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사람은 성명, 나이, 직업 등 개인 정보가 공개된다. 12월 9일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까닭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양육비 지급 의무가 있는 사람이 이를 어긴 경우 국가가 명단을 공개하고, 출국 금지를 요청하거나 형사처벌을 받게 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됐다. 국가가 직접 양육비 미지급자를 처단하는 셈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배드파더스는 아름다운 퇴장을 하게 됐다. 2018년 7월 문을 연 이 사이트에는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와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도 양육비 채무자로 이름을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명단에 오른 이들이 배드파더스 운영진을 고소한 건만 22건에 이른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만큼 비난도 적지 않았다. ‘공익을 내세워 개인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냐’ ‘수수료를 과도하게 떼어간다’ 등의 음해를 하는 무리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실이 아니”라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갔다. 12월 14일 배드파더스 폐쇄 결정에 즈음해 일요신문이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양육비해결총연합회(양해연) 사무실에서 구본창 활동가와 이영 대표를 만났다.
#“기존 법, 사실상 무의미”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 사진=이종현기자
“양육비 채무자 명단은 양육비 채권자가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신청하면 양육비 채무자에게 3개월 이상 소명기회를 부여한 뒤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개된다. 2021년 6월부터 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실제 결과가 나오는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10월 전후가 될 것으로 계산해 폐쇄 시기를 정했다.”
―배드파더스를 만든 사람과 현재 활동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다들 나를 대표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자원봉사자라고 봐야 한다. 배드파더스 운영진은 총 6명으로 양육비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여성들이다. 사이트의 실질적인 운영은 이들이 한다. 다만 보복 우려와 신변의 위협으로 제대로 운영을 해오지 못하다가 내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원래 나는 학원 강사를 하다 필리핀으로 건너가 코피노 아동을 위한 단체 ‘WLK(We Love Kopino)’를 운영하고 있었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다. 기준이 무엇인가.
“모든 기준은 법적 판결문이다. 제보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판결문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미지급자에게 사전통보를 한다. ‘당신에게 이런 내용의 제보가 들어왔으니 혹시 양육비를 지급했다면 지급 내역을 확인시켜달라’고 한다. 지급 의사가 있다면 신상을 올리지 않는다. 당사자 간 협의 중이라면 사안이 완결될 때까지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기다린다. 즉, 사이트에 올라온 이들은 양육비 문제에 대한 해결 의사가 없다고 판단된 사람들이다. 다만 제도권 안에 들어온 적이 없는 미혼모와 미혼부는 우리가 도와줄 방법이 없다. 그 부분은 안타깝다.”
―지금까지 도움을 요청한 양육자는 몇 명이나 되나.
“사전 통보만으로 해결된 것이 약 450건. 신상 공개를 한 뒤 해결된 것이 189건으로 총 640건 정도의 양육비 문제를 해결했다. 상담 요청을 했지만 판결문이 없어서 하지 못한 경우와 판결문이 있는데도 명예훼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상담만 하고 올리지 못한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처음 신상을 공개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
“사이트를 열자마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2018년 7월에 처음 양육비 채무자들의 신상을 공개했다. 아무런 광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리는 데까지 6~8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9월 정도 되니 제보자들의 전화가 정신없이 왔다. 양육비 피해 아동이 100만이라는 숫자가 실감이 났다. ‘사진 당장 내리지 않으면 고소하겠다’ ‘칼 잘 쓰는 동생들을 보내겠다’ 등 양육비 채무자의 항의 전화도 많이 왔다.”
―직접 돈을 받으러 다니기도 하나.
“원래 필리핀에서 법무법인 대광의 박관우 변호사와 함께 코피노를 위한 단체 ‘WLK(We Love Kopino)’를 운영했다. 이 단체는 지금도 운영 중이다. 코피노 아빠를 상대로 양육비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빈민가에 살고 있는 코피노 아동의 식비, 치료비 등을 지원하는 단체다. 그때는 직접 돈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필리핀 현지에 거주하는 코피노 아빠 가운데에는 카지노 등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많았다. 양육비를 달라고 하면 건달들을 데리고 와 협박을 했다. 덕분에 지금 윗니는 틀니를 끼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에 있는 코피노 아빠들과 가끔 신체적 충돌이 일어나곤 한다.”
조롱이나 모욕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양해연의 경우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집회를 하러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한 채무자가 집회 현장에 지인들을 동원해 ‘양육비 주지 말고 그 돈으로 나이트 가자’고 소리 지르며 조롱을 했다고 한다. 채무자가 일하는 가게 주변 상인들은 양육자를 지칭해 ‘소박맞은 X’이라고 모욕을 한 적도 있었다.
―배드파더스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나.
“배드파더스는 양해연 회원들의 후원을 받긴 하지만 운영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동안 코피노 아빠 가운데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이렇게 받은 양육비 가운데 최대 10%를 수수료로 받아 운영비로 썼다. 다만 양육비가 너무 적을 경우에는 받지 않았으므로 평균 5% 정도를 수수료를 받았다고 보면 된다. 일부 양육비 채무자가 비난성 댓글을 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어쩔 도리가 없다.”
―기존 법에도 감치명령이라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나.
“감치의 실제 집행률은 4%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감치명령은 민사적 제재다. 경찰에게 체포 의무가 없다. 제도 자체가 무의미한 거다. 모든 걸 했는데도 안 되니 절박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오는 양육자들이 많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이 입수한 양육비이행관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의 감치성공률은 △2015년 0%(0건) △2016년 31%(7건) △2017년 23%(10건) △2018년 30%(13건) △2019년 5%(2건)였다. 개정안 통과 이전까지 감치는 우리나라에서 양육비 채무자에게 내리는 가장 무거운 제재였다.
―앞으로의 계획은.
“필리핀 빈민가로 돌아가 다시 코피노를 도울 예정이다. WLK도 계속 운영 중이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사진=이종현기자
―양육비 이행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양해연에서 개정안 통과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법안이 통과되려면 발의가 우선 되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양육비가 왜 아동의 생존권이냐’에 대한 물음을 받았다. 법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배드파더스가 참 고맙다. 배드파더스가 사회적 공감을 환기하면 양해연이 대외적인 활동을 통해 법안 발의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국회와 정부부처를 찾아가 책임 있는 부모의 태도와 양육비와 생존권에 대한 설명을 참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20대 국회 때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운전면허 정지가, 21대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번 개정안이 궁극적으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만으로도 양육비 일부를 지급하겠다는 채무자들이 많았다. 국가가 직접 ‘양육비 미지급은 불법이다’라고 정해주니 즉각적인 효과가 나온 셈이다. 다만 아직까지 보완되어야 할 점은 있다. 양육비 지급에 대한 재판은 친자확인부터 주소지, 재산 확인까지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서류를 못 받았다고 하거나 주소 자체를 말소시키는 사람도 있어 재판까지 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양육자가 직접 실제 주소를 찾아내 입증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시송달로도 재판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수사기관에서 양육비 지급 회피자의 주소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많은 부분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배드파더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익을 위한 신상공개, 양육자들의 구원투수로 대변되는 정의로운 이미지 뒤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송이 즐비하다. 핵심은 배더파더스가 개인의 신상을 공개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지난 1월 “양육비 채무 불이행은 결국 자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로, 단순한 금전채무의 불이행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양육비는 공적 관심사가 아니”라며 곧바로 항소했다. 이어지는 재판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형법 제307조 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잠정 중단된 상태다.
구 씨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걸린 소송만 22건이다. 감사하게도 많은 법무법인 변호사분들이 무료 변론을 해주고 계신다. 재판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할 말이 많았다. 그는 “검찰은 배드파더스의 활동이 공익적 관심사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다. 양해연도 1심 증인으로 나서 배드파더스가 문제 해결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증명했다. 이제 입법이라는 초기의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배드파더스는 퇴장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과 재판부가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양육비란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을 던졌다. 두 사람은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라며 “죽어도 돈이 없다고 했던 사람 몸에서 금 80돈이 나온 적이 있었다. 양육비는 기존 가정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생활비로 써야 했을 돈에 비하면 매우 적은 금액이다. 법적으로 월 185만 원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양육비를 받지 않는다. 돈이 없다는 분들은 대개 자신을 위한 돈을 다 쓰고 난 다음에 ‘아이 줄 돈은 없다’고 하는 분들이었다. 양육비는 적은 돈이지만 그 돈 없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아이가 분명히 있다. 이게 학대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