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네트웍스가 조직개편을 단행해 최신원 회장(왼쪽)의 장남 최성환 기획실장(왼쪽에서 두 번째)가 사업총괄을 맡게 됐다. 최성환 기획실장의 2010년 결혼식 모습. 사진=연합뉴스
SK네트웍스는 12월 3일 조직개편과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SK네트웍스가 ‘사업형 투자회사’로 정체성을 바꾸고 사업총괄직을 신설한 점이다. 사업형 투자사는 SK네트웍스가 해오던 기존 사업을 전개하면서 투자사로서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등 신사업 투자에 나서는 회사를 말한다.
신설된 사업총괄직에는 최성환 기획실장이 선임됐다. 사업총괄은 SK네트웍스 자체 사업을 주관하며 자회사들의 전략적 의사결정도 챙기는 역할을 맡는다. 사업총괄은 산하에 신성장추진본부를 두고 투자 관리와 인수합병 업무를 담당한다. 이로써 최 기획실장은 기업 의사결정 최상단 역할을 하게 됐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은 2016년 취임 후 SK네트웍스 사업구조 재편에 성공해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우선 수익성이 낮은 SK네트웍스의 패션사업을 매각하고, 면세점 사업을 중단했다. SK 계열사에 의존도가 높던 석유 도매 사업 역시 매각해 SK네트웍스를 렌털사업 기반의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최 회장 취임 이후 회사의 정체성 변화는 최대 경영 성과로 꼽힌다.
하지만 최 회장과 관련한 현안들을 고려했을 때 아들 최성환 기획실장으로 경영승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번 조직개편으로 최 기획실장이 SK네트웍스 전면에 나선 이유도 최 기획실장 측에 본격적으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월 최신원 회장은 200억 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로부터 세 차례 압수수색을 받았다. 검찰은 2018년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최 회장과 관련해 수상한 금융거래 내역을 넘겨받고 공정거래조사부에서 장기간 내사를 벌이다 최근 반부패수사1부로 재배당된 뒤 본격 수사를 이어갔다. 검찰은 최 회장이 뭉칫돈을 해외로 가져나간 정황을 포착하고 비자금 조성, 횡령 등 혐의를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해왔다.
그러나 검찰은 당초 혐의점을 두던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강도 높은 세 차례 압수수색까지 벌인 만큼 다른 혐의로라도 기소를 강행할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에 정통한 관계자는 “내사를 벌이며 살펴봤던 혐의들이 기소로 이어지기에 힘든 점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럼에도 기소까지 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K네트웍스 조직개편으로 최성환 기획실장이 경영권 승계에서 맡을 역할에 이목이 집중된다. 사진=연합뉴스
검찰 칼끝에 놓인 최신원 회장이 회사 전면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 최 기획실장의 역할에 더욱 힘이 실린다. 1981년생인 최 기획실장은 2009년 SK(주)에 입사해 SKC 회장실 담당 임원과 SK사업지원담당, 글로벌사업개발실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SK(주) 임원과 SK네트웍스 사업총괄을 겸하고 있다.
재계는 최성환 기획실장의 입지 강화로 SK그룹의 승계에 영향이 있을지 주목한다. 최 기획실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자녀를 비롯해 SK 3세 중 가장 먼저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또 최 기획실장은 올해 초부터 20여 차례에 걸쳐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 현재 SK(주) 지분 0.74%를 확보, SK가 3세 중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과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다음으로 지분 보유율이 높다.
회사 측은 이번 조직개편과 경영권 승계는 무관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SK그룹의 임원 인사는 전사적인 차원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장차 SK네트웍스의 계열분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다만, SK네트웍스 지분구조를 살펴봤을 때 당장 계열분리는 요원하다.
SK네트웍스는 SK(주)가 지분 39.14%를 보유하고 있고 최 회장은 0.85%만 갖고 있다. 지배력 강화를 위해서는 최 회장이 SK(주)가 보유한 SK네트웍스 지분을 사들여야 하는데, 단순히 주가만 계산해 봐도 4670억 원 상당이 필요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최 회장과 최 기획실장이 보유한 SK(주) 주식의 가치는 1365억 원 수준으로 보유 주식을 처분하더라도 SK네트웍스 지배는 쉽지 않다. 총수 일가의 가족회의를 통해 지분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계열분리는 어려운 셈.
재계 관계자는 “다른 기업과 달리 사촌경영을 하면서도 가족회의에서 소유와 경영 관련 조율에 분란이 생기지 않았던 게 SK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이라며 “3세로 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앞서의 가족 문화를 따라 가족회의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