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TV조선 신규 프로그램 ‘우리 이혼했어요’ 녹화를 위해 방송사 스튜디오에 들어선 방송인 김새롬이 꺼낸 질문이다. 세간의 시선 속에 결혼생활을 해온 유명 연예인 부부가 느닷없는 이혼으로 대중을 또 한 번 놀라게 한 뒤 10여 년이 지나서 나란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어서다. ‘대담한’ 주인공은 1980년대 초반 당대 선남선녀 스타의 결혼으로 화제를 뿌리고, 이후 연예계를 대표하는 잉꼬부부로도 꼽혀온 배우 선우은숙(61)과 이영하(70)다.
선우은숙은 신혼 초 자신에게 ‘얼마나 살지 두고 보자’는 악담을 퍼부은 한 여배우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털어놨는데도, 되레 이영하는 그 여배우의 편을 들었다는 서운함을 뒤늦게 풀어내기도 했다. 사진=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방송 화면 캡처
아무리 세상이 바뀐다 해도 유명인들에게 ‘이혼’은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은 개인사일 수밖에 없다.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20~30대도 아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장년 연예인이라면 더욱 꺼내기 어려운 사연이다. 그런데도 선우은숙과 이영하는 고정관념을 단박에 깨는 과감한 동반 출연을 통해 남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이혼 부부의 못다 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다.
할리우드에서나 봤을 법한 ‘우리 이혼했어요’는 예상대로 초반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시청자의 반응은 기획 의도에 대한 놀라움을 넘어 시간이 지날수록 ‘공감’으로 흐르고 있다. 이혼한 연예인 부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는 평가와 함께 노년에 접어든 이혼 부부의 솔직한 이야기, 지난 삶을 반추하는 과정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시청률은 뜨거운 반응을 확인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이다. 11월 30일 첫 회 시청률 9%(닐슨코리아 제공)로 출발해 2회 9.3%, 3회 9%를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금요일 밤 10시부터 2시간 방송하는 ‘우리 이혼했어요’는 같은 시간대인 MBC 대표 예능 ‘나 혼자 산다’,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등을 단숨에 앞질렀다.
#전 아내가 묻는다 “나를 다시 여자로 볼까”
선우은숙과 이영하는 성격 차이 등을 이유로 2007년 이혼했다. 결별을 공식화하기 2년 전부터 별거를 해왔기 때문에 그 기간까지 더하면 ‘남남’이 된 지 햇수로 15년이 훌쩍 지났다. 소위 잉꼬부부로 불린 연예인 커플들이 이혼 이후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고, 더욱이 방송에 함께 출연한 경우도 없는 만큼 선우은숙과 이영하의 파격적인 행보는 시작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그동안 시도되지 않은 프로그램 기획에 우려가 증폭된 것도 사실이다. 연예인 부부의 일상을 관찰 카메라 형식으로 담아내는 각종 예능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이번엔 더욱 자극적인 ‘이혼 부부까지 나온다’는 시선이 제기되기도 했다.
고정관념에 따른 우려를 불식시킨 주역은 다름 아닌 선우은숙과 이영하다. 이혼 발표 당시 선우은숙은 기자회견을 통해 “어느 때는 좋았는데, 또 어느 때부터 나빠졌다는 말 자체가 흐름에 맞지 않는다”며 “세월이 흐르면서 갈등도 있었지만, 여느 부부와 다름없는 것일 뿐이지 특별한 일은 없었다. 더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자 떨어져 있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말미 ‘재결합 가능성’도 내비친 선우은숙은 이혼하는 부부가 모두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서로 할퀴고 다투는 게 아니라 굳이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이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실제로 두 사람은 이혼 이후에도 명절이나 두 자녀의 생일 같은 가족모임을 함께해왔고,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와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을 통해 이혼 이후의 일상을 보이는 선택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두 사람은 아직 풀지 못한 응어리, 못다 한 이야기가 있기에 어렵게 용기를 냈다. 제작진은 세심한 시선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출연자의 단면을 부각해 자극적인 설정을 강조하는 몇몇 관찰 예능처럼 비화될 수도 있다는 일부 우려를 딛고 ‘우리 이혼했어요’는 27년 동안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각자 13년을 보낸 이혼 부부의 속내를 차근차근 꺼내도록 유도한다.
적극적인 쪽은 선우은숙이다. 2박 3일 동안 둘이서 지내기로 한 경기도 청평의 한 펜션으로 향하는 길, 그는 “나를 여자로 볼까 궁금하다”라는 말을 통해 긴장되면서도 내심 설레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3일의 짧은 동행은 이혼한 부부의 40년 세월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선우은숙이 40여 년간 쌓인 응어리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질문하는 쪽이라면, 이영하는 묵묵히 듣는 쪽이다. 사진=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방송 화면 캡처
#묵묵히 듣는 전 남편, “더 늦기 전에 대화하고 싶었다”
선우은숙은 한창 바쁜 촬영으로 1박 2일 동안 떠났던 부산 신혼여행에 이영하의 친구들과 지인이 동행했을 때 느낀 서운함,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신혼생활의 고단함, 첫 아이를 임신해 배가 부른 상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남편 촬영장을 찾아간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져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없이 울었다는 사연을 담담하게 꺼냈다.
두 아이를 낳고 기르고 연기활동까지 병행하면서 느낀 서운함을 풀어냈지만, 자신의 상처로 이영하를 공격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저 선우은숙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고, 미처 그런 마음을 세심하게 어루만지지 못했던 이영하도 끝내 “미안하다”고 답했다.
‘우리 이혼했어요’ 출연은 이영하에게 특히 어려운 결정이었다. 나름의 싱글라이프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는 더 늦기 전 헤어진 아내와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는 뜻을 방송을 통해 설명했다. 선우은숙이 40여 년간 쌓인 응어리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질문하는 쪽이라면, 이영하는 묵묵히 듣는 쪽이다.
이런 과정에서 선우은숙은 신혼 초 자신에게 ‘얼마나 살지 두고 보자’는 악담을 퍼부은 한 여배우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털어놨는데도, 되레 이영하는 그 여배우의 편을 들었다는 서운함을 뒤늦게 풀어내기도 했다. 아내를 괴롭히는 걸 알면서도 함께 골프를 치러 갔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는 듯, 선우은숙은 이영하에게 반복해 그 이유를 추궁하기도 했다. 이에 이영하는 청평까지 찾아온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나라고 왜 할 말이 없겠느냐”는 짧은 말로 심정을 대신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비슷하지만 표현 방식이 다르고 그 차이를 결국 극복하지 못해 헤어진 부부의 현실이 안방극장 시청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신동엽과 함께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김원희는 두 사람의 모습에 자주 눈물을 흘렸고, 이혼한 경험이 있는 김새롬 역시 깊은 공감을 표하면서 녹화 내내 몇 번이고 눈물을 훔쳤다.
잉꼬부부로 불리면서 사랑을 듬뿍 받던 연예인 부부들이 이혼 과정에서 ‘막장’이나 다름없는 치부를 드러내면서 공격하는 장면을 자주 봐 왔던 대중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울었다’는 시청자 반응이 쏟아지자, 제작진은 방송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눈물 챌린지’까지 시도하고 있다.
3주 연속 시청률 9% 유지는 물론이고 방송과 동시에 공개되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서도 ‘한국 인기 콘텐츠 톱10’에 진입해 줄곧 5~6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TV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중장년층은 물론 넷플릭스 주요 이용 층인 2030세대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증거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