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복고 열풍
미디어 복고 열풍에 과거 음반제작자들이 음원에 대한 권리를 찾고 싶다며 소송에 나섰다. JTBC ‘슈가맨’ MC들. 사진=JTBC 홈페이지
지금 미디어는 복고 열풍이다. JTBC ‘슈가맨’, KBS ‘전교톱10’, MBC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 프로젝트 등에 과거 히트곡을 불렀던 가수들이 출연하거나 옛 노래를 새롭게 해석하는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덕분에 잊혔던 노래들이 리메이크되거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시 유통되고 있다.
문제는 노래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갈등들이다. 멜론, 벅스 등과 같은 온라인 음악서비스 업체가 특정 음원을 사용하려면 음원제작자 단체인 한국음원제작자협회, 실연자 단체인 한국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 저작권자 단체인 한국저작권협회 등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들 단체에 등록돼 있지 않은 음원은 개별 제작사와 협상해 허가 받도록 돼 있다. 그런데 묻혀있던 또 다른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수면 위로 등장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음반제작자들이 자신이 만든 노래에 대한 음원 권리를 되찾겠다며 소송에 나섰다. 과거 LP, CD가 중심이 됐던 오프라인 음악 시장에선 제작자와 레코드사 등 음원 권리자가 명확하지 않아도 수익배분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와 판단기준 등이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시장 형태가 음원 유통 등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겨오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음반제작자는 음을 음반에 고정하는 데 있어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책임을 지는 자를 말한다. 실연자(가수 및 연주자)의 특정 목소리를 녹음된 형태로 제작하는 자들이다. 음악에 대한 권리는 크게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으로 나뉘는데 저작권은 작사가와 작곡가의 권리이고 저작인접권은 실연자, 제작자, 방송사업자의 권리다. 현 저작권법상 음반제작자는 저작인접권으로서 복제권, 배포권, 대여권, 전송권, 디지털음성송신보상청구권, 방송보상청구권, 공연보상청구권 등의 권리를 갖는다.
일부 음반제작자들이 올해 초 제기한 복수의 소송들의 요지를 정리하자면 최초로 음반 제작한 이들이 현재는 음원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은 시간이 흐르며 공중분해된 계약관계에 있다. 과거 음반업계에서는 음반제작자가 대형 음반유통사로부터 선급금을 받아 음반을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후 제작된 음반을 음반유통사가 CD·LP·MC(카세트테이프) 등으로 유통하여 얻은 수익으로 선급금을 우선 상환받고 이후 음반제작자에게 음반 유통으로 인한 수익을 배분하는 구조였다.
문제는 당시 온라인 음원 유통에 대한 권리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채 계약을 진행했거나, 선급금 채권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버린 사례들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슈가맨’ ‘전교톱10’ 등의 방송을 통해 과거 노래가 재조명받고 다시 음원으로 유통되며 이에 따른 수익이 발생하자 배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법무법인 율원의 강진석 변호사는 “현재 음반제작자나 음반유통사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음원을 유통하여 수익을 얻고 있는데 종전에 CD·LP·MC 등의 음반을 제작했던 제작자와 유통사 사이에 선급금 채권관계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음반유통사 또는 그 관계자 등으로부터 권리를 양도받은 회사들이 음원을 유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복고 열풍과 함께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면서 뒤늦게나마 자신들의 음원에 대한 권리를 찾으려는 음반제작자들이 생겨나 소송까지 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사안마다 음반제작자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고 현재 음원을 유통하는 당사자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입증하여 승소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음악 권리 둘러싼 소송
미디어를 통해 재조명받은 옛 노래에 대한 수익분배에 대한 일부 음반제작자들이 제기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사진=KBS ‘전교톱10’ 홈페이지 캡처
실제로 음악을 둘러싼 권리에 관한 소송은 재판의 결과도 사안에 따라 다양하게 내려지는 편이다. 다만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소개한 우리 대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음원에 대한 권리는 일차적으로 음반제작자에게 있다. 앞서 대법원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된 음반을 디지털 샘플링의 기법을 이용하여 디지털화한 것이 2차적 저작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단지 아날로그 방식의 음반을 부호화하면서 잡음을 제거하는 등으로 실제 연주에 가깝게 하였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이를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첨삭하는 등의 방법으로 독자적인 표현을 부가하여야만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판단에 미루어 보면, 과거 음반에 대해 단순히 음질을 개선한 정도라면 해당 음원에 대한 권리는 여전히 기존의 음반제작자에 있으며 새로운 배포자가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다만 음반이나 음원에 대한 권리인 마스터권 귀속 여부에 따라 판단은 다르게 내려질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해석이다.
이 외에도 지적재산권(음악저작물) 확인에 대한 대표적인 소송으로는 가수 고 김광석의 사례가 있다. 고인의 음반은 그간 서울음반, 신나라레코드, 록레코드, 만월당 등 유통사를 여러 차례 바꿔가며 발매되었는데 그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다.
10여 년에 이르는 재판 판결문에 따르면 1993년 10월 12일 신나라뮤직(킹레코드)은 고인 동의 하에 부친 명의로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5억 원의 로열티를 지급한다는 계약서를 작성한 바 있다. 그런데 고인이 사망한 뒤 로열티 계약에 따른 권리자가 김 씨의 부친인지, 상속인인 아내와 딸인지에 대한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고인의 아내와 딸은 1996년 고인의 부친을 상대로 로열티 청구권 확인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당시 양측 간 합의로 고인의 부친은 2004년 10월 8일 사망 전까지 신나라뮤직으로부터 로열티를 지급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저작권 분쟁은 고인의 부친이 사망한 이후 다시 불거졌는데 이번에는 고인의 형제가 부친의 권리를 양도받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1996년 양측이 작성한 합의서에 따르면 “김 씨가 낸 기존 4개 음반에 대한 권리는 그의 부친에게 있으나 그가 사망하게 되면 이에 대한 권리는 김 씨의 딸에게 양도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2008년 대법원은 ”김 씨와 김 씨의 부친 사망 이후 음악에 대한 권리는 김 씨 아내와 딸에게 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저작권 분쟁도 일단락되었다.
이러한 논란들을 두고 업계 전문가들은 ‘음원 사용’에 대한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작곡가는 “2019년 대형 음악서비스 업체가 유령회사를 세워 저작권자 없는 음악에 대한 저작권료를 챙긴 일이 있었다. 음악시장이 스트리밍 위주의 온라인 시장으로 완전히 변화한 만큼 ‘음원 권리’를 명확히 정리해 기존의 시장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12월 3일 “창작자들의 권리를 국제적 수준으로 완벽하게 보호하는 데까지는 저작권료 수준 및 보호 범위 등에 있어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법과 제도 개선을 위해 협회가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