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금융지주는 최근 새 회장 선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는 최근 2차 회의를 열고 차기 회장 후보군을 추렸다. 12월 중 두세 차례 더 회의를 열어 압축 후보군을 확정한 뒤, 최종 후보자를 결정할 방침이다.
농협금융지주 내부규범에 따르면 ‘경영승계 개시일’로부터 40일 이내 최종 후보자가 나와야 한다. 개시일은 김광수 전 회장이 전국은행연합회장직에 오른 지난 11월 27일부터다. 기한은 오는 1월 6일까지지만 임추위는 12월 말까지 최종 후보자를 확정할 계획이다. 김 전 회장의 임기는 2021년 4월 말까지였다.
NH농협금융지주가 최근 차기 회장 선임 작업을 본격화 했다. 서울 서대문구 농협중앙회. 사진=박은숙 기자
농협금융지주는 최종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 후보군 명단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년과 분위기가 다르다. 올해 은행연합회,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등 주요 금융단체장들이 일제히 관료 출신 인사들로 바뀌면서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차기 농협금융지주 회장 역시 관료 출신 인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관료 출신 인사가 언급되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2012년 농협금융지주 출범과 함께 선출된 1대 신충식 회장을 제외한 후임 회장 4명이 모두 1급 공무원(국장급) 출신이었다. 2대 신동규 회장(행정고시 14회)은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 3대 임종룡 회장(행시 24회)은 국무총리실장, 4대 김용환 회장(행시 23회)은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역임했다. 5대 김광수 회장(행시 27회) 역시 재정경제부와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을 거쳤다.
현재 진행 중인 6대 회장 선출 작업 과정에서도 관료 출신들이 하마평에 올랐다. 정은보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대표(행시 28회), 진웅섭 전 금감원장(행시 28회), 서태종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행시 29회) 등이다. 그 밖에 금융권에선 연말 정부부처 개각 등을 고려하면 최소 차관급 이상의 다른 경제 관료가 농협금융지주 새 수장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금융지주 출범 전부터 이곳을 거쳐 간 전직 고위 관료들이 금융위원장, 은행연합회장 등으로도 자리를 옮기는 일이 늘면서 관가 관심이 예전보다 높아졌다”고 귀띔했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선임에 늘 관료들이 오르내리는 이유는 특유의 정체성 때문이다. 농협법에 따라 설립된 특수한 조직이라 관과의 관계가 밀접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이 아니지만 각종 정책 자금을 관리하는 데다 농민을 위해 이익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공적 성격도 강하다. 농협금융 내부에선 정부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만큼 ‘금융을 잘 아는’ 인물보다는 ‘회장 역할을 잘 하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농협중앙회의 의중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 지분 100%를 갖고 있고, 다시 농협금융지주는 농협은행, 생명, 손해보험, 캐피탈 등 자회사 지분을 각각 100%씩 갖고 있다. 농협법(제142조의 2 중앙회의 자회사에 대한 감독)에 따르면, 중앙회는 자회사와 손자회사까지 관리할 수 있다. 절차상으로는 경영이나 인사 등에 개입이 불가능하지만 간섭할 수 있는 근거는 있는 셈이다. 중앙회는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으로 지원금 등 각종 정부 지원도 받고 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 사진=연합뉴스
금융권에선 범농협 계열사 인사 등 중요 의사결정 역할을 농협금융지주가 아닌 중앙회가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중앙회장이 바뀌면 금융지주 등 계열사 임원들이 줄사표를 내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올해 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지난 1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취임 후 두 달 뒤인 3월 농협은행장을 포함한 7명의 범농협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들이 일제히 사의를 밝혔다.
특히 이목을 끈 것은 이대훈 전 농협은행장이다. 2019년 12월 농협금융 임추위의 단독 추천을 받아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했지만 임기 개시 두 달 만에 사임했다. 이 전 행장은 농협은행이 지난해 1조 5000억 원대의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면서 ‘5대 시중은행’에 이름을 올리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 받았던 만큼, 당시 금융권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뒷말도 적지 않았다. 농협금융지주가 임추위를 열기도 전에 농협중앙회 인사추천위원회가 후임 농협은행장을 내정했다는 것이었다. 농협중앙회 인사추천위원회는 지난 3월 16일 열렸고, 농협금융지주 임추위는 다음날인 17일 열렸다. 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는 ‘독립성 논란’에 선을 그었으나 중앙회에서 이름이 나왔던 손병환 농협은행장이 단독 후보로 추천되면서 의심이 짙어졌다. 손병환 농협은행장은 경남 진주 출생이고, 이성희 중앙회장이 선출되는 과정에선 PK(부산·경남)로 대표되는 영남지역 조합장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 시선이 쏠렸다.
당시 ‘2020년에도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농협금융 측은 “CEO들이 통상 임기인 2년을 다 채웠고, 자진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CEO들이 사실상 새 중앙회장의 인사권을 ‘존중’하는 취지로 물러났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대훈 전 농협은행장을 비롯해 자리에서 물러난 CEO들은 전임 농협중앙회장인 김병원 전 회장 당시 발탁된 인물들이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농협이 금융과 경제사업을 분리했다하더라도 전국 농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중앙회장의 영향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이번 농협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에서도 중앙회 의중에 시선이 몰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당시에 자리를 지켰으나 임기를 마치기 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렸다. 때문에 이번 은행연합회장으로 직함을 바꿔 단 것이 중앙회장 교체와 전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전 회장도 김병원 전 중앙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이다.
반대로 이번엔 내부 승진자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대훈 전 농협은행장의 사상 최초 3연임 성공을 두고 농협금융에도 ‘성과주의’가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금융지주로 독립한 이후 ‘5대 금융지주’로 위상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인재풀이 넓어졌고, 자체적으로 내부 출신 CEO 양성 시스템도 운용해왔다는 점이 이 관측에 힘을 싣는다. 그 밖에 과거 범농협 계열사 CEO를 맡았던 전직 임원들도 하마평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에 대해 농협금융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용은 없으나 임추위가 금융업은 물론 디지털 전환, 해외 진출, IB(투자은행) 확대 등 업계 전반이 가진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영 역량 등을 두루 검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