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측근의 사망 소식을 접한 다음 날인 12월 4일 최고위원회의에 침통한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검찰 조사 받다 숨진 채 발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부실장 이 아무개 씨가 12월 3일 밤 9시 15분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12월 2일 이 씨에 대한 실종신고 접수 후 기동대가 법원 인근에 대한 수색작업을 벌였고, 3일 과학수사대가 이 씨의 신원과 사인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옵티머스자산운용 관계사인 트러스트올을 통해 지난 4·15 총선이 한창이던 2~5월 서울 종로구 이낙연 대표 선거사무실에 복합기를 설치하고, 렌트비 76만 원을 대납하게 한 혐의를 받았다. 정치자금법 제31조에 따르면 국내외 법인은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 이에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씨 등 2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앞서 이낙연 대표 측은 문제가 불거지자 “지역사무소 관계자가 지인을 통해 해당 복합기를 넘겨받았는데, 실무자 실수로 명의변경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또한 이 대표는 “복합기는 참모진의 지인을 통해 빌려온 것으로 선관위 지침에 따라 정산 등의 필요한 조치에 나서겠다”고 옵티머스와의 연루 의혹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이 씨는 사건과 관련해 11월 말에 이어 12월 2일 두 번째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오후 6시 30분까지 조사받은 뒤 저녁식사 후 다시 조사를 재개하기로 했으나, 이후 소재가 확인되지 않았다. 가족들이 이 씨가 변호인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 경찰이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을 통해 소재를 파악하다 그를 발견했다.
이 씨는 숨지기 전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경찰은 이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주변인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망경위 조사에 나섰다.
이 씨를 조사하던 서울중앙지검은 12월 3일 “이런 일이 발생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씨는 첫 조사에서 정상적으로 조사를 마친 뒤 귀가했고, 두 번째 조사 과정에서도 진술을 거부하거나 이상 증세는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숨진 이 씨는 누구?
이 씨는 이낙연 대표의 오랜 측근이다. 이 대표가 전남도지사 역임 전 전남 함평·영광 등 지역구 국회의원이었을 때 이 씨는 비서관으로 10년 가까이 지역구 관리를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4년 이 대표가 전남도지사 당내 경선 후보로 나왔을 당시 권리당원 2만여 명의 당비 대납을 주도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돼 징역 1년 2월을 선고 받기도 했다.
이 씨는 출소 4개월 만인 2015년 12월 이낙연 당시 전남도지사의 정무특보로 임명됐다. 이에 도내에서는 밀실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씨 인사 문제는 이낙연 대표의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당시 야당은 “상식적으로 보좌관과 측근이 상관을 위해 5000만 원을 쓴 게 말이 안 된다”며 대납 당비 출처를 추궁했다. 반면 이 대표는 “바깥에서 보기에 안 좋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안다”면서도 “이 씨의 역량을 활용하고 싶었다. 보은인사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대표가 총리로 임명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 씨는 4·15 총선을 앞두고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이 대표가 출마한 종로 지역구 선거사무실에 상주하며 조직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또한 이낙연 대표가 8·29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당선된 이후 국회로 들어와 대표실 부실장직을 맡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월 4일 ‘옵티머스 의혹’으로 검찰 수사 중 사망한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부실장 이 아무개 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제공
#이 씨 죽음을 둔 의문점
이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을 두고 여러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이 씨가 불법적으로 지원 받았다고 하는 금액은 76만 원 수준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정도로 이 씨가 죽음을 선택했다고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가벼운 처벌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이 이 씨에게 별건 혐의를 조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서울중앙지검은 옵티머스 로비스트로 활동했던 김 아무개 씨로부터 복합기 임대료 대납 의혹과 별도로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 지시를 받아 이낙연 대표의 서울 사무실에 소파 등 1000만 원 상당의 가구와 집기를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수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 씨 역시 일부 관련 의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조선일보는 이 씨가 옵티머스 외 별건의 금품수수 혐의가 포착돼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낙연 대표 측은 “복합기 지원 의혹 이후 전수조사 결과 사무실에 어떤 지원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며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이 여권과 검찰개혁을 두고 각을 세우고 있는 만큼, 여권에 타격을 주기 위해 검찰이 이낙연 대표의 측근에 대해 강압적인 수사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민주당 5선 중진 설훈 의원은 YTN라디오에 출연해 “검찰이 참으로 잔인하고 지나치게 상황을 파헤쳤다”고 비판했다. 설 의원은 “검찰이 하는 행태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이낙연 대표의 이 부실장까지 똑같이 흐르고 있다”며 “검찰이 지금까지 어떤 수사를 어떻게 했기에 사람이 죽은 결과가 나오나. 한두 번이 아니지 않나. 왜 사람을 죽을 지경으로 몰아넣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은 “이낙연 대표 측근이 이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유감”이라면서도 “검찰이 어떻게 해서 이 사람이 죽었다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본인이 사망한 문제를 왜 자꾸 다른 곳에다 돌리냐”고 반박했다. 이어 “아무리 검찰이 불신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뚜렷하게 나와 있는 옵티머스 사건에 대해 그 이상 민주당에서 아는 사람이 있느냐”라며 “이 대표는 여기에 침묵하고 있으니 우리가 알 길이 없다.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법조계 관계자 역시 “이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재로서는 알 방도가 없다”면서도 “검찰 조사는 변호인이 입회한 가운데 진행됐다. 만약 검찰이 강압수사를 했다면 변호인이 가만히 있었겠느냐. 또한 검찰이 이 씨에 저녁식사를 밖에서 할 수 있도록 내보냈다. 이는 조사 과정에서 큰 문제가 없었다고 검찰이 판단했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뜨거운 정치권 논쟁
이 씨 죽음은 정치권에도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애도 분위기 속에서도 상반된 반응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선 검찰 책임론이 제기됐다.
앞서 설훈 의원에 이어 우상호 의원은 CBS라디오에 출연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설왕설래하고 있다”며 “당 전체 분위기가 어둡다. 착잡하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문제와 관련해서는 “윤석열 총장은 대통령 인사권에 저항하고, 주요 정책 결정을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다. 1년간 윤석열 총장이 한 일은 전부 문재인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수사 말고는 없지 않느냐”며 “살아 있는 권력의 부정부패를 넘어가지 말고 조사하라고 한 것이지 살아 있는 권력을 탈탈 털어서 부정부패한 정권인 것처럼 만들라고 한 소리는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에서는 검찰 책임론을 반박했다. 더 나아가 진실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는 입장도 나왔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이런 비극이 일어나게 된 이유에 대해 국민적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당사자이기도 한 민주당과 검찰은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지, 국민이 납득하도록 내용과 절차를 명명백백하게 밝히기 바란다”고 밝혔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많이 경황없을 이 대표께도 위로의 말을 드린다”며 “전남지사 정무특보를 거쳐 민주당 대표 비서실 부실장으로 재직한 중요한 분 같은데, 옵티머스 관련 수사 중 불의한 사건이 벌어진 데 대해서는 경위를 더 조사해야겠지만 우선은 상황이 잘 수습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낙연 대표는 이 씨의 사망 소식 직후 “슬픔을 누를 길이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 대표는 오영훈 대표 비서실장을 통해 “유가족들께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를 드린다”고 전했다.
이낙연 대표는 12월 4일 오전 국회에서 주재한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 씨의 죽음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검찰개혁은 개혁과 저항의 싸움이고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오랜 세월 검찰개혁은 저항으로 좌절했지만, 더는 좌절할 수 없다”며 “이번에는 기필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출범시켜 검찰에 대한 최소한의 민주적 통제를 제도화하겠다”고 역설했다.
#이낙연 대표에 어떤 영향?
4·15 총선을 앞두고 서울 종로에 마련된 이낙연 대표의 선거사무소 전경. 사진=이종현 기자
그럼에도 측근의 죽음은 이낙연 대표의 향후 정치행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이낙연 대표에게 이 씨의 죽음은 시간이 간다고 해결될 악재가 아니다. 앞으로의 대선가도에서 이낙연 대표 본인이 끊임없이 해명해야 한다. 그 해명이 유권자들에 납득이 될 것이냐는 매우 비관적”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이낙연 대표가 이 씨 죽음 문제를 뛰어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진동 평론가는 “리더십을 통해 지지율이 올라가면 이 문제는 시간이 흘러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현재처럼 답보상태가 유지될 경우, 이번 악재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민주당의 전체 대선 판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진동 평론가는 “이낙연 대표의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이재명 경기지사의 독주체제로 가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당내에서 현재 거론되는 후보들로는 대선을 치를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며 제3후보의 필요성이 제기될 것이다. 제3후보론이 표면으로 드러나면서 여권 대선판도가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