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A 타이거즈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 군(왼쪽)과 그의 절친이자 LG 트윈스 이대형의 사촌인 나용기 군,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과 아들 박시찬 군, 황대연 전 대전고 감독과 아들 황인준 군(위부터). |
‘종범신’의 아들 이정후와의 만남은 광주 서석초등학교를 비추는 따가운 햇살만큼이나 강렬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선 초등학교 6학년답지 않은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이정후가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다. 두 살 때부터 야구공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고 야구에 재미를 느낀 건 일곱 살 때부터지만 아버지한테 본격적으로 ‘야구 하고 싶다’는 말을 꺼낸 건 3학년 때다.
“아빠가 먼저 야구를 권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골프를 배우라고 하셨어요. 제가 오른손잡이기 때문이에요. 좌타자가 되지 못하면 야구 안 시킨다고 하셨어요.” 이정후는 그때부터 방망이를 왼손에 쥐고 타격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야구를 하고 싶다는 열정은 그를 2개월 만에 왼손 타자로 탈바꿈시켰다. 두 부자의 야구 인생은 시작부터 닮아 있었다. 왼손잡이던 이종범 역시 서림초등학교 시절 감독의 권유로 우타자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동년배에 비해 야구 기량을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다. 서석초등학교 양윤희 감독은 “정후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 배우는 즉시 적용하는 선수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정후는 지난 6월 열린 KIA 타이거즈기 호남지역 초등학교 야구대회에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바 있다. 12타수 8안타(타율 0.667) 4타점 3도루 7득점을 올리며 팀 승리를 견인했다. 수비도 일품이다. 지난해 광주광역시장기에서 화려한 진기명기를 선보이며 미기상을 수상했다. 투수로서의 재능도 인정받고 있다. 양 감독은 “어깨가 좋아 투구를 시켜봤다. 눈에 띄게 성장하더라. 지금은 팀의 선발 투수로서 중요한 역할도 해주고 있다. 투수로 성공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본다”며 탁월한 재능을 높이 샀다.
야구계에선 그를 두고 ‘초등학교 시절의 이종범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며 칭찬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아직 멀었다’며 몸을 낮춘다. “2007년 아빠 은퇴 얘기가 나왔을 때 ‘야구 계속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그러자 ‘다시 도전하겠다’며 타석에 서셨고 지난해 한국 시리즈 우승까지 일궈내셨다. 아버지처럼 끊임없이 도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남들이 한 발 뛸 때 나는 두 발 뛰겠다.”
서석초등학교에는 LG 트윈스 이대형의 사촌 나용기도 있었다. 이정후와 둘도 없는 절친이라고. 사촌 형의 영향으로 야구를 시작했단다. 박찬호 선수 같은 투수가 되는 게 꿈이지만 타격에도 재능이 있다. 춘계대회 때 3 대 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만루 홈런을 쳤던 것. 서석초등학교를 이끄는 두 꿈나무의 미래가 기대된다.
김해에 위치한 롯데 상동야구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현재 롯데 2군을 맡고 있는 왕년의 롯데 최고 스타 박정태 감독과 그의 2세를 만나기 위해서다. 국가대표 부동의 2루수였던 그는 ‘탱크’란 별명만큼이나 열정적인 플레이로 롯데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야구계의 빛과 그림자를 꿰뚫고 있는 박 감독이기에 아들 박시찬의 야구 입문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우리나라 야구 환경의 열악함을 알기에 야구 안 시키려고 일부러 방치해뒀다. 혹시라도 야구를 좋아하게 될까봐 집에선 야구 얘기도 안했다. 그런데 본인이 저렇게 하고 싶어 하니 어쩌겠나. 있는 힘껏 밀어줘야지.”
경남고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시찬은 5년 전 코치 연수를 받으러 간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 밴쿠버로 건너갔다. 이후 클럽팀에 들어가 캐나다 친구들과 시합을 하며 야구에 눈을 떴다. 게다가 캐나다 선수들을 제치고 우수투수상을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를 계기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는 이들에 비하면 다소 늦은 편. 그러나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 따라 야구장에 갔다가 평소 팬이던 SK 송은범 선수를 만났다. ‘투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듣고는 처음 보는 나에게 본인이 쓰고 있는 글러브를 그 자리에서 빼주며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줬다. 지금도 그 글러브는 집에 가보로 전시돼 있다. 그때 투수에 대한 꿈이 더욱 확실해졌다.”
투수로서의 떡잎은 그 이전부터 보였다. 1999년 준플레이오프 때 시구를 하게 된 것. 당시 그의 나이 일곱 살이었다. 바운드 없이 당차게 공을 던지는 모습에 관계자들이 모두 놀랐다고.
야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련이 닥쳤다. 허리 디스크 증세가 악화된 것. 이를 악물고 재활 훈련에 매달린 결과 현재는 완쾌 단계라고 한다. 박 감독은 “시작이 늦은 만큼 맨투맨으로 기본기를 가르치고 있다. 다른 코치들도 가끔씩 봐주곤 한다. 아마 다음 시즌부턴 경남고로 돌아가 동료들과 함께 경기를 치를 수 있을 것”이라며 미소를 보였다.
박시찬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캐나다에 2년간 머물면서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게 됐다. 게다가 그의 사촌 형은 클리블랜드의 ‘핵’ 추신수다. “신수 형이 큰 힘이 된다. ‘너도 잘할 수 있다. 언제든 오라’며 미국 진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곤 한다.”
그의 동생 박시현 역시 신정중에서 공부도 야구도 1등 하는 천재로 소문났다. 알아서 척척 악바리같이 야구하는 동생이 부러울 때도 있다고.
든든한 두 아들을 훌륭한 야구선수로 키우겠단 박 감독의 A 플랜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시찬이를 22세에 결혼시켜 손녀를 안아보자는 내 B 플랜 역시 진행 중이다. 두 계획 모두 성공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켜봐달라”며 호탕한 웃음을 보였다.
대전고에도 떠오르는 히어로가 있다. 바로 황대연 전 한화 코치의 장남 황인준. 황 전 코치는 한화에서 선수생활을 마친 뒤 LG 프런트, 한화 코치로 활약하다 대전고 감독으로 부임해 그의 손으로 걸출한 선수들을 배출해냈다. 현재는 CNB 대전방송 해설위원, 대전시 생활체육과 야구 감독을 맡고 있다. 30년 넘게 야구계에 몸담으며 지도자로 이름을 날린 그는 우리나라 야구 환경의 열악함을 잘 알기에 아들이 본인과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황인준은 성적이 뛰어나고 매 학년 임원을 맡을 정도로 신망을 받고 있었기에 공부를 시키고 싶었다고.
“중학교 야구부 감독에게 중2 여름방학 동안 인준이 입에서 ‘야구하기 싫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혹독한 훈련을 부탁했다. 일종의 테스트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 달 후 ‘야구 너무 재밌어요. 꼭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중엔 ‘이렇게 소질 있는 걸 알았으면 진작 시켜줄 걸’ 하는 후회도 되더라.”
차남 황인건 역시 세광고에서 야구 선수로 활약 중이다.
황 전 코치와 황인준이 대전고에서 감독과 선수로 지낸 1년 동안 재미난 에피소드도 많았다. 황인준은 “1년간 단 한 번도 아버지와 함께 등교한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차 한 대를 따로 구입했을 정도니까. 어쩔 수 없이 함께 차를 타고 등교할 일이 생겼을 땐 아버지가 차에서 내린 뒤 학교 주위를 한 바퀴 돈 뒤에 들어가곤 했다”고 소개했다.
어려움도 있었다. 2008년 팔꿈치 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야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치료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시켰다. 구속도 시속 144㎞까지 끌어올리며 야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지난 3월 열린 황금사자기 1회전에선 7과 2/3이닝 동안 안타 두 개만을 내주며 첫 승을 신고해 눈길을 끌었다. 박찬호처럼 철저한 자기 관리로 오랫동안 마운드에 오르고 싶다는 황인준. 한국 최고 우완투수가 되기 위한 그의 힘찬 날갯짓을 주목해보자.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