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연예인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도가 지나친 정치 발언이 오가는 ‘막가파’ 채널에 출연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그들의 출연을 옹호하는 측은 “진보 진영의 방송에 출연하면 소신이고, 보수 진영 방송 출연은 무조건 주홍글씨를 붙이려는 ‘내로남불’ 태도가 더 문제”라고 주장했다.
지난 11월 28일 극우성향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한 배우 김민종. 사진=가로세로연구소 캡처
지난 11월 28일 배우 김민종이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에 출연하자 대중 사이에 논쟁이 불거졌다. 1990년대 대표적인 청춘스타로 가수와 배우 양쪽에서 성공적인 입지를 다진 멀티테이너였던 그가 극우 유튜버 가운데서도 정치·사회·연예 전 분야에서 논란을 빚어온 ‘가세연’ 출연을 결정했다는 것만으로도 뒷말이 쏟아졌다. ‘가세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각종 루머 유포로 현재 명예훼손 피소된 상태다. 고 설리나 박지선의 사망을 악의적으로 활용한 게시물로도 대중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날 방송에서 김민종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세연’ 운영자 겸 진행자인 강용석 변호사와 개인적인 술자리까지 가질 정도의 친분을 공개한 뒤 방송에서 자신의 화장품 브랜드를 홍보한 것으로 더 큰 비난을 받았다. 확인되지 않은 연예인들의 루머를 적극적으로 유포하는 방식으로 조회수를 늘려 온 이들의 방송에 단순히 친분과 사적인 이익을 위해 출연했다는 것이 대중의 비판 이유였다.
실제로 ‘가세연’ 출연 이후 김민종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CPD스튜디오’는 100여 명 남짓했던 구독자 수가 1만 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가세연 보고 왔습니다”라는 댓글이 많았다. 화장품 판매업자라면 이득을 본 셈이지만, 이미지를 생명으로 하는 연예인의 입장에서는 ‘가세연’의 이미지가 씌워졌다는 게 좋은 영향만 있을 리 없다. 정치 성향을 언급하진 않았어도 ‘가세연’ 출연과 그 출연진들과의 친분을 밝힌 것만으로도 사실상 그들의 뜻에 동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우 공형진은 ‘가세연’ 전화 인터뷰로 출연해 “가세연의 광팬이다”라고 발언했다. 사진=가로세로연구소 캡처
앞서 지난 1월 ‘가세연’에 자발적으로 출연한 배우 공형진도 마찬가지였다. 주진모‧장동건의 휴대전화 해킹으로 연예계가 시끄러웠던 당시, 주진모의 절친으로 알려진 그가 갑작스럽게 ‘가세연’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하며 근황을 밝혔다. 2년간 배우 본업보다 사업으로 바빴다고 밝힌 공형진은 주진모와 예전처럼 활발하게 교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에 선긋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발언보다 “가세연의 광팬이다” “여러분(가세연)이 나라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열심히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이 일부 대중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그의 가세연 출연이 공개된 뒤 일부 네티즌은 관련 뉴스에 “연예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강도 높은 비난 댓글을 달았다. 이 같은 여론은 공형진이 지난 1일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구직 특집’에 출연한 뒤에도 따라 붙었다.
42년차 배우지만 2016년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안정훈도 가세연의 팬을 자처하며 가세연의 패널 가운데 한 명인 김용호 전 기자가 제작한 영화 ‘회충가족’의 주연으로 출연해 논란이 일었다. ‘회충가족’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과 관련한 논란을 모티브로 한 블랙코미디 영화다.
배우 안정훈은 자신의 정치 성향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논란을 모티브로 한 영화 ‘회충가족’에 출연했다. 사진=CJ E&M 제공
대표적인 보수 우파 지지 연예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노주현은 지난해 SBS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오비이락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 1편도 섭외가 오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노주현의 이 발언은 정부 성향에 따라 또 다른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것처럼 해석됐지만 여러 매체들의 검증 결과, 이전 정부와 같은 의도적인 ‘연예인 배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드러났다. 노주현과 같은 보수 성향 연예인들 대다수가 2017년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드라마 캐스팅 관계자는 “단순하게 ‘이 사람은 이런 정치적 성향이어서 안 된다’고 캐스팅 단계에서 제외하는 일은 현재는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며 ‘보수 연예인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러면서 “만일 정치 성향이 문제가 돼 배제됐다면 그 성향 자체가 논란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을 어떤 방식으로 표출했는가 문제”라고 말했다. 단순히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선이라면 개인의 자유지만, 과도한 언행이나 태도 등을 보여 문제가 됐을 경우엔 대중의 반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