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낙동강변 살인사건 결심공판에서 재심청구인들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지난 1월 6일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재심 개시 결정 당시 모습. 사진=문상현 기자
재심청구인 ‘낙동강변 2인조’에 대한 과거 유죄 확정판결의 결정적 계기는 △1989년 현직 경찰관 한 씨 특수강도 사건 △1990년 낙동강변 부녀자 강간 살인사건 △1991년 공무원 자격사칭 사건 △1991년 재심청구인 최인철 씨의 도로교통법 위반 등 총 네 가지다.
과거 수사기록과 공판기록 등을 종합해보면, 당시 경찰은 무면허 운전을 하며 경찰관을 사칭해 금품을 갈취한 2인조를 1991년 11월 검거했다.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카데이트’를 즐기던 남녀를 상대로 상습적인 강도 범행을 저질러 왔다는 자백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발견된 게 1989년 현직 경찰관 한 씨를 상대로 한 특수강도 사건과 1990년 낙동강변 살인사건이다. 이후 낙동강변 살인사건이 2인조의 핵심 혐의가 됐고, 범행 장소와 시간, 수법 등이 비슷했던 현직 경찰관 강도 사건이 이들의 살인 혐의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가장 무거운 사건인 1989년 현직 경찰관 특수강도 사건과 낙동강변 살인사건에 대한 의견을 먼저 밝혔다. 과거사 진상조사단 조사 결과, 재심 개시를 위한 심문 기일, 재심 공판기일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들을 근거로, 두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인들의 자백 진술이 부산 사하경찰서 경찰관들의 고문에 의한 것이며 당시 객관적 상황과 맞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검찰은 “경찰관 한 씨는 피해 사실에 대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이나 증언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당히 모순된 진술과 증언을 했다”며 “한 씨에 대한 특수강도 범행은 실제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관련기사 [낙동강변 살인사건-24] “X팔려서 신고 안해” 당당한 ‘조작 의혹’ 경찰관).
낙동강변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재심 청구인들의 과거 자백 진술이 경찰관들의 고문에 의한 것이며, 법의학적 관점에서 당시 객관적 상황에도 맞지 않는다”며 “과거 유죄 증거로 인정된 국과수 혈액형 감정결과도 ‘다양한 혈액형으로 감정된다’는 취지에 불과해 유죄 증거로 삼기는 부족하고, 경찰관이 작성한 현장검증조서는 허위로 작성된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두 사건에 대해 검찰은 “경찰 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와 현장검증조서 등 증거에 오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수사의 최종 책임자로서 면밀히 살피지 못해 결국 사건 실체 규명에 실패함으로써 피고인들이 각 약 20년 이상의 오랜 기간 억울한 수감생활을 하게 한 부분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본 재심 공판에서 피고인들이 위 죄명에 대한 진범이 아니라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실이 확인이 된 이상 피고인들에 대해 각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말했다.
1992년 12월 17일, 낙동강변 살인사건 항소심 결심공판 조서. 최후변론 등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당시 검찰은 증거가 충분해 피고인들의 항소는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며 사형을 구형했다. 당시 인권변호사로 낙동강변 2인조의 항소심을 대리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피고인들을 위한 유리한 변론’을 했다고 적혀있다. 28년이 지난 2020년 12월 10일 검찰은 낙동강변 2인조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사진=문상현 기자
공무원자격사칭과 도로교통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서는 장동익, 최인철 씨를 구분해 의견을 밝혔다. 검찰은 “장동익의 공무원자격사칭 등 혐의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부인하고, 최인철도 장동익의 가담 사실을 부인하며, 사칭 상대방(피해자)도 당시 장동익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나머지 사칭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특정되지 않는 등 범죄 혐의를 증명할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했다.
최인철 씨에 대해선 공무원자격사칭 범행을 했다는 날짜, 또는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했다. 다만 1991년 11월 6일 발생한, 경찰이 2인조를 검거한 결정적 계기였던 공무원자격사칭, 공갈, 무면허 운전 혐의는 유죄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재심 과정에서 최인철 씨는 당시 환경보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같은 장소에서 운전연습을 하던 피해자들이 자신을 경찰관으로 오인해 3만 원을 건넸는데 이를 얼떨결에 받았고, 당시 면허 없이 운전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시인하고 보강 증거가 있으나, 약 20년의 수감 생활을 한 점을 고려하여 적절한 형의 선고 유예 등 법원에서 현명한 판결을 선고해달라”고 말했다. 선고유예란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가 이 기간이 지나면 처벌하지 않는 판결로, 법원이 피고인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종의 선처다.
구형을 마친 검찰은 “마지막으로 검찰의 대표자로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재심청구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최종변론을 통해 장동익, 최인철 씨와 이들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관련기사 [낙동강변 살인사건-28] 최종변론, 가족을 향한 위로). 그는 “국가 폭력으로 두 가족이 무너졌고, 저마다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왔다”며 “이들이 다시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예원 변호사는 “결심공판이 열린 12월 10일이 세계인권선언 제정 기념일”이라며 “세계인권선언 8조에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돼 있다. 특히 이 사건 피고인 장동익은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 이 사건이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피고인에게 얼마나 가혹한 사법절차가 작동됐는지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부디 이 사건 피고인들에게 무죄 선고를 해서 장애인들의 올바른 사법 접근법에 대한 중요한 초석을 세워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심청구인 최인철 씨는 최후 진술에서 “49번, 2203번, 80번, 1117번, 2267번, 800번,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대신 21년간 교도소를 옮겨 다니며 나의 왼쪽 가슴에 붙여졌던 번호들이다. 이 번호들과 가혹행위로 겪은 고통은 영원히 가슴에 남을 것”이라면서도 “과거 경험으로 수사기관, 사법부에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으나 재심 개시 결정 심리와 본안 재판을 하면서 많이 달라진 법정의 모습을 목격했다. 진정한 인간을 위한 판결, 정의가 살아있는 판결을 해주시길 간청 드린다”고 말했다.
장동익 씨는 “범인이 아니라고 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고문과 구타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살기 위해, 가족들 생각에 불러주는 대로 썼다. 그렇게 살인자가 됐다”며 “21년 동안 증오하고 미워하며 살다 보니 스스로가 너무 힘들었다. 과거 경찰관들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이들을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재판은 3월부터 이날까지 모두 8차례 열렸다. 검찰이 신중한 태도를 보였으나 통상 형사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이 이뤄지는 것과 달리, 이번 재판에선 장동익, 최인철 씨의 무죄를 입증하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양측이 사실상 협업을 했다. 선고 공판은 2021년 1월 1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