다.
한편으로는 한수원이 현대건설을 적극적으로 압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력업계 다른 관계자는 “국정감사 같은 공식석상에서는 한수원이 현대건설을 압박하겠지만 해외 수주를 같이 해야 하는 입장에서 척을 질 필요는 없다”며 “민원을 의식해 겉으로는 액션을 취하지만 뒤에서는 원만하게 해결하려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반발이 거세 결론을 내지 않으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광군 관계자는 “영광군과 영광군의회, 지역 민간단체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한빛 3·4호기 부실공사로 인한 세수 감소 등의 피해보상을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며 “원전대책특별위원회까지 개최해 이행을 촉구하고 있으며 국회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