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7월 30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일요신문] 여권의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지율 대결이 치열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포함한 이들 빅3는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조사 기관과 시기에 따라 순위를 바꿔 앉는다.
12월 4일 발표한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이재명 지사가, 9일 리얼미터 발표에서는 윤석열 총장이 선두를 달렸다. 한때 40% 선호도를 기록하던 이낙연 대표의 상승세는 최근 찾아보기 힘들다. 이 대표는 4일 발표에서 3등(16%)이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조사 결과가 더 뼈아픈 건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이 대표의 정치 기반인 호남에서 이 지사에게 1%p차로 밀렸다는 점이다.
야권의 주된 관심사가 윤 총장의 대권 레이스 참여라면 여권의 관심사는 단연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의 승부다. 그런데 이낙연 대표의 상황이 좋지 않다. 추윤(추미애 윤석열) 갈등으로 당 지지율이 지속 하락세를 보이는 데다 검찰 조사를 받던 측근이 사망하는 등 악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낙연 대표의 지지율(선호도) 침체를 이런 일시적 원인보다 정책 방향성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노동, 민생과 관련해 민주당이 보수화하고 있다는 얘기가 중도, 진보층에서 들린다.
먼저 이번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입법이 좌초된 것을 두고 민주당의 우클릭이 본격화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을 처벌하는 법안이다. 당연히 재계는 반대했다.
민주당에서는 박주민 의원이, 정의당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강은미 의원이 발의했다. 국민의힘도 처벌 수위는 민주당, 정의당보다 낮췄지만 법안을 내놓으며 중대재해법 제정에 힘을 보탰다.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살인 기업을 처벌하는 중대재해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김용균 씨의 빈소를 찾아 “원·하청 불문하고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기관장에게 엄정하게 책임을 묻는 것부터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 민주당은 김태년 원내대표와 한정애 환노위원장을 중심으로 산업안전법 개정 쪽에 힘을 쏟으며 중대재해법 제정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론 채택 요구에도 침묵했다. 10일 기준 중대재해법은 여전히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8일 “마지막 기회다. 민주당의 일원으로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꼭 통과되기를 기원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징벌배상법의 당론 채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법은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와 소비자를 사용자와 기업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지사는 올해 4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원인은 화재나 소방 문제가 아닌 노동 문제”라며 “규칙을 어길 때 생기는 이익이 제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기업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중앙정부가 독점한 근로감독권을 지방정부에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이낙연 대표도 9월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공언했었다. 11월 1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도 “중대재해법에 찬성한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법 제정을 위해 선뜻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정의당이 국회에서 72시간 노숙 농성에 나서며 민주당을 설득했지만 복지부동이었다. 이를 지켜본 시민단체들은 “민주당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기업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나마 중대재해법은 말로나마 이낙연 대표의 찬성 의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재난지원금에선 두 사람의 생각이 극명히 갈린다.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이재명 지사와는 달리 이낙연 대표는 선별지원을 고수하고 있다. 2차 재난지원금과 마찬가지로 3차 재난지원금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주된 지원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2차, 3차 지원에서 제외된 국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소상공인 단체가 재난지원금을 국민에게 주고 시장에서 소비하게 해달라고 촉구했지만 정부·여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서민 가계의 소비가 줄어들고 소비 감소로 인한 재고 증가, 생산 감소 등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정부는 아랑곳 않는 모양새다.
국제통화기금 세계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 재정지출 규모는 GDP 대비 3.1%로 주요 20개국(G20) 평균인 5.78%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올해는 적은 예산으로 기대 이상의 방역 효과를 거뒀지만 확진자 증가를 막지 못할 경우 내년에는 서민 경제가 더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쓴 맛을 본 미국, 일본, 유럽이 회복과 방역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은 이른바 ‘헬리콥터 머니’를 투하해 서민경제를 살리려 애쓰고 있지만 우리 정치권에서는 “국민에게 돈을 주면 나태해진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국채 발행 운운하며 재난지원금이 빚 잔치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재정 당국도 국가채무, 재정 건전성, 경제성장률 같은 지표를 국민의 삶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다.
코로나19시대의 정책 결정을 위해선 시야를 외국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20개국과 OECD 회원국들은 국민에게 과감한 재정 투입을 망설이지 않고 있다. 그들의 경제 정책은 숫자보다 국민의 삶을 향하고 있다.
※한국갤럽 차기대선 선호도 조사는 12월 1~3일 사흘 동안 전국 18세 이상 1000명(95% 신뢰수준 ±3.1%포인트)을 대상으로 무선·유선RDD 전화면접 방식으로 실시됐고, 응답률은 15%이다. 리얼미터 조사는 12월 8~9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95% 신뢰수준 ±3.1%포인트)을 대상으로 유선 20%, 무선 80% 병행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리얼미터, 한국갤럽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