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 하베르츠는 지난 이적시장에서 가장 비싼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다. 사진=첼시 페이스북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돈을 벌어들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여전히 이적시장의 ‘큰손’이었다. 리그 내 20개 구단이 지난여름 이적시장에서 사용한 금액은 12억 1800만 파운드(약 1조 8226억 원)로, 지난해 2조 591억 원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가장 많은 금액을 이적에 쏟아 부은 리그로 판명됐다.
여기에는 첼시의 ‘선수 쇼핑’이 한몫했다. ‘부자 구단’으로 유명한 첼시는 이전 시즌까지 유럽축구연맹(UEFA)으로부터 선수영입 금지 징계를 받아 의도치 않게 돈을 절약했다. 이에 이번 이적 시장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첼시는 이번 이적시장에서 5명의 선수를 사들이는 데 2억 4720만 유로(약 3275억 원)를 지불했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영입 이적료 순위 10위 이내에 첼시 선수만 4명이었다. 이 같은 막대한 금액으로 카이 하베르츠(독일), 티모 베르너(독일), 벤 칠웰(잉글랜드), 하킴 지예흐(모로코), 에두아르 멘디(프랑스) 등 유럽에서 주목하는 재능들을 불러 들였다.
남다른 재력을 자랑해왔던 맨체스터 시티 역시 많은 돈을 투자했다. 후벵 디아스(포르투갈), 나단 아케(네덜란드), 페란 토레스(스페인) 등의 영입에 1억 유로 이상 지출했다.
이 외에도 전통적 빅클럽인 아스널,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각각 토마스 파티(가나), 디오고 조타(포르투갈), 반 더 비크(네덜란드)를 영입하며 수백억 원을 투자했다. 이들만큼의 많은 금액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티아고 알칸타라(스페인), 하메스 로드리게스(콜롬비아), 가레스 베일(웨일스) 등도 새롭게 프리미어리그 구단 유니폼을 입었다.
디오고 조타(왼쪽)는 이적 첫 시즌임에도 리버풀 공격 전 지역에 기용되며 팀의 순항에 기여하고 있다. 사진=리버풀 페이스북
고액의 이적료로 팀을 옮긴 선수들은 대부분 기대감을 충족시키며 새 팀에서 첫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은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 리버풀로 이적한 공격수 디오고 조타다.
리버풀은 그간 호베르투 피르미누(브라질), 모하메드 살라(이집트), 사디오 마네(세네갈) 3명이 오랜 기간 공격진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오던 팀이다. 하지만 피르미누의 기량이 내리막을 걷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선수들의 부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조타는 알토란같은 활약을 벌이고 있다. 챔피언스리그 전 경기인 5경기, 리그 8경기를 포함, 15경기에서 9골을 넣었다. 리그 5골은 승부에 결정적 역할을 미치는 골이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아탈란타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해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가장 많은 돈을 투입한 첼시는 신입생들이 고루 활약하며 ‘만족할 만한 이적시장을 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이적시장에서 세계 최고 이적료(8000만 유로, 약 1060억 원)를 기록한 하베르츠를 포함해 좀처럼 주전이 바뀌지 않는 골키퍼 포지션의 멘디까지 중용되고 있다. 멘디를 제외하면 신입생 4인방이 모두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첼시의 성적 역시 3위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주전 라인업이 대거 달라진 첫 시즌이니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이 맞아가며 이들의 활약상은 더욱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큰손 맨시티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이적시장에서 나단 아케, 후벵 디아스 등 센터백 자원만 2명을 연이어 영입하는 ‘중복 투자’를 했다. 더 비싼 몸값의 디아스에 밀려 아케는 출장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되레 맨시티는 최전방 공격수인 세르히오 아구에로(아르헨티나)와 가브리엘 제주스(브라질)가 번갈아가며 부상과 부진에 빠져 선수단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격수 영입에 자금을 분배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
다만 비교적 적은 금액에 영입한 스페인의 젊은 재능 페란 토레스는 맨시티의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레스는 이번 시즌 공백이 발생한 맨시티 공격진의 좌우와 중앙을 가리지 않고 활약하고 있다. 13경기 5골 2도움이라는 준수한 기록도 남겼다. 아직 20세에 불과한 어린 선수다. 그를 영입하는 데 들인 돈은 2300만 유로(약 307억 원)였다. 벤치를 달구고 있는 아케(4530만 유로)의 절반 가격이다.
#이적료 없이도 팀에 기여 중인 선수들
여전히 많은 돈이 오간 프리미어리그 이적 시장에서 자금을 아끼려는 노력이 돋보이기도 했다. 선택권을 넓히려는 선수들의 의도, 이적료를 아끼려는 구단의 열망이 맞아 떨어지며 이번 시즌은 유독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의 이동이 잦았다.
시즌 초반 프리미어리그를 뜨겁게 달군 인물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에버튼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하메스 로드리게스였다. 2014 브라질월드컵 득점왕 출신인 그는 기존 계약기간을 마치고 이적료 없이 에버튼에 합류했다. 이후 리그 데뷔와 동시에 뛰어난 경기력으로 팀을 한때 리그 선두로 이끌기도 했다. 에버튼은 개막 이후 4연승으로 신바람을 냈다. 하지만 부상 이후 현재까지 초반 분위기를 이어오지는 못했다.
브라질 출신 베테랑 윙어 윌리안 역시 이적료 없이 첼시에서 아스널로 옮겼다. 측면 자원이 부족한 아스널에 숨통을 틔워주는 이적이었다. 실제 리그 10경기 중 9경기에 선발로 나서며 중용되고 있다. 다만 기대와 달리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9경기에서 도움 3개만 기록했고 아스널의 성적도 14위로 떨어졌다.
베테랑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는 파리생제르망과 기존 계약기간을 끝내고 무적으로 지내다 10월 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었다. 부상 회복기간 이후 10월 말부터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최근 경기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지난 11월 29일 사우스햄튼과의 원정경기, 0-2로 팀이 끌려가던 상황에서 후반 교체 출전한 카바니는 2골 1도움을 기록하는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으로 역전승을 일궈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