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내년 취임 4년 차를 맞으면서 계열분리를 시작으로 ‘뉴LG’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구 회장 강조한 ‘도전’…실탄 준비는 완료
구광모 회장은 올해 주주총회를 시작으로 사장단 워크숍, LG사이언스파크 방문 등 공식 석상에서 ‘도전’을 강조해왔다. 실제 LG그룹은 신사업 도전에 적극적이다. 가장 먼저 시도한 분야는 AI(인공지능)다. LG그룹은 지난 7일 AI 전담조직 ‘LG AI연구원’의 출범시켰다. AI 전담조직을 통해 그룹 차원에서 AI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AI기술 전략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AI연구원은 배터리 수명 예측이나 신약 후보 물질 발굴 등 ‘계열사 내 난제’를 해결하는 역할도 맡았다. 이를 위해 LG그룹은 향후 3년간 2000억 원을 투입하고, 그룹 내 AI 전문가를 1000여 명까지 육성키로 했다.
AI연구소의 설립 주체는 (주)LG가 지분 100%를 보유한 LG경영개발원이지만, LG전자와 LG화학, LG유플러스, LG디스플레이, LG CNS 등 16개 주요 계열사가 함께 참여하고 투자한다. 이 같은 행보는 LG그룹이 그간 계열사별로 진행해온 신사업을 한데 모아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LG그룹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LG그룹은 그간 계열사 별로 각자 관련 부서나 연구소를 신설해 여러 신사업을 진행해왔다”며 “그러나 규모가 작은 만큼 크게 힘을 받지는 못했고, 앞서 지주사가 계열사별로 진행하며 중복된 신사업을 교통정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향후 AI사업 육성은 AI연구원과 함께 LG테크놀로지벤처스가 주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LG전자, LG화학, LG유플러스, LG디스플레이, LG CNS 등이 출자해 출범한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그간 AI와 로봇, 자율주행, 바이오 등 여러 글로벌 신기술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를 진행해왔다. 지난 10월에는 AI 비주얼 검색 기술 업체 SYTE(사이트)에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내년 LG그룹이 올해 SK그룹처럼 대규모 M&A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주)LG는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실탄을 확보해뒀다. (주)LG는 지난해 자회사 LG CNS 지분 35%(1조 원 규모)와 서브원 지분 60.1%(6020억 원)를 매각해 현금을 확보했다. 지난 3분기 기준 (주)LG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 6697억 원이다. LG전자(3분기 기준 6조 5765억 원)와 LG화학(3조 5390억 원), LG유플러스(1조 241억 원) 등 주력 계열사도 각자 비주력 사업부문과 해외 법인 지분 등을 정리하며 곳간을 채웠다.
전지사업부문을 분리한 LG화학의 다음 과제로 ‘생명과학 사업본부’의 성장이 꼽힌다. LG화학 이사회가 배터리사업부 분할안을 결의한 지난 9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 모니터에 LG화학 주가 그래프가 표시된 모습. 사진=연합뉴스
#‘생명과학’ 집중 시동 건 LG화학
LG화학의 경우 전지사업부문을 떼어내 독립시키면서 매년 수조 원의 투자금부담을 덜었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가 절실해졌다. LG화학은 “그간 전지사업부문에 집중됐던 투자를 다른 사업부문에 균형있게 투자할 수 있게 됐다”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 새로운 성장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명과학 사업본부의 경쟁력 강화가 우선 과제로 꼽힌다. 석유화학 사업본부는 사이클(주기)산업이지만 이미 오랜 기간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견인해왔고, 첨단소재 사업본부 또한 지난해 소재사업 재편을 마무리하며 실적 개선을 위한 밑바탕이 마련됐다. LG화학은 2017년 1월 (주)엘지생명과학을 흡수합병해 생명과학 사업본부로 두고 신약 개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생명과학 사업본부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지난 3분기 기준 생명과학의 총 부문수익은 4917억 원으로 전체(22조 6105억 원)의 2.17%에 그친다.
이런 가운데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실제 LG화학 생명과학 사업본부는 합병 이후 R&D(연구개발) 투자 규모를 확대하며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합병 이후 본부 매출의 25% 수준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합병 전보다 10% 늘어난 규모다. 이와는 별개로 경쟁력 강화를 위한 M&A 등 사업 확대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화학 생명과학 사업본부 관계자는 “꾸준히 임상과제를 늘리며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외부에서 유망 기술이나 파이프라인도 적극적으로 도입해오고 있다”며 “현재까지 총 9건의 라이선스 인(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고, 추후에도 좋은 투자 기회가 있으면 투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비통신’ 먼 길 LG유플러스
또 다른 주력 계열사 LG유플러스는 비통신 신사업 확대에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SK텔레콤과 KT가 앞 다퉈 비통신 사업 비중을 늘리는데 성공했으나 LG유플러스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LG유플러스의 신사업 의지는 내년도 조직개편에서 읽힌다. LG유플러스는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신규사업추진본부’를 신설했다.
이를 위해 먼저 LG유플러스는 실탄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LG유플러스는 그간 5G 투자와 LG헬로비전 인수 등으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꾸준히 감소했다. 2019년 말 기준 4743억 원이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지난 1분기 3946억 원, 지난 2분기 4404억 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지난 3분기 1조 241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에 대해 LG유플러스 관계자는 “PG(전자지급결제) 사업부 매각 대금이 들어온 것이 가장 큰 이유고, 회사채도 발행했다”며 “회사채 발행 목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힐 것이 없다”고 전했다.
LG유플러스는 지난 8월 PG 사업부를 매각하며 확보한 3560억 원을 5G와 미디어, 콘텐츠 등 핵심 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까지 연구 및 개발 부문에 투자가 눈에 띄게 확대되지 않았다. 지난해 3분기 474억 원이던 연구 및 개발활동 관련 지출이 올해 3분기 527억 원으로 53억 원가량 확대됐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추가 M&A 가능성이 점쳐진다. LG헬로비전을 인수한 지 1년을 맞아 안정을 되찾은 만큼 내년부터 비통신 부문에서 추가적인 M&A를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LG유플러스는 지난 11월 진행된 딜라이브 예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제 막 대표이사가 바뀐 상황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할 만한 M&A나 투자 계획도 없다는 입장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이제 막 M&A와 투자 등 향후 계획을 세워나가는 단계”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