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이 싸움에서 지면 끝장이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손을 들어준 12월 1일 “최대 위기를 맞았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간 우려했던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 폭주가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문 대통령을 궁지에 몰자, “레임덕만은 막아야 한다”며 대응책 마련에 돌입했다. 청와대 참모진도,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도 삼삼오오 모이면 추·윤 갈등에 관해 걱정을 토로했다. 친문(친문재인)계 한 관계자는 추·윤 갈등에 대해 “폭등하는 집값으로 민심이 악화된 상황에서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말했다.
들불처럼 번지는 정권 심판론은 하방경직성이 강한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마저 흔들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조사(11월 30일∼12월 2일)해 12월 3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 지지도는 37.4%로,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부정평가(57.3%)와 격차는 19.9%포인트(p)로 벌어졌다. 앞서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11월 27일(24∼26일 자체 조사) 발표한 내년 4월 재보선 여론조사에서도 ‘정부 견제론’이 과반(50%)을 기록했다. 정부 지원론(36%)보다 14%p 높았다. 특히 서울과 부산·울산·경남(PK)의 경우 정부 견제론이 57%와 56%에 달했다. 두 지역의 정부 지원론은 고작 29%에 불과했다.
여권 인사들은 집권 4년 차 증후군이 본격적으로 도래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에도 양김을 포함한 역대 어느 정권도 집권 4년 차 증후군을 피해 가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은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으로 휘청거렸다. 김영삼(YS) 정부는 외환위기 단초인 한보비리 사태에 몸살을 앓았다. 김대중(DJ) 정부는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 의혹에 휩싸였다. 이명박(MB) 정부는 저축은행 비리 및 영포 게이트가 터졌고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에 직격탄을 맞고 탄핵당했다. 문재인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출범 3년 4개월 만에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특히 부동산 대란과 추·윤 갈등이 맞물리자 후폭풍은 거셌다. 야권에선 문 대통령을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 리더십에 빗대 비판하기 시작했다. △가덕도 신공항을 비롯한 대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추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연상케 하는 윤석열 찍어내기 논란 △뒷짐 진 문 대통령 리더십 등을 놓고 “보수 정권을 답습하는 것이냐”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보수진영의 차기 대선주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문 대통령을 향해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와 너무나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실제 문재인 정부 들어 예타 면제를 받은 사업은 105건으로, 예산만 88조 1396억 원(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 추산)에 달한다. 이는 보수정권 9년간 규모(이명박 정부 60조 6000억 원+박근혜 정부 23조 9000억 원)을 크게 웃돈다. 정의당 한 당직자는 “토건으로 회귀한 정부”라고 꼬집었다. 추·윤 갈등을 놓고는 박근혜 정부 때 혼외자 논란으로 사퇴한 채동욱 사태의 기시감으로 확전됐다. 불통 논란도 판박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4년간 기자회견을 한 것은 고작 6번. 박 전 대통령(5번)과 큰 차이가 없다. 되레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없이 강행한 인사는 23명으로, 박근혜 정부(10명)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관련기사 침묵은 금? 문재인 대통령 ‘불통 논란’ 속사정).
박영선 장관이 11월 1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당장 시급한 문제는 내년 4월 재보선이다. 민주당은 출마 여부를 함구해온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까지 나설 채비를 사실상 마쳤다. 11월 초만 해도 “왜 내쫓느냐”라고 선을 그었던 박 장관은 11월 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출마 여지를 남겼다. 12월 1일엔 “코로나19 때문에 너무 힘들기 때문에 서울시민 마음을 보듬고 위로해 줄 어떤 푸근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이 공개석상에서 ‘서울시장 자질론’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박 장관 핵심 측근은 “장관님의 결심이 선 것 같다”고 귀띔했다. 박 장관이 푸근함 등 공감능력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여성 대망론을 앞세워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시그널로 분석된다. 출마를 놓고 장고하는 과정에서 당 안팎의 다수 인사들은 박 장관에게 출마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인사들은 인지도가 높은 박 장관이 출마하면, 야권 단일후보가 나와도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비공개 여론조사에서도 박 장관의 경쟁력은 여권 후보군 가운데 가장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이 출마를 확정하면, 여권 서울시장 후보군 대진표도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애초 박 장관 불출마를 염두에 두고 속도를 내던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핵심인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최근 서울시장 도전을 위한 행보가 눈에 띄게 줄었다. 국회 한 보좌관은 “박 장관이 나서면, 우 의원이 백의종군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경우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은 ‘박영선 vs 박주민’의 박 남매 대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부산시장 대진표도 윤곽이 잡혔다. 원외 중진인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도 그간의 침묵을 깨고 부산시장 경선 출발선에 한 발 다가섰다. 한때 불출마설이 나왔던 김 총장은 11월 5일 최인호 민주당 수석부대변인에게 출마 의사를 전달했다. 다음 날(11월 6일)에는 부산 강서구 국회 부산도서관 건설현장을 방문하는 등 최근 바쁜 행보를 펼치고 있다. 같은 시기 문을 닫았던 개인 페이스북도 재개설했다. 김 총장의 출마 선회 과정에선 정세균 국무총리가 연결 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총리와 김 총장은 고려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이로써 여권 부산시장 경선 대진표는 김 총장과 김해영 전 의원, 박인영 부산시의원 간 3파전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여권의 고민은 ‘박영선·김영춘’ 카드로 승리할 수 있느냐다. 야권에선 “내년 4월 재보선은 기승전 부동산 선거”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의 전·월세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값은 11월 말까지 74주 연속 상승(한국감정원)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은 11월 한 달간 2390만 원(5억 3677만 원→5억 6069만 원) 뛰었다. 통계 작성을 한 2011년 6월 이후 9년 5개월 동안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 호재까지 겹치면서 ‘자고 나면 1억 원씩’ 오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힘 재보선에 관여하는 핵심 의원은 “내년 재보선에서 패배하면 문 닫아야 한다”고 결기를 드러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