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거장 김기덕 감독이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숨졌다. 향년 60세.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사실은 11일 오후 라트비아의 언론매체 ‘델피’를 통해 알려졌다. 델피에 따르면 김기덕 감독은 지난 11월 20일부터 라트비아에 머물러 왔으며 이달 초순 경 코로나19 증세를 보였다. 이후 병원에 입원했으나 이날 오후 끝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이 먼저 보도했다는 점과 김기덕 감독이 라트비아로 떠난 사실이 국내에 상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점 등으로 인해 당초 이 뉴스는 단순한 ‘사망설’ 해프닝으로 종결되려 했다. 그러나 이후 김기덕 감독의 측근과 가족,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영화계 인사들이 김기덕 감독의 사망을 확인했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1일 밤 자신의 SNS에 “키르기스스탄의 평론가 굴바라 톨로무쇼바로부터 카자흐스탄에서 라트비아로 이주해서 활동하던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환갑일 12월 20일을 불과 한 주 앞두고 코로나19로 타계했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김기덕 감독이) 발트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만인 오늘 사망했다고 한다”라며 “한국 영화계에 채울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기덕 감독의 가족들 역시 이날 고인의 비보를 전해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덕 감독은 국제 영화계에서 가장 인정받은 대한민국 영화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며, 특히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네치아, 베를린)에서 본상을 받은 대한민국 유일의 감독이기도 하다. 2004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은곰상을, 같은해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빈 집’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 칸 영화제에선 ‘아리랑’으로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2012년 ‘피에타’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는 1996년 ‘악어’로 데뷔해 ‘나쁜 남자’ ‘해안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 ‘피에타’ 등 충격적이면서도 강렬한 작품을 연이어 공개하며 김기덕만의 세계관을 펼쳐 나갔다. 마초적인 시선이 짙게 묻어나는 작품들이 다수 있어 ‘문제작’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기도 했으나 반대로 그의 작품 만을 좇는 열광적인 팬들을 양성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작품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김기덕의 영화 인생에 가장 큰 오점으로 남을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2017년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한 여배우로부터 폭행 및 강요 혐의로 고소된 것이다. 같은 시기 연극·영화계 ‘미투’ 폭로에서도 그는 감독의 지위를 악용해 여성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성적인 폭력을 가한 가해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관련 논란을 MBC ‘PD수첩’이 보도하자 김기덕 감독은 방송에 출연한 피해 여배우와 방송사를 상대로 무고 혐의로 고소했으나 양 측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에는 또 다시 양 측을 상대로 10억 원 상당의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하고, 지난달 항소했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이 사망함에 따라 이 사건 소송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