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방송 2회 만에 ‘논란작’으로 도마 위에 오른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를 두고 대중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tvN 제공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제작진은 제작보고회에서 “원작의 판권으로 기획을 할 때엔 현대 남성의 영혼이 왕후의 몸에 들어간다는 설정만 가져왔다. 나머지 스토리나 이야기 전개는 전혀 다르다”며 안심시키려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원작보다 더한 ‘역사 왜곡’이 나왔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철인왕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실제 역사와 실존인물들을 ‘퓨전 사극 코미디’라는 이유로 희화화시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철종 시기를 다루는 ‘철인왕후’는 역사 기록과 다른 철종(김정현 분)의 모습을 보고 철인왕후(신혜선 분)가 “주색으로 유명한 왕의 실체가…조선왕조실록도 한낱 지라시네”라는 대사로 방영 2화 만에 논란을 일으켰다.
단순히 드라마의 재미를 더 하기 위한 대사일 뿐이라고 덮기엔 국내외 사학계에서 조선왕조실록이 갖는 위상이나 향후 넷플릭스 등으로 드라마를 접할 해외 시청자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운다는 우려와 비판이 거셌다. 실제로 일부 해외 커뮤니티를 통해 유포된 ‘철인왕후’의 해당 회차 영어 자막에는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타블로이드’(황색언론, 지라시)라는 번역이 확인되면서 국내 대중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철인왕후’에서 김소용(신혜선 분)의 “조선왕조실록도 한낱 지라시였네”라는 대사를 두고 대중들은 “왕조차 열람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기록된 실록을 폄훼했다”고 비판했다. 사진=‘철인왕후’ 방송화면 캡처
원작이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실제 역사를 차용하려던 제작진의 욕심은 실존인물에 대한 도가 지나친 희화화와 그에 따른 후손들의 강한 반발을 낳았다. 현대 남성의 혼이 들어간 철인왕후는 물론 대왕대비 김 씨(순원왕후, 배종옥 분), 신정왕후 조 씨(대비 조 씨, 조연희 분)와 궁궐 안 대부분의 인물들이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사와 행동으로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다.
상궁을 불러 주름살을 없애기 위한 리프팅 마사지를 받는 대왕대비 김 씨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왕실 최고 어른의 얼굴을 짜부시키는 상궁은 저 사람이 처음일 것” “자국민이 나서서 혐한하는 드라마로 한국 드라마계에 족적을 남길 작품이다” “코미디로 갈 거면 조선시대 가상 왕실을 설정하지 왜 실제 역사와 실존인물을 망치나”라는 비판과 함께 집단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방송심의신청과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이 같은 시청자 민원만 15일 오후 기준으로 약 76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정왕후의 희화화된 설정을 두고서는 그 후손들이 강력 대응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신정왕후 조 씨의 가문인 풍양 조 씨 종친회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신정왕후의 인물 소개부터 ‘온갖 미신을 믿는 캐릭터’로 나와있어 어떻게 대응할 지 고려 중이었다”며 “아무리 코미디지만 실존인물에 대한 모욕적이고 저속한 표현은 심히 유감이다.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궁에게 주름 방지를 위한 리프팅 마사지를 받는 대왕대비 김 씨의 모습도 시청자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사진=‘철인왕후’ 방송 화면 캡처
‘철인왕후’에서 신정왕후의 캐릭터 설명은 ‘온갖 미신을 믿는 나몰라 여사’로 표현돼 있어 실존인물 희화화라는 비판과 더불어 ‘여혐’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여혐 논란은 극중에서 강남의 클럽 ‘옥타곤’을 떠올리게 하는 기생집 ‘옥타정’을 등장시킨 장면에서 불거진 지적이기도 하다. 옥타곤에서는 지난해 집단 성폭행 미수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이처럼 고작 2화 만에 대중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철인왕후’에 대해 드라마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최근 불거진 중국의 문화동북공정이나 해외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식 때문에 국내 대중들이 매우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서 나온 문제작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K드라마 팬들 중에서 사극 마니아가 많고, 해외 시청자들 다수가 우리나라 사극을 보며 한국 역사를 공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복 등 한국 고유의 복식이나 문화적인 부분도 사극을 통해 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다”며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 드라마에서 한복이나 한국 문화를 자국의 문화로 둔갑시키거나 한국 역사를 왜곡 또는 비하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업계 관계자들뿐 아니라 단순한 시청자들도 이런 부분에 매우 예민해 있다. 그런 점을 사려 깊게 생각하지 못한 것은 제작진의 잘못”이라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