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권 인사로 분류되는 이성윤 지검장이 이끌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차기 대권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이낙연 대표를 수사한다는 점에서 ‘의외’라는 반응도 나왔지만, 옵티머스자산운용 사건을 특수부 성격의 경제범죄형사부에 재배당한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보탰다.
금품수수 의혹으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의 수사를 받던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비서실 부실장 이 아무개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는 이낙연 대표의 모습. 사진=더불어민주당 제공
그랬던 이 대표 측근 이 씨가 검찰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건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검찰청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서울중앙지검으로 편 가르기가 이뤄진 상황에서 윤 총장은 이번 사건 주체인 서울중앙지검의 잘잘못을 따지겠다는 입장이다.
#이낙연 측근 자살에 윤 총장 ‘압박 시작’
옵티머스자산운용 관련 업체로부터 4·15 총선을 전후로 이낙연 대표 선거사무실 복합기 임대료 등을 지원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의 수사를 받던 이 대표 비서실 부실장 이 아무개 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 12월 3일. 이 씨는 서울중앙지검에 2일 출석해 저녁 6시 30분까지 조사를 받았고, 저녁 식사 후 조사가 계속될 예정이었지만 검찰과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다음날인 3일 저녁 9시 15분쯤, 서울중앙지법 청사 인근 건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통상적이면 수사 주체인 서울중앙지검은 물론 대검찰청도 ‘수사 중 문제가 될 소지는 없었다’며 한 목소리를 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윤 총장은 곧바로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이 부실장에 대한 수사 과정에 인권보호 수사 규칙 위반 등 인권침해 여부가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해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외형적으로는 검찰이 옵티머스 사건 수사를 통해 여권을 압박한다는 정치권의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비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을 윤석열 총장의 ‘대검’과 추미애 장관의 ‘서울중앙지검’ 간 대립 양상으로 해석하는 분석이 힘을 받는다.
윤 총장은 사건 관련 보고를 일체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런 일이 발생하여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대검찰청에 사건 관련 보고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수사팀은 이 씨의 소재 불명 사실을 3일 오전 9시 30분쯤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윤 총장은 사망 확인 시까지 관련 보고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이 ‘별건 수사’로 수사를 확대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씨가 옵티머스 사건 외에도 전남 지역의 기업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이 있고, 이를 검찰이 수사 중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앙지검 수사팀은 급히 기자단에 “(이 씨의) 옵티머스 펀드와 무관한 전남 지역 업체들의 급여 제공 관련 혐의를 규명하기 위해 검찰이 소환 조사를 했다거나 계좌 추적 등을 통해 그러한 정황을 확인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윤 총장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사망한 이 부실장에 대한 수사 과정에 인권보호 수사 규칙 위반 등 인권침해 여부가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해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후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아내와 장모, 또 측근(윤대진 검사장) 사건의 수사를 받아야 했던 윤석열 총장은 특별 지시를 추가로 내리며 사건을 문제 삼고 나섰다. 지난 7일에는 전국 검찰청에 “방어권 보장이 수사 보안보다 상위의 가치임을 명심하라”며 인권 수사를 강조하는 특별 지시를, 이보다 앞선 4일에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이 씨 사건의 인권침해 여부를 진상 조사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검찰청은 “검찰총장은 최근 옵티머스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전국 검찰청에 특별 지시로 피의자 등 사건 관계인을 조사할 경우 3가지 사항을 준수할 것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는데 윤 총장은 “조사 중 별건 범죄 사실의 단서가 발견될 경우 조사 주체, 증거 관계, 가벌성 및 수사 시기 등을 인권감독관에게 점검받은 후 상급자의 승인을 받고, 중요 사건의 경우 대검에 사전 보고해 지휘받아 수사에 착수하라”고 덧붙였다.
특히 대검은 △수사 과정에서 윤석열 총장에게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점 △수사 중 혐의에 대해 제대로 수사를 진행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 법조인은 “‘죄가 되면 수사한다’는 마음으로 별건 수사도 적극적으로 수사에 활용했던 윤석열 총장이 이번 사건을 놓고 ‘별건 수사는 잘못됐다’고 메시지를 주는 것을 보고 이번 사건이 정치적인 쟁점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른 검사도 아닌 특수통 중 특수통으로 별건 수사를 활용한 게 윤석열 총장이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이낙연 대표에 불리한 카드 되나
그만큼 윤석열 총장이 추미애 장관과의 갈등 국면에서 모든 가능한 수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이 전선을 넓혀가면서 이낙연 대표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전선을 넓혀가면서 이낙연 대표에게는 이번 사건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진=이종현 기자
특히 중앙지검은 이 씨가 옵티머스 로비스트로부터 이낙연 대표가 서울 종로구에 선거사무소를 차리기 전 사용한 서울 여의도 사무실 보증금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울시 선관위가 이 씨를 고발한 옵티머스 측의 사무실 복합기 임차료 대납 의혹, 1000만 원 상당의 가구·집기 제공 의혹 등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었다. 이 씨는 12월 2일을 포함해 검찰에서 두 차례 조사를 받았고, 검찰은 이 씨를 상대로 한 압수수색 등에서, 이 씨를 기소할 수 있을 정도로 혐의와 근거를 꽤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레 윤석열 총장이 사건을 건드릴수록 이낙연 대표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재경지역의 한 간부급 검사는 “이번 사건은 사뭇 특이하다. 친정부 성향의 서울중앙지검이, 그것도 특수부를 동원해 총리를 지낸 이낙연 대표를 겨냥한 사건”이라며 “윤석열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을 문제 삼기 위해 사건 자체를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이 대표는 정치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사 중 피의자 자살’이라는 점을 부각해 검찰 개혁의 필요성으로 강조하고 있다. 검찰 수사 도중 극단적 선택을 한 이 씨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빗대며, 민주당 지도부가 직접적으로 문제 제기에 나섰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유명을 달리한 이 부실장의 비극에 대해 검찰의 별건·표적수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엄정한 감찰이 이뤄져야 한다”며 “10여 년 전 노 전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강 회장을 죄인으로 몰아 죽음으로 내몬 사건이 떠오른다. 고인 비극을 검찰 내 권력 싸움에 이용하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피의사실과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유력 대선후보 측근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에서 불거진 자살이 누군가에게는 서울중앙지검 압박 카드로, 누군가에게는 검찰 개혁의 필요성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정치적인 사건을 맡게 될 수사기관 중 어느 곳이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