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파리를 상대해 기적적인 6-1 대승을 만들어 8강을 이끌었던 네이마르(오른쪽)가 이제는 파리 유니폼을 입고 바르셀로나를 만난다. 사진=연합뉴스
#조별리그 2위 팀이 만든 빅매치
챔피언스리그 본선은 32개 팀이 8개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시작해 16강을 가린다. 16강은 추첨을 통해 조별리그 1위팀(시드)과 2위팀(언시드) 간 대결로 펼쳐진다. 추첨 과정에서 조별리그에서 함께 맞붙었던 팀, 같은 리그에 소속된 팀은 만나지 않는다.
조별리그에서는 큰 이변이 없는 한 대부분 전력이 강한 팀이 1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언제나 이변은 일어나기 마련. 다음 라운드 진출이 예상됐던 강팀이 탈락을 하거나 2위로 ‘턱걸이’를 하기도 한다. 이에 강한 전력을 갖췄음에도 2위에 오른 팀들이 16강부터 ‘빅매치’를 성사시켰다.
이번 16강 추첨 결과 첫 손에 꼽히는 ‘빅매치’는 바르셀로나(스페인)와 파리생제르망(프랑스)의 대결이다. 조별리그에서 유벤투스(이탈리아)와 한 조에 편성돼 ‘메시 vs 호날두’라는 라이벌전을 성사시키기도 했던 바르셀로나는 결국 유벤투스에 밀려 2위를 기록했다. 이에 16강에서 H조 1위 파리를 만났다.
양팀의 대결은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특별한 인연으로 주목받고 있다. 21세기 들어 단 1시즌을 제외하면 챔피언스리그에 ‘개근’했던 바르셀로나와 달리 파리는 2012-2013시즌에서야 본격적으로 유럽 무대에 나서기 시작했다. 길지 않은 챔피언스리그 참가 역사 속에서도 파리가 가장 많이 만난 팀이 바르셀로나다. 1990년대 첫 맞대결 2경기를 제외하고도 2010년대에만 8경기를 펼쳤다.
4승 3무 3패(바르셀로나 기준)라는 역대 전적이 말해주듯 많이 웃은 팀은 바르셀로나였다. 첫 만남을 제외하면 바르셀로나가 항상 파리를 누르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2014-2015시즌에는 조별리그에서 만나 바르셀로나가 1위, 파리가 2위를 차지해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8강에서 다시 만나 바르셀로나가 완승을 거두었다.
파리에 가장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대결은 2017년 열린 16강전이다. 당시 파리는 1차전 홈경기에서 4-0 완승을 거두며 8강 진출이 유력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2차전에서 6-1 승리로 8강에 진출하는 기적적인 뒤집기를 만들었다.
양팀은 주요 선수를 주고받은 특별한 인연도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옮긴 네이마르 이적은 현재까지도 세계 최고 이적료 기록(2억 2200만 유로)으로 남아 있다. 2017년 바르셀로나의 6-1 대승의 주역(2골 2도움)이었던 네이마르가 이제는 파리 소속으로 뛰고 있다. 이 외에도 바르셀로나는 파리 소속이던 23세의 호나우지뉴를 영입한 이후 유럽 최강팀으로 거듭난 역사도 가지고 있다.
바르셀로나 이외에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와 RB 라이프치히(독일)가 조별리그 2위로 16강에 진출한 강팀으로 꼽힌다. 이들은 각각 첼시(잉글랜드)와 리버풀(잉글랜드)을 만나 빅매치를 성사시켰다.
나겔스만 감독(오른쪽)은 앞서 호펜하임 시절 리버풀 클롭 감독(왼쪽)을 상대한 바 있다.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성사됐던 당시 맞대결은 리버풀이 2승으로 압도했다. 사진=연합뉴스
라이프치히와 리버풀의 만남도 세계 축구팬들을 설레게 한다. 양팀의 ‘체급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리버풀은 챔피언스리그 6회 우승, 잉글랜드 리그 19회 우승 등 유럽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구단이다. 반면 라이프치히는 불과 4년 전인 2016년까지 2부리그에 있었고 챔피언스리그 참가 경험은 3회에 그치는 신흥 강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대결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율리안 나겔스만(라이프치히)과 위르겐 클롭(리버풀), 두 독일 출신 지도자의 닮은꼴 행보다. 리버풀의 클롭 감독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마인츠(독일) 소속으로 2부리그에서 감독으로 데뷔할 때 그는 고작 만 33세였다. 리그 중위권이던 마인츠를 1부리그로 승격시킨 공을 인정받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지휘봉을 잡았다. 도르트문트에서는 리그 1위에 올라 ‘우승 감독’ 반열에 올랐으며 이후 리버풀에서도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나겔스만은 클롭과 유사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진행형’ 감독이다. 그 역시 이른 나이에 감독직에 올랐는데, 클롭보다 빠른 만 28세에 분데스리가 호펜하임(독일) 지휘봉을 잡았다. 강등권에서 허덕이던 팀을 맡아 안정적인 잔류를 이끌어냈고 2년차에는 팀을 4위로 끌어올리며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냈다. 지난 시즌부터는 라이프치히에 부임해 리그 3위,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뤄냈다.
두 감독은 젊은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경기장에서는 많은 활동량과 전방부터 시작하는 압박으로 우위를 점하는 축구를 구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 나겔스만은 클롭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리버풀의 역습과 공격 등은 현재 라이프치히가 만들어가려는 과정과 같다”고 말했다.
나겔스만과 클롭 모두 한국인 선수와 인연도 있다. 클롭은 마인츠 시절 차두리를 오른쪽 측면 수비 위치에 안착시키는가 하면 도르트문트에 부임한 첫 시즌, 토트넘에서 이영표를 영입해 적극 활용했다. 지동원을 도르트문트로 불러들이기도 했지만 1군 경기에 출전시키지는 않았다.
나겔스만은 한국인 수비수 김진수와 악연이 있다. 김진수는 2015-2016시즌 전반기 내내 호펜하임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지만 나겔스만 부임 이후 자신의 자리를 잃었다. 나겔스만 체제에서 14경기 중 2경기에 벤치에만 앉았을 뿐 단 1분도 경기장을 밟지 못했다. 결국 다음 시즌 전반기에도 기회를 받지 못하다 국내로 복귀했다.
챔피언스리그 16강 토너먼트는 오는 2월 중순 시작된다. 사진=UEFA 챔피언스리그 페이스북
최고 감독으로 꼽히는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의 펩 과르디올라의 도전에도 눈길이 쏠린다.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이끌어 왔고 맨시티를 잉글랜드 최강으로 올려놨지만 과르디올라에게는 명성에 비해 챔피언스리그 트로피가 부족하다. 2회 우승 경력이 있지만 모두 리오넬 메시와 함께 했던 바르셀로나 시절이다. 당대 최고로 나란히 손꼽히는 지네딘 지단, 카를로 안첼로티(각각 3회)에 비해 우승 횟수가 적다. 마지막 우승이 2011년으로 10시즌이 지났다. 바르셀로나 이후 바이에른 뮌헨(독일), 맨시티와 같은 강호를 맡았지만 챔피언스리그 문턱에서 번번이 실패를 경험했다. 맨시티에선 5시즌째 유럽 제패에 도전하고 있다.
과르디올라는 그간의 성적표에서 알 수 있듯 토너먼트에서 던지는 승부수가 약점으로 꼽혀왔다.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전력을 갖췄음에도 승부처에서 전술적 선택이 아쉬운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시즌 16강에서 라이벌 지네딘 지단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를 꺾으며 고비를 넘겨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8강에서 한수 아래로 여겨지던 올림피크 리옹(프랑스)을 상대로 이전까지 좋은 모습을 보이던 4백이 아닌 3백 전술을 사용하며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토너먼트에서는 첫 상대로 분데스리가의 묀헨글라드바흐(독일)를 만났다. 비교적 쉬운 상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묀헨글라드바흐 역시 샤흐타르(우크라이나), 인터밀란(이탈리아) 등 강호를 누르고 16강에 당당히 합류했다. 조별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2-2 무승부를 거두기도 했다. 긴장을 늦추다간 과르디올라와 맨시티가 또 다시 ‘언더도그’에 패하는 이변이 연출될 수 있다.
이 외에도 라치오(이탈리아)와 뮌헨, FC 포르투(포르투갈)와 유벤투스(이탈리아), 세비야(스페인)와 도르트문트, 아탈란타(이탈리아)와 레알 등이 8강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났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혼란스러운 시즌이 치러지는 가운데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두 궁금해 하고 있다. 16개 팀의 대결은 2021년 2월 중순 유럽 각지에서 펼쳐진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