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서초구 삼성생명 건물 전경. 사진=이종현 기자
#‘준법감시위원회’에 쏠리는 이목
지난 12월 7일 시민단체 경제민주주의21은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삼성생명 관련한 공개 질의서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에 보냈다고 밝혔다. △관련 위법행위의 인지·보고 여부 △관련 위법행위에 대한 사후 시정조치 또는 재발 방지를 위한 예방책 토의·권고 여부 △관련 위법행위를 안건으로 상정하기 위해서 검토했는지 여부 등을 질의했다.
준법감시위는 삼성그룹의 7개 계열사가 협약을 맺고 정경유착 재발 방지와 윤리경영 감시를 위해 올해 2월 출범시킨 독립 기구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그룹 차원의 준법 경영 실현 방안을 제시하라는 요구에 마련됐다.
경제민주주의21은 “지난해 금감원이 삼성생명에 대한 종합검사에 착수했을 때부터 최근에 중징계 결정까지 준법감시위는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며 “보암모(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가 준법감시위를 여러 차례 접촉해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음에도 이들을 외면하고 이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혹시 준법감시위가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 면죄부를 받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앞서 12월 3일 금감원은 제30차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삼성생명에 대해 기관경고 조치하고, 과징금 및 과태료 부과를 금융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삼성생명은 암 환자에게 요양병원 입원비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 ‘보험금 부당 과소 지급’(기초서류 기재사항 준수 의무 위반)으로 제재를 받게 됐다. 이 밖에 대주주 거래제한 위반 건도 있다.
기관경고는 금감원장 전결사항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제재심 결과를 결재하게 되면 최종 확정돼 법적 효력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삼성생명뿐만 아니라 계열사인 삼성카드까지 1년간 신사업 인허가가 제한된다(관련기사 과제 산적한 삼성생명의 고민 ‘자칫 삼성카드 앞길까지…’).
보험금 미지급의 핵심 쟁점은 요양병원 입원이 ‘직접적인 암 치료 목적’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삼성생명은 암의 직접적인 치료가 아닌 요양병원 입원에 대해선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금감원은 최소한 말기 암, 잔존 암, 암 전이 등을 치료하기 위한 입원비마저 거부한 것은 약관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특히 삼성생명이 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면서 의사의 의학적 소견 등 객관적 증빙자료를 근거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약관에도 없는 ‘암입원보험금 화해 가이드라인’를 기준으로 삼고 지급을 거절한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 5월 6일 이재용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금감원이 나서도 풀지 못한 실타래
삼성생명은 중징계에도 암 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방침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나서도 암 보험금 분쟁을 끝내지 못하게 된 셈이다. 2018년 금감원은 암 환자와 보험사의 갈등이 심해지자 중재에 나섰다. 또 약관해석에 따라 요양병원에 입원한 보험금 전액을 보험사가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지난해 2월 금감원은 폐지했던 종합검사를 4년 만에 재개하며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금감원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국회 국정감사에서 암 보험 문제에 대한 사과와 함께 해결 의지를 피력해왔다.
그런데도 삼성생명은 금감원의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삼성생명이 금감원 권고에 따라 암 입원비를 전부 지급한 비율은 2018년 27.2%, 2019년 62.8%, 올해 3월 64.4%에 불과했다. 반면 다른 보험사들은 2018년 75.8%, 2019년 95.6%, 올해 3월 100%로 금감원의 권고를 충실히 따랐다.
결국 암 환자들은 소송을 통해 보험금을 돌려받아야 할 처지다. 금감원 관계자는 “의사 소견 등 객관적인 증빙자료 없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것이 이번 제재심의 근거”라며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환자들은 소송을 제기한다면 승소해서 보험금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 환자와 삼성생명 간 보험금 분쟁은 앞으로도 탈출구를 쉽게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보암모 분쟁의 시작은 2017년 11월 암 환자 1명이 삼성생명에 보험금청구소송을 제기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암모는 2018년 2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감원 앞에서 집회 시위를 열고 삼성생명을 규탄하며 암 보험금 지급을 촉구했다. 지난해 9월부터 현재는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생명 본사 앞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10명의 암 환자가 삼성생명 본사 2층 고객센터를 점거해 약 1년 동안 농성을 진행 중이다.
삼성생명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집회시위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으로부터 인용 결정을 받아냈다. 보암모가 불법시위를 1회 진행할 때마다 어린이집 원장들 각 50만 원, 삼성생명·삼성화재 각 10만 원 등 총 140만 원의 간접강제금을 지급해야 한다. 지난 9월에는 보암모 회원 10명에게 총 6억 4200만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공시송달 방식으로 청구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징계가 확정되기까지 금감원장 전결부터 금융위 의결까지 남은 상황”이라며 “향후 징계가 확정되면 입장을 밝힐 예정이고 현재로선 원론적인 대답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암모 관련 사항이 이번 제재심의 중점 사안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