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의 오래된 초가에서 3일을 묵었다. 몸은 좀 불편해도 마음만은 도시보다 한결 편안하다. 사진=이송이 기자
#초가 아래,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
600년의 역사를 기와에 이고 있는 하회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마을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 속에 배어있는 제사 등의 유교문화와 씨족들이 모여 사는 주민들의 생활상까지가 모두 세계유산이다. 세계유산은 세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학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하회마을은 모두 사유재산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 모두의 문화적 산물이다. 내 집이 꼭 내 집만은 아니고 마을도 꼭 주민들만의 마을이 아닌, 우리 모두의 집과 마을이 된 셈이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가문의 씨족사회다. 조선 중기 명망 높은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서애 류성룡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산다. 여러 전란을 겪으면서도 흩어지지 않고 여전히 모여 사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새삼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파트 가격 따라 부유하며 사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과 사뭇 대비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 온갖 분란이 없을 수 없겠지만 잠깐 들른 외지인의 눈에는 머리에 기와와 초가를 얹고 두런두런 사는 하회마을의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하회는 ‘마을’이라는 공동체적 삶속에서 흘러간다. 사진=이송이 기자
길을 지나다 만나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감나무집에 머물고 있다 하니 누구의 몇 대손이 사는 어떤 자손의 집인지 단번에 알아차린다. 하회는 그렇게 ‘마을’이라는 공동체적 삶속에서 흘러간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가깝거나 먼 친척이다. 어느 집 농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어는 집 초가에 이엉(볏짚으로 얹은 초가지붕)은 새로 잘 갈았는지, 그 집 자손이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 알고 지낸다. 하회에서의 일상은 너와 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점 때문에 집 안에, 방 안에 혼자 들어앉아 TV 없이 밥을 먹어도 외롭다는 느낌이 덜하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도심의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아가는 감정과는 다른 심리적 편안함이 있다. 문 밖에만 나가도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도시사람들에게는 다소 성가신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시골마을이 내어주는 안정감이다. 그래서 때로는 외로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프라이버시보다 좀 성가신 활기 속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600년의 역사를 기와에 이고 있는 하회마을은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마을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 속에 배어있는 제사 등의 유교문화와 씨족들이 모여 사는 주민들의 생활상까지가 모두 세계유산이다. 기자가 실제 3일간 머문 감나무집. 사진=이송이 기자
#이엉 엮는 옛 마을에서 산책, 부용대 바라보며 좌선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휘돌아 감싸며 흐른다고 해서 하회(河回)가 됐다. 낙동강의 지류가 마을을 한 바퀴 휘도는 모습이 풍수적으로도 안정되어 보인다. 마을에 며칠 머물며 하는 일이란 산책을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일 따위다. 여행 갈 때 흔히 계획해보는 머스트두(must do), 꼭 봐야 하거나, 해봐야 하거나, 먹어야 하는 음식 같은 건 딱히 없다. 마을을 휘적휘적 돌아다니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 수다를 떨다 보면 자연스레 마을의 역사를 알게 되고 하회마을의 삶을 구석구석 엿볼 수 있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본가인 양진당과 충효당에 들르면, 역사책 몇 권은 머릿속에 넣고 있는 듯 마을의 역사와 조선의 세태까지 세세하게 설명해 주는 마을 할아버지들이 있다. 평소 역사에 딱히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옛날 얘기 듣듯 주섬주섬 마을의 태생과 마을에서 여태 이어지는 풍습들을 전해 듣는다. 할아버지에게 듣는 옛날이야기, 또 다른 레트로 감성이다.
민속촌에서나 봤을 법한 장면이 실제 생활에서 이어진다. 초가 이엉 얹기는 1년에 한번, 늦을 가을 어김없이 치러야 하는 초가마다의 행사다. 사진=이송이 기자
마을 바깥쪽 길, 강가를 걷는다. 마을을 걷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절벽이 있다. 부용대다. 하회마을에선 하루 종일 부용대가 보이고 부용대에선 하회마을이 한 눈에 훤히 들어온다. 강 너머에 선 마을의 병풍이다. 하회마을 서북쪽 강 건너에 있는 부용대는 가까이에서 눈으로 보면 더 태산 같다. 실제로는 해발 64m밖에 안 된다지만 모든 집이 1층인 야트막한 마을 너머에 있으니 그 위용이 더 대단해 보인다.
부용은 연꽃을 뜻한다. 부용대에서 바라보면 하회마을 들어선 모습이 마치 연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회마을이 없다면 의미 없는 어느 절벽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류성룡 선생은 자신의 호를 서애(西厓), 서쪽의 절벽이라고 붙였을 만큼 이 절벽을 사랑했나 보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천거하며 군사를 총괄하기도 했던 전시 재상이었다. 전란이 끝난 후엔 ‘징비록’을 남겼다.
강가에 앉아 한참 부용대를 바라보니 면벽(面壁)수행(벽을 마주보고 좌선)을 하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때로 한 가지를 보는 것이 만 가지를 볼 때보다 더 흡족할 때가 있다. 마음이 단순해지고 편안해진다. 사람들은 부용대를 바라보는 것보다는 부용대에서 하회마을을 내려다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듯하지만 서애 선생은 깎아지른 이 절벽을 바라보면서 수신(修身)하지 않았을까.
서애 선생은 깎아지른 부용대를 바라보면서 수신(修身)하지 않았을까. 사진=이송이 기자
하회마을에서의 산책이 부족하다면 마을 뒷산으로 넘어가는 병산서원 가는 길도 호젓하다. 차로 가면 10분이면 닿지만 부러 먼 길을 돌아 걸어간다. 도착지가 아닌 길속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산책로도 잘 닦여있다. 걸어가면 1시간 남짓이다. 계절마다 각각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요즘처럼 사람 없는 곳만을 찾게 될 때 제격이다.
목적이 도착지에 있지 않다고 했지만 병산서원을 둘러보는 맛은 걸어온 길보다 더 흡족하다. 병산서원 역시 2019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조선 중기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인 데다 그 곁의 경치도 절묘하다. 병산서원 앞에도 낙동강이 흐르고 절벽이 마주한다. 병산서원의 백미인 만대루에 올라앉으면 뭐라도 된 듯싶다.
한가함 속에서 풍류는 절로 살아난다. 노래가 흥얼거려지고 새소리, 물소리가 더 세밀하게 들린다. 눈도 밝아져 계절의 색이 더 선명하다. 눈이 트이고 귀가 열린다. 동행이 흥얼거리는 작은 리듬에도 몸을 들썩이게 된다. 한량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지만 아무것도 할 일 없는 시골마을에서의 3일 동안 한량의 기본기를 배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