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기술사무직 노조, 청주·이천공장의 전임직(생산직) 노조와 임단협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천공장 노조의 반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SK하이닉스 노사는 2020년 임단협을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사측은 지난 9월 기술사무직 노조, 청주·이천공장의 전임직(생산직) 노조와 임단협 타결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기술사무직 노조와 청주공장의 전임직 노조는 3% 중반대의 인상안에 합의했으나 이천공장 전임직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노조마다 임금에 차등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복수 노조 체제다. 한국노총 산하 이천·청주공장의 전임직 노조와 2018년 9월에 출범한 민주노총 산하 기술사무노조다. 2018년까지는 전임직 노조와의 임단협을 기술사무직에도 적용했으나, 2019년부터는 각 노조가 별도로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한 SK하이닉스 전임직 노조 관계자는 “더 이상 회사에 양보하기보다는 받을 거 받아내자는 분위기”라며 “다양한 재협상안이 나왔다. 임금을 인상하지 못하더라도 복리후생비라도 더 올리기 위해서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SK하이닉스는 실적 하락을 이유로 초과이익분배금(PS)을 지급하지 않았다. 2012년 하이닉스가 SK에 인수된 이후 성과급의 성격의 PS를 처음으로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직원 반발 등을 고려해 ‘특별기여금’ 명목으로 기본급의 400%를 지급했다. 생산성 목표 달성에 따른 격려금(PI)도 상·하반기 모두 예년과 같이 기본급의 100%씩을 지급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6조 9907억 원, 2조 7127억 원이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3.3%, 87% 감소한 실적이다.
직원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비교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실적 하락에도 반도체사업부는 연봉의 29%, 무선사업부와 생활가전사업부도 각각 28%, 22%를 PS로 지급했다. 이번 임단협에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도 유사하다. 삼성전자는 물가인상률과 임단협을 각각 계산해서 임금상승률이 5% 중반대인데, SK하이닉스 임단협은 물가인상률을 제외하고 3% 중반대에 그쳐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적어보일 수밖에 없다.
현재 재협상안에 대한 노조는 투표를 진행 중이다. 기존 안보다 복리후생 혜택을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교대수당 인상률은 변함없으나 올해 1월부터 소급 적용해 지급한다. 기존에 지급하는 온누리 상품권 30만 원을 사내 복지몰 포인트로 지급하고, 추가로 70만 포인트를 지급한다. 총 100만 포인트를 지급하되 12월 10일 이전에 임금 소급분과 함께 50만 포인트를 지급하고 나머지 50만 포인트는 내년 설날 전까지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상·하반기 PI는 사업계획대비 100% 달성 시 지급한다. PS는 2020년 실적을 집계한 후 재협의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2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면서 향후 노조가 성과급을 요구할 명분이 충족되는 상황이다. 사진=일요신문DB
노조는 전 직원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하면서 이번 안 타결에 집중하고 있지만 상황을 낙관할 수는 없다. 과거 협상안이 부결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 노조는 2018년 임단협 합의안을 처음으로 부결시켰다. 당시 기본급 인상률과 복지 확대 등에 대한 노사 간 견해차가 없었지만, PS 지급비율에 대한 불만으로 임단협이 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임단협 투표 전 노사는 합의안을 도출해 전년 대비 100% 늘어난 1700%(PS 포함)를 성과급으로 지급키로 합의했다. 일부 노조원을 중심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2% 늘어난 20조 8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성과급이 100%밖에 늘지 않았다며 불만이 터져나왔다. 올해 PS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임단협 협상 타결의 변수로 꼽힌다. 협상의 장기화를 예상하는 배경 중 하나다.
한편 내년 SK하이닉스 노조는 PS 지급 비율을 두고 사측과 강하게 맞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는 올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을 5조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2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PS를 요구할 명분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 노조는 1987년 창립 후 단 한 번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2001년 유동성 위기 때는 임금 유예, 복지제도 폐지 등에 합의했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전 직원 대상 순환 무급휴직 시행부터 휴일 및 시간외 근무수당 반납까지 받아들였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매년 임단협은 세세한 조건들이 많아서 하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다 같이 모여서 논의할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더 오래 걸린 것 같다”며 “임단협 대상이 아닌 PS는 2020년 실적이 집계된 후 내년 초에 나눠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