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거침없는 윤석열
윤 총장이 추미애 장관과 치열하게 겨루는 동안 인지도와 국민적 주목도는 급상승 중이다. 12월 2일에는 윤 총장이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1위를 기록했다는 결과(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데일리안 의뢰)까지 나왔다.
윤 총장은 이 조사에서 대권 주자로 적합하다는 응답이 24.5%를 기록, 가장 많았다. 한 달여 전인 10월 넷째 주 조사 때(15.1%)보다 9.1%포인트나 급등한 수치다. 이 조사에서 윤 총장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22.5%)와 이재명 경기지사(19.1%)를 2, 3위로 끌어내렸다. 또 야권에서 가장 많은 지지세를 보인 홍준표 무소속 의원(5.6%)보다 5배가량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다(자세한 사항은 알앤써치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집권 세력이 그를 때리면 때릴수록 그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정치권에서는 윤 총장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비교하기도 한다. 윤 총장처럼 법조인 출신이었던 이 전 총재는 김영삼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당시 집권세력과 심각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당시 집권세력과 날을 세웠던 이회창 전 총재는 이 과정에서 ‘대쪽 총리’ 이미지를 얻으며 일약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이회창 전 총재와 윤석열 총장은 자신을 불러주고 키워준 현직 대통령에게 맞서면서 체급을 급상승시킨 공통점이 있다. 이 전 총재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의해 감사원장·국무총리 등 정부 최고위 요직을 받았고 정치권에까지 들어갔지만 김 전 대통령 임기 내내 갈등을 빚었다.
이 전 총재는 감사원장 시절 국방부 율곡사업 등에 대해 거침없는 감사를 감행했고 율곡사업 비리를 감사하면서 전직 국방부 장관 2명을 포함해 전직 해·공군참모총장, 전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 6명을 수뢰혐의로 검찰에 전격 고발하기도 했다.
국정원 여론조작 댓글 사건 수사팀장으로 박근혜 정부에 정면으로 덤벼들었다가 한직을 맴돌았던 윤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른 뒤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를 기점으로 집권 세력과 등을 돌린 이후 대립각을 세워오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월 2일 경기 과천 법무부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전전긍긍 국민의힘
국민의힘은 추 장관과 윤 총장 갈등 국면에서 당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윤 총장 지원 사격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거목으로 자라버린 윤 총장을 바라보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잊으려고 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윤 총장의 과거 전력 때문이다.
윤석열 총장이 정치권 시야로 처음 들어온 것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였다. 그는 2013년 4월 국정원 여론조작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아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던 법무부와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는 그해 가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의 외압 의혹을 폭로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권력을 향해 호기롭게 덤벼들었던 그는 당시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그는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의 잇따른 좌천 인사까지 당하면서 기나긴 한직 검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는 곧 부활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했고 이때부터 현재의 집권세력으로부터 의로운 검사로 본격 소환되기 시작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마침내 지난해 여름 검찰총장이 됐다.
대구·경북(TK) 출신 한 법조인은 “윤 총장은 박근혜 정부 때 정권과 각을 세운 덕분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승승장구했다. 윤 총장이 총지휘를 했든, 단순 가담을 했든, 문재인 정부에서 강도 높은 적폐 수사가 이뤄져 이명박·박근혜라는 보수정당의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갔다. 이런 점에서 윤 총장의 급부상은 국민의힘이라는 보수정당에게는 정치적으로 정말 어려운 선택지를 던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법조인 언급처럼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도 앞에서는 말을 하지 않지만 사석에서 모이면 이구동성으로 걱정을 토로하고 있다. 윤 총장이 당장엔 좋은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보수정당을 분열의 길로 내몰 수밖에 없는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국민의힘은 집권세력과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는 윤 총장을 적극 엄호하면서도 개인 윤석열에 대해서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에 항거하는 수단으로 윤석열 검찰을 두둔하지만 ‘정치 후보생 윤석열’과는 2.5단계 수준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러한 국민의힘 내 분위기는 2017년 대선에서 보수 분열의 쓴맛을 봤기 때문에 나타나고 있다. 만약 윤 총장이 당의 대선후보가 될 경우, ‘윤석열 검찰’ 아래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간 사실을 기억하는 보수층 지지자들의 표가 또다시 분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열이 또 나타난다면 차기 대선 결과는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 당 내부의 중론이다.
실제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한국의 선거 정치 2010-2020(푸른길)‘에 따르면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은 보수의 분열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됐다. 대규모 촛불집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여파 속에 치른 선거에서 보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했으며 홍준표 후보, 유승민 후보로 나뉘어 후보를 낸 보수세력은 문재인 후보에게 참패했다.
법조인 출신 국민의힘 한 의원은 “현재 집권세력의 가장 강한 무기가 상대 정파를 갈라치기한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공항이라는 초대형 선물을 PK(부산·경남)에 던져주니 대번에 우리 당내 TK와 PK가 갈라섰다. 윤 총장도 같은 카드가 될 수 있다. 윤 총장이 검찰에서 걸어온 길을 내가 잘 아는데 도저히 보수정당이 받아들이기 힘든 경력이다. 윤 총장으로 인해 보수는 또 분열되고 필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홍준표 “윤석열 바람에 혼 빠져”
국민의힘 당 내부에서는 윤 총장이 검찰총장 임기를 마칠 때까지 집권세력을 견제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끌어내리고, 동시에 국민의힘 차기 대선주자의 앞길을 틔워주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12월 2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이러한 당내 기류와 결을 맞추는 듯한 발언을 했다. 주 원내대표는 추 장관과 윤 총장 갈등의 해결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경질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주 원내대표는 “윤 총장이 정치를 안 한다가 아니라 하지 않겠다고 명백히 선언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법치주의가 살고 검찰의 중립성·독립성이 보장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데 대해서도 주 원내대표는 “중립적이어야 할 현직 검찰총장을 대선후보군에 넣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조사 대상에서 빼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했다.
윤 총장 임기가 끝나더라도 야권에서 영입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내일의 일을 말하면 귀신이 웃는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 발언으로 미뤄볼 때 윤 총장이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데 대한 경계심이 충분히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윤 총장의 급부상과 관련, 12월 2일 친정인 국민의힘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홍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을 ‘검찰당’으로 지칭하면서 “민주당과 검찰당의 대립 구도에서 야당은 증발해버렸다. 나라 운영이 검찰이 전부가 아닐진대 자고 일어나면 ‘추의 못된 짓’과 ‘윤의 저항’만이 유일한 뉴스거리가 됐다”면서 윤석열 바람에 혼이 빠져있는 국민의힘의 무기력을 지적했다.
정치적 미래가 뻔한 검찰총장 출신에게 당의 간판을 뺏기고 있는 현재 상황을 비판하면서 하루빨리 자체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국민의힘은 ‘페이스메이커 윤 총장’을 기대하지만 윤 총장이 파죽지세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고, 원전 수사 등 집권 세력을 압박할 카드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국민의힘의 기대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낮아지고 있다. 국민의힘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셈이다.
윤 총장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윤 총장이 이렇게 거친 싸움을 하는데 페이스메이커로 만족할 가능성은 없다. 그의 정치적 배경으로 급부상하는 충청 민심도 그를 지지하고 나서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공직자들은 매우 신중하기 때문에 퇴임 시점의 지지율이 정치를 하느냐, 마느냐, 최종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