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수족 제작 업체의 의료수가 조작으로 탈세가 의심되는 정황이 포착됐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의수족을 제작하는 A 업체의 탈세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제보자 B 씨는 “의수족 의료수가에 비해 대체로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실제 제작 현실이 자연스레 탈세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B 씨는 “A 업체는 의료수가 초과 금액을 현금으로 받아 약 15년 동안 탈세를 해오고 있다”며 A 업체의 다운매출내역서를 건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정한 의수족 관련 의료수가는 현실적인 의수족 제작비용보다 훨씬 낮다. 업계 관계자는 “건강보험의 의수족 지원금의 기준이 되는 의료수가가 현실적이지 않다. 손가락이 12만 원, 의수는 56만 원, 의족은 181만 원 등 의료수가가 너무 낮아 이 정도 금액에 맞춰서는 쓸 만한 의수족을 제작하기 어렵다”며 “의수족 제작에 첨단장비가 들어가는 등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 데다 장애인들의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어서 제작비용이 최소 1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5000만 원에 이른다”며 “건강보험 지원금 외에 장애인이 부담해야 하는 차액이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제보자 B 씨는 “그 차액으로부터 탈세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공단의 의수족 관련 의료수가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 탈세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의료수가란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의료행위에 대해 제공하는 비용을 뜻한다. 여기서는 의수족 제작업체가 의료서비스 제공자가 된다.
건강보험의 의료수가는 정해져 있지만 환자들은 현실적으로 의료수가보다 훨씬 비싼 제품을 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건강보험의 지원금 외에 환자가 따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수백만 원은 기본, 수천만 원을 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제작 업체는 그 차액을 현금으로 받은 뒤 매출을 줄여 탈세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의수족 가격이 1000만 원이면 이 가운데 환자의 결손상태에 따라 건강보험이 지급하는 정액 지원금인 181만 원이나 227만 원의 의료수가로만 서류를 작성해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고, 환자로부터 받은 나머지 800만여 원은 매출에서 누락하는 방식이다. 환자에게는 현금으로 지불하면 비용을 깎아주는 조건을 제시해 나머지를 현금으로 받고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탈세가 가능해진다. 의약품과 달리 의료보조기는 가격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탈세를 돕는다. 게다가 이렇게 형성된 ‘흔적 없는’ 현금이 병원이나 의사에게 상납하기 위한 리베이트 자금으로 쓰이게 된다.
#의료수가만 서류에, 차액은 현금으로 따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장애인의 결손 정도에 따라 의수족 제작비를 정액으로 지원한다. 1999년 산재수가를 기준으로 건강보험 급여가 시작된 이래 장애인 보장구 구매 시 급여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팔 의지 21개, 다리 의지 18개 등 총 45개 품목이다. 기초생활수급자나 국가유공자 등이 아닌 일반적인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는 장애인의 경우 의료수가의 90%를 건강보험이 지원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자기부담금 10%를 낸다.
제보자 B 씨가 제시한 의수족 제작 업체 A의 장부를 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원하는 내구연한에 따라 3년에 한 번씩 의수를 교체하는 환자 C 씨의 경우 2008년에는 신용카드로 140만 원을 결제했지만 3년 뒤에는 같은 제품을 25만 원만 현금 결제한 것으로 돼 있다. 25만 원은 국민건강보험 손 의지(의수) 미관형의 표준 수가다. 고객이 카드로 결제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제품 가격이 모두 노출되어 매출과 소득에 포함되지만 현금으로 결제할 때는 의료수가로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따로 처리하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례다.
넓적다리 의족을 제작한 한 환자는 “의족을 제작하는 데 실제로 2000만 원 정도 들었지만 건강보험 의료수가가 227만 원이라 이에 대해서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남은 비용 가운데 일부를 깎아준다기에 현금으로 지불했고 서류를 227만 원으로 올리는 것에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환자에게 돌아오는 건강보험의 지원금 액수가 정해져 있다 보니 환자 역시 업체의 할인이라는 미끼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A 업체는 “의료수가 외 금액은 환자들이 신용카드로 결제하거나 현금으로 내도 현금영수증 처리를 한다. 탈세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부가세 안내고 매입세 돌려받아
더구나 장애인 의료복지사업인 의지보조기 제작업은 영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영세율이란 면세와는 또 다른 개념으로 면세보다 유리하다. 면세는 부가가치세를 안 내지만 매입세액에 대한 환급도 없다. 반면 영세율은 부가세는 안내고 재료를 구매할 때 발생하는 매입세액까지 환급받는다.
장애인은 의료수가 내에서만 건강보험 지원금을 받지만, 사업자는 장애인에게 실제 제작비용을 모두 받고 거기에 매입세액까지 환급받아 수입을 늘릴 수 있다. 이는 애초 영세율을 적용해 장애인 혜택을 높이려는 취지와는 다르게 장애인에게 돌아가지 않는 사업자만의 혜택이 될 확률이 높다.
의수족 제작 업체는 의료수가 외 차액을 현금으로 받고 다운매출내역을 작성해 탈세하는 수법을 쓴다. 재료와 기술에 따라 제작 비용이 천차만별인 의수족 재료들 모습. 사진=제보자 제공
한서대학교 의료복지공학과의 2017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수족 사용자인 장애인 10명 가운대 9명이 건강보험 지원액 외 추가비용을 지불한 경험이 있으며, 추가비용이 경제적으로 부담된다고 응답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도 “기준 의료수가가 너무 낮아 장애인이 지불해야 하는 실제 구매비용이 너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절단 장애인 입장에서는 현실적이지 않은 의료수가가 높아져야 건강보험의 지원금도 올라가지만 의수족 업체 입장에서는 의료수가가 높아지는 것을 굳이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 의료수가가 높아지면 그만큼 환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현금 수입이 줄고 의료수가의 비율에 따라 병원이나 의사에게 주는 리베이트 금액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껏 의수족 관련 의료수가가 비현실적으로 낮은 금액으로 머물러 있던 것도 업체 측에서 실제 의수족 제작비가 아닌 의료수가로 맞춘 금액만을 건강보험에 제출해, 서류상 평균 제작비를 하향평준화 시켜놓은 영향도 없지 않아 보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공단에서도 의수족 의료수가가 오랫동안 오르지 않은 점을 감안해 올해 의수족 평균 제작단가를 조사하고 연구용역도 구성해 내년에 수가를 올릴 계획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국민건강보험의 재원으로 나가는 지원금인 만큼 최소한의 제작비용으로 맞추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지보조기협회는 “외부용역의 조사와 건강보험공단의 예산에 따라 2021년부터는 평균적으로 약 30% 정도 의수족 제작 의료수가가 오를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의료수가 인상으로도 의수족 제작 시 발생하는 차액을 크게 줄이지는 못할 전망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