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을 두고 벌인 추미애-윤석열 갈등은 문재인-윤석열 싸움으로 확전되며, 이제 ‘공’은 이제 문 대통령에게로 넘어왔다. 사진=청와대 제공
최근 친문 진영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의 한 단락을 언급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추미애 장관은 12월 3일 페이스북에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사진과 함께 “백척간두에서 살떨리는 무서움과 공포를 느낀다”면서 “검찰개혁의 소임을 접을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그보다 앞선 11월 30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검찰개혁이) 왜 어려운지 검찰 스스로가 보여줬다”면서 검사들의 집단 반발을 꼬집은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이 좌절돼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여권의 ‘노무현 소환’은 그만큼 판세가 어렵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다. 추미애-윤석열 간 싸움을 바라보는 여론이 곱지 않고, 그 불똥이 문재인 대통령한테까지 번지자 검찰개혁 당위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는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2월 3일 발표한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37.4%였다. 취임 후 역대 최저치로, 여권 지지층 일부가 돌아선 결과로 풀이된다(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분수령은 12월 1일이었다. 이날 긴급 소집된 법무부 감찰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가 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같은 날 법원은 윤 총장의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연이은 소식에 당혹해하던 추 장관에게 ‘카운터펀치’가 날아왔다. ‘추미애 사단’ 중 한 명으로 분류됐던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윤 총장 감찰 등에 반발하며 사표를 낸 것이다.
윤 총장을 향해 거센 공세를 폈던 추미애 장관이 오히려 사면초가에 몰린 형국이 됐다. 여권 내에서조차 추 장관 교체로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가 빠르게 퍼졌다. 윤 총장은 업무에 복귀한 뒤 가장 먼저 월성원전 1호기 수사를 보고받는 등 반격에 나섰다. 여권엔 당혹감이 역력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절차대로 (윤 총장을) 빠르게 정리한 뒤 (추 장관 교체 등) 개각을 준비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맞다”고 귀띔했다.
여의도에선 법조인 출신 문 대통령이 법과 절차를 고수하다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흘러나온다. 정치적 해법으로 풀었어야 한다는 얘기다. 윤 총장이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여권 의원들과 치고받았던 10월 22일 직후를 적기로 꼽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한 친문 의원은 “임기가 정해져 있는 총장을 중도에 해임하는 것은 부담이 너무 크다”면서도 “문 대통령이 수수방관했던 것은 아니었다”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줬다.
“윤 총장은 국정감사 때 문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재신임해줬다고 했지만 그건 ‘팩트’와 거리가 멀다. ‘물러났으면 한다’는 문 대통령 의중을 한 친문 인사가 윤 총장에게 분명히 전했다. 그런데 윤 총장이 이를 전달받고도 모른 체 또는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정세균 총리가 문 대통령과 상의도 없이 역할을 하려 했겠느냐. 정 총리는 윤 총장 자진사퇴 뒤, 추 장관 교체를 위해 막후에서 움직였다. 그런데 전제 조건인 윤 총장이 물러나지 않으니 추 장관 교체도 없던 일이 됐다.”
복수의 친문 인사들 역시 문 대통령이 사태 해결을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했지만 윤 총장이 버티면서 쉽게 풀리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추 장관이 강공 드라이브를 걸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런 과정을 들은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결단을 하면 경질을 하고, 그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히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으면서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이 눈에 거슬린다고 나가라 하니 윤 총장이 반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12월 2일 경기 과천 법무부청사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어찌됐던 ‘공’은 문 대통령에게로 넘어왔다. 이제부턴 추미애-윤석열이 아닌, 문재인-윤석열의 싸움이 됐다. 물론, 청와대는 선을 긋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징계위원회의 정당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강민석 대변인도 “징계위 절차에 어떠한 개입도 없다. 결과를 예단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12월 10일 열리는 징계위원회 결과에 따르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야권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추미애 장관을 필두로 한 여권의 십자포화가 문 대통령과 청와대 ‘묵인’ 없이 가능했겠느냐는 의문이다. 앞서의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절차를 강조하는 것은 그동안 윤 총장을 두고 벌어진 일들에 대해 대통령의 책임을 면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윤 총장을 찍어내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징계위원회 결과를 따른다는 게 어떻게 절차적 정당성을 담보한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권 기류는 확고하다. ‘윤석열 총장과는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과 친문 핵심부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여기서 밀리면 검찰개혁이 좌초할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또 ‘윤석열의 검찰’에 대한 불안감도 감지된다. 정권과 등을 진 것이나 다름없는 윤 총장이 실력 행사에 나설 경우 문재인 대통령 임기 후반 집권 세력은 검찰 칼날에 설 가능성이 높다.
한 친문 재선 의원은 “윤 총장이 업무에서 복귀해 가장 먼저 챙긴 게 대전지검 월성1호기 수사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걸 접하고 나뿐 아니라 많은 의원들이 분노했다. 이쯤하면 막가자는 것”면서 “윤 총장을 그냥 내버려 둔다고 치자. 아마 윤 총장이 더욱 기세등등하게 나올 것이다. 그럼 검찰이 어떻게 나올지는 빤한 것 아니냐. 검찰개혁은커녕 정권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다.
아직 징계위원회 결과가 남아있긴 하다. 가능성은 낮지만 징계위원회가 윤 총장 손을 들어줄 수 있다. 문 대통령과 여권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우선, 문 대통령 레임덕은 불가피하다. 친문 실세들은 윤 총장이 이끄는 검찰 수사의 최우선 타깃을 면하기도 힘들다. 윤 총장 측근 검사들은 라임·옵티머스뿐 아니라 여권 주류인 친문과 86그룹 운동권 인사들이 거론된 여러 비위들에 대한 수사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징계위원회 결정에 따라 윤 총장을 해임하더라도 문 대통령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윤 총장이 징계위원회 결과에 대한 소송에 나설 경우 법적 공방은 문 대통령 임기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으로선 ‘화약고’를 안고 임기 후반 국정 운영을 펼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나마 문 대통령이 소송에서 이기면 낫다. 진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문 대통령이 안아야 한다.
이를 요약하면 문 대통령은 ‘전리품’을 얻긴 힘들다. 그렇다고 질 수도 없는 싸움이다. 이겨야 본전이다. 물러설 곳이 없을 뿐이다. 윤 총장이 끝까지 버티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친문 핵심 관계자는 “우리가 살 길은 윤 총장을 몰아내는 것”이라면서 “여기서 후퇴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지는 하나다. 윤 총장 해임뿐”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