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의 맷 행콕 보건장관은 백신 접종이 시작된 날 이와 같이 소감을 밝혔다. 지난 12월 2일 화이자 백신의 긴급 사용을 승인한 영국은 이로부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 8일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접종을 시작했다. 영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0일 기준 176만 명을 넘어선 상태며, 사망자는 6만 2000명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겨울이 되면서 또 다시 코로나19가 대유행할 조짐을 보이자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영국 정부는 서둘러 백신 접종을 시작했으며, 국민들에게는 “정부를 믿고 백신을 접종해 달라”고 권고하고 있다.
80세 이상 고령층 및 현장 의료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시작된 접종은 순차적으로 영국인들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공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가장 큰 두려움은 부작용이다. 백신이 너무 빠른 시간 안에 개발된 만큼 과연 안전한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12월 8일 영국 최초로 화이자 백신을 접종 받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마거릿 키넌은 “90세인 내가 맞았다는 건 여러분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사진=EPA/연합뉴스
지난 8일 가족과 의료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영국 최초로 백신을 접종 받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마거릿 키넌(90)은 “내가 코로나 백신을 접종받는 첫 번째 사람이 돼서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또한 키넌은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는데 이제 새해에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키넌이 영국인들, 더 나아가 전세계 사람들에게 전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90세인 내가 맞았다는 건 여러분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가 하면 런던에서 린 휠러(81)라는 노인이 백신 접종을 받는 것을 지켜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휠러가 백신을 접종받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겁에 질린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라”라며 백신 접종을 독려했다.
접종을 받은 고령층 가운데는 셰익스피어의 직계 후손으로 알려진 인물도 있었다. 코벤트리 출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81)는 언론이 지켜보는 앞에서 느긋한 표정으로 백신 주사를 맞았으며, 아프냐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부작용이 있을까봐 조금 걱정도 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믿고 있다. 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발전적인 미래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기쁘다”라고 밝혔다.
영국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된 12월 8일을 가리켜 행콕 보건장관은 ‘승리의 날(V-데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에 대해 영국 언론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끝낼 수 있게 됐다는 일종의 승전보였다. 행콕 장관은 크리스마스 전까지 취약층 및 고위험군에 속하는 수백만 명이 1차 접종을 받게 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2차 접종은 1월경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신 효과는 2차 접종을 실시하고 약 7일 후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81세 노인 린 휠러의 백신 접종을 격려하며 박수를 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겁에 질린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라”라며 백신 접종을 독려했다. 사진=AP/연합뉴스
현재 영국은 화이자 백신 4000만 도즈를 확보한 상태며, 이는 전체 인구 약 6600만 명 가운데 3분의 1 정도인 2000만여 명이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이 밖에도 모더나 백신 700만 도즈를 비롯해 옥스퍼드대학과 공동 개발 중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억 도즈 또한 확보한 상태다. 이들 제품에 대해서도 영국 정부는 몇 주일 혹은 몇 달 안에 긴급 승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차 접종 대상은 1) 80세 이상 고령층 2) 현장 의료진 3) 요양원 거주 노인 및 근무자로 제한했다. 모든 영국인들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평등하게 접종을 받게 될 예정이며, 여기에는 어떤 특권이나 예외는 없다. 가령 고령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94)과 남편 필립 공(99) 또한 일반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순서를 기다려서 백신을 맞아야 한다. 존슨 총리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돈이 많은 회사라고 해서 백신을 선취매할 수도 없을 뿐더러 직원들에게 백신을 맞도록 강요할 수도 없다. 혹시 고용주들이 직원들에게 백신을 맞도록 강요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다수의 변호사들은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 현재 영국에서는 개인이 동의할 경우에만 백신을 접종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 증명서’ 발급에 대한 논의도 뜨거운 상태다. 요컨대 백신을 접종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면역력 증명서’다. 이 증명서를 소지하고 있을 경우에만 술집이나 영화관, 축구 경기장 등 다중시설에 입장할 수 있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 그리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위해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라고 주장한다. 이 증명서만 있으면 누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있는지, 안전한지 쉽게 알 수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 이런 주장은 그다지 많은 공감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마이클 고브 국무조정실장은 ‘백신 접종 증명서’ 도입 가능성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다만 영국 규제당국은 백신을 맞았다고 하더라도 최소 1년 동안은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백신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를 완벽하게 차단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82세의 버니스 와이너가 8일 런던의 병원에서 백신 접종을 마친 뒤 백신 접종 기록 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한편으로는 접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또한 많은 게 사실이다. 문제는 안전성, 즉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부작용 때문이다. 실제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영국인의 35%, 그리고 미국인의 39%가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응답하는 등 접종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한 상황이다.
실제 화이자 백신의 경우, 미국 임상에 참가했던 2만 1720명 가운데 네 명에게서 비록 일시적이긴 했지만 안면마비 증상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있었다. 반면 위약을 투여한 2만 1728명에게서는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보고서를 통해 “백신을 맞은 그룹에서 발생한 네 건의 부작용은 예상보다 높은 빈도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으며, 화이자 측은 임상 3상에서는 백신과 관련된 심각한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3상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사람은 1만 9000명 가운데 137명꼴로 매우 적은 수치였다.
현재까지 영국에서 보고된 부작용 사례는 두 건 있었다. 백신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이들은 국민보건서비스(NHS)에 근무하는 직원들로, 이들에게서 나타난 알레르기 반응은 유사초과민반응(아나필락토이즈)이었다. 이는 아나필락시스(과민증) 증상보다는 가벼운 형태로, 주로 피부 발진, 호흡곤란, 얼굴과 혀의 부기, 혈압 저하를 동반한다.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접종이 시작된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 영국 당국은 약물, 음식, 백신 등에 알레르기 이력이 있는 사람은 접종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사진=AP/연합뉴스
이에 대해 NHS와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은 과거 약물, 음식, 백신 등에 알레르기 이력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백신 접종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 부작용이 심각한 정도는 아니며, 이 알레르기 반응은 새로운 백신을 접종 받았을 때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화이자 백신을 접종 받았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알레르기 반응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10명 가운데 1명 이상)으로는 주사부위 통증, 피로감, 근육통, 오한, 관절통, 열감, 두통 등이 있고, 이보다 더 드물게 나타나는 증상(10명 가운데 1명 이하)으로는 주사부위 부기, 주사부위 홍조, 구역질 등이 있다. 또한 아주 드물게는(100명 가운데 1명) 림프절이 붓거나 온몸이 아픈 경우도 있다.
전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을 시작한 만큼 현재 전세계의 눈은 영국에 쏠려 있다. 한편에서는 너무 성급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영국 측은 “충분히 검토하고 준비했다”고 말하면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과연 행콕 장관의 말처럼 전세계 77억 인구는 이제 긴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적어도 백신 접종을 통해 한줄기 희망을 본 사람들은 “이제 밖으로 나갈 때가 왔다”며 반기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