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외야수 나성범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일정이 공개됐다. 사진=NC 다이노스 제공
김하성은 포스팅에 나서기 전부터 MLB 관계자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팀들이 김하성 영입을 위해 포스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김하성보다 더 오랫동안 미국 진출을 준비한 나성범은 나이와 부상 이력 등으로 온도차가 존재하는 것 같지만 나성범 에이전트사인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 나성범은 2020시즌 KBO리그에서 타율 0.324, 34홈런 112타점을 올리며 팀의 정규리그 및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에 앞장섰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나성범을 담당하는 미국 현지 에이전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성범의 포스팅 진행 과정을 살펴본다.
나성범은 부상 극복 과정과 관련해 NC와 BSTI 재활 트레이너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나성범은 2019년 5월 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슬라이딩 도중 무릎이 꺾이며 오른 무릎 십자인대 및 연골판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프로 데뷔 후 가장 큰 위기를 겪었지만 좌절 대신 수술과 재활로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재활 과정은 처절할 정도의 어려움이 뒤따랐다. 초기 재활은 NC 트레이닝 파트에서, 이후의 재활은 에이전트사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운영하는 보라스 스포츠 트레이닝 인스티튜트(BSTI)의 집중 관리를 받았다. NC 트레이닝 파트와 함께 무릎 관절 주변부 근육의 근력 회복을 위한 근력 강화 운동과 무릎 안정화를 위한 균형 감각 운동에 집중했던 나성범은 2019년 9월 중순 미국으로 출국해 BSTI에서 4명의 트레이너들과 함께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나성범은 이전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BSTI에서는 내가 미국 도착하기 전부터 NC 트레이닝 파트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이메일로 내 몸 상태, 진행된 재활 프로그램 내용을 전달 받아 나의 훈련 스케줄을 미리 준비해놓고 기다렸다. 나로서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한국에서 해온 프로그램을 BSTI에서도 이어갔고, 이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BSTI에서는 그곳에서 진행한 자료들을 모두 NC 트레이닝 파트에 넘겨준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다. 지금 내가 치고 달릴 수 있는 배경에는 NC와 BSTI에서 재활을 도운 트레이너 분들의 노력 때문이다.”
나성범이 BSTI에서 훈련할 당시에는 MLB 시즌이 끝나기 전이라 트레이너 4명의 집중 관리를 받을 수 있었다. 초반에는 실내 훈련만 하다가 어느 정도 러닝이 가능해질 때 트랙을 뛰며 몸을 만들었고 렌트한 승용차를 이용해 숙소와 BSTI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갔다. 낯선 미국에서 혼자 재활 훈련을 이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무조건 2020시즌만 바라보고 훈련했다. 준비 잘해서 화려하게 복귀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동욱 감독, 코칭스태프의 배려 하에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로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었던 나성범은 2020시즌 개막전에 복귀해 시즌 초반에는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하면서 부상을 의식해 도루도 자제했다. 올 시즌 도루가 3개, 지명타자로 77경기(376타석), 우익수로 51경기(206타석)에 선발 출전하면서 타율 0.324 34홈런 112타점을 기록했다.
#나성범을 위해 스캇 보라스가 나선다
미국 현지 매체들은 나성범의 포스팅 신청에 일제히 관심을 나타내며 부상 이력과 그 후유증을 우려했다. 하지만 나성범의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라는 사실에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보다 나성범의 현실은 에이전트의 파워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나성범을 담당하는 에이전트는 포스팅이 공시된 순간 MLB 30개 팀에 나성범 관련 자료 및 리뷰를 모두 보냈다고 설명했다.
“류현진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 문을 노크할 때만 해도 메디컬 리포트가 간단했지만 지난 시즌부터 MLB 사무국에서 굉장히 세부적인 자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준비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나성범이 올 시즌 몸 상태에 이상이 없다는 걸 야구로 보여줬지만 MLB에서 보는 시각은 또 달랐다. 무릎 상태를 가장 궁금해 했기 때문에 요구하는 대로 모든 메디컬 자료를 넘겨줬고, 검토 끝에 포스팅이 공시된 것이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에이전트는 나성범의 포스팅이 공식화되는 순간 스캇 보라스를 비롯해 임직원이 미팅을 갖고 미리 세워둔 전략들을 체크했으며 관심을 나타내는 구단과는 스캇 보라스가 직접 통화하는 등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성범이 건강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나성범이 부상 전까지만 해도 5툴 플레이어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에 선수가 잘 던지고, 잘 때리고, 잘 달릴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줘야 한다. 그게 메디컬 자료일 수도 있을 것이고, 올 시즌 나성범이 130경기(한국시리즈 제외)에 나서며 건재함을 증명한 기록과 영상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에이전트 측에서는 나성범의 포스팅 비용을 어떻게 예상하고 있을까.
“계약 기간 4년이 최대치일 것이고 3년이면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올시즌 MLB 팀들이 어떻게 돈을 사용할지 정확한 자료가 나오지 않아 계약 규모를 예상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강정호가 포스팅으로 피츠버그로 향했던 당시의 계약보다는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KBO리그에서 뛴 선수가 미국에 진출할 정도면 리그 톱 플레이어다. 그에 맞는 몸값이 책정돼야 그 다음에 미국으로 올 선수한테 유리하다. 우리는 그 부분도 고려할 것이다.”
강정호는 2015년 1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4년 1100만 달러(약 120억 원)에 1년 옵션 500만 달러(약 54억 5851만 원)의 계약을 맺었다. 포스팅 비용은 500만 2015달러(약 54억 6071만 원)였다.
나성범 측에서는 만약 포스팅이 계획한 대로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올 시즌 포스팅 신청을 접고 내년에 FA(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재도전하겠다는 입장이다. 즉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으로 MLB 계약을 맺지 않겠다는 것. 이 부분은 선수와도 이미 이야기가 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류현진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에 도전할 때 포스팅 공시 후 LA에서 한 달을 기다린 끝에 다저스와의 계약을 마무리 지은 바 있다. 그렇다면 나성범도 미국으로 출국하게 될까. 소속 에이전트사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애매모호한 반응을 나타냈다.
#“성범이밖에 없다” 선배 추신수, 류현진의 응원
KBO리그가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된 올 시즌 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 선수들로부터 ‘어느 팀이 가장 잘하는 팀이냐’ ‘어떤 선수가 잘하느냐’ 그리고 ‘어떤 선수가 미국에서 야구할 수 있느냐’하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추신수는 관련 대답을 할 때마다 나성범이란 이름을 거론했다고 말한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선수는 (나)성범이밖에 없다. MLB 진출을 위해 노력 중이고, 현재 MLB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는 생각에 선수들한테 성범이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물론 야수에서 이정후나 강백호도 있지만 직접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추신수는 지난 시즌 큰 부상을 당하고 재기한 나성범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흔히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비유하는데 어떤 선수도 항상 정상의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마이크 트라웃도 데뷔 1, 2년은 어렵게 보냈듯이 대부분의 선수들은 시련과 희망을 반복하며 더 멀리 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성범이가 미국에서 재활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나도 2016년 한 시즌에 4차례의 부상을 당했다고. 그걸 이겨냈기 때문에 지금까지 야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보라스 코퍼레이션 소속의 나성범은 같은 소속사 선수인 선배 류현진과도 남다른 친분을 나누고 있다. 류현진은 최근 김하성뿐만 아니라 나성범과도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미국 진출 관련된 조언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류현진이 속해 있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김하성뿐만 아니라 나성범한테도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터라 류현진과 김하성, 나성범의 잇단 만남이 시선을 모을 수도 있는데 류현진 측에서는 단순한 식사 자리였을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나성범은 며칠 전 단정하게 헤어스타일을 정리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MLB 도전을 앞두고 심기일전하겠다는 각오다. 과연 올해 안에 나성범의 새로운 팀은 정해질 수 있을까.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