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과 장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차남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왼쪽부터). 연합뉴스 |
그리고 이런 예는 미국의 정치 명문가인 부시 가문에도 있다. 41대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와 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 등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부시가의 차남인 젭 부시(57)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플로리다주지사를 지냈던 젭은 현재 정계를 떠나 마이애미에서 부동산 사업가로 변신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언제 그가 다시 정계로 복귀할지는 현재로선 예측할 수 없는 상태.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그가 언제든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연일 그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다음에 돌아올 때에는 모르긴 몰라도 더 큰 야망, 즉 백악관을 목표로 할 것이라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만일 그의 야망이 실현된다면 미 역사상 최초로 한 집안에서 세 번째 대통령이 탄생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과연 젭은 지난 8년 동안 실추됐던 부시 가문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미국 내 팽배한 ‘반 부시’ 정서를 뒤집을 수 있을까.
부시 가문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케네디 가문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정치 명문 집안으로 공화당에서는 부시 가문을, 그리고 민주당에서는 케네디 가문을 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로부터 존경 받고 있는 케네디 가문에 비해 부시 가문의 명예는 날로 실추되고 있다. 특히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임기를 지냈던 지난 8년 동안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명분 없는 전쟁인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자 민심은 곤두박질쳤다. 미국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더 이상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미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길 주저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아직 정치인으로서 앞길이 창창한 동생으로선 이런 형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 ‘부시’라는 이름에 대해 반감을 갖는 미국인들이 늘어나 단순히 ‘부시’ 성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적지 않은 불이익을 당하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 젭은 지난해 현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인 멜 마티네즈의 뒤를 이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출마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의 이런 뜻밖의 발표에 대해 일각에서는 자칫 출마했다가 형의 ‘악명’으로 자신이 역풍을 맞아 낙선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에 대한 젭의 애정은 각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 인터뷰에서 젭은 “나는 형이라는 사람과, 그리고 형의 정치적 스타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형을 두둔하고 나서기도 했다.
▲ 케네디 가문과 함께 정치 명문가로 이름난 부시 가문의 사람들. |
젭은 어려서부터 형과 곧잘 비교되곤 했다. 아니, 오히려 더 낫다는 평가를 받았던 게 사실이다. 부시 가문에서 동생인 젭에게 거는 기대는 형인 부시에게 거는 기대보다 더 높았다. 부시 가족들 중 부시보다 젭이 더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부시는 명문 예일대학을 거쳐 하버드 전문경영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학창 시절에는 줄곧 파티와 술에 빠져 지내는 등 늘 골칫덩어리였다. 심지어 알코올중독 증세까지 보였는가 하면,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를 정지당하기까지 했다.
이에 반해 젭은 모범적인 학창시절을 보냈다.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라틴아메리카학을 전공했던 젭은 2년 반 만에 모든 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마치면서 조기 졸업했다. 또한 고교 시절 교환학생으로 멕시코에서 생활했던 덕분에 유창한 스페인어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아버지 부시 역시 이런 둘째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종종 둘째 아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아들은 둘째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곤 했다. 이런 까닭에 2009년 초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는 “나는 젭이 정치를 다시 시작해서 언젠가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젭이 1994년 플로리다주지사 선거에 처음 출마했을 때에도 아버지 부시는 그의 당선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반면 같은 해 텍사스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장남 부시에게는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젭은 낙선했고, 부시는 당선됐다.
당시 선거 결과에 몹시 충격을 받았던 부모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젭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부모님은 형이 당선된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내가 낙선한 것을 더 슬퍼하셨다.”
비록 1994년 선거에서는 패했지만 젭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1998년 다시 한 번 주지사에 도전했고, 히스패닉계 유권자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얻으면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2002년 재선에 도전해서는 전보다 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으며, 이로써 그는 공화당 소속으로서는 처음으로 플로리다에서 연임하는 주지사가 됐다.
주지사 시절에도 그는 형과 달리 높은 지지율로 신망을 얻었다. 정통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젭은 낙태와 안락사를 반대하고, 사형제를 옹호하는 등 보수적인 면이 강한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플로리다주지사 재임 시절 21건의 사형 집행을 승인하는 한편, 사형 집행 방식을 독극물 주사로 바꾸면서 한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006년 한 사형수가 독극물이 주입된 후 34분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사망하자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비난이 빗발쳤고, 결국 그는 여론에 떠밀려 독극물 사형 방식을 전면 중단해야 했다.
플로리다주에서 3선 연임은 금지된 까닭에 지난 2007년 임기를 모두 마친 그는 현재 마이애미에서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컨설팅 회사인 ‘젭 부시 앤 어소시에츠’를 설립했으며, 현재 주지사 연봉인 13만 3000달러(약 1억 5000만 원)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또한 그밖에도 투자은행인 ‘바클레이 캐피탈’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가 하면, 몇몇 기업의 감사 및 여러 재단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뛰어난 언변가이자 달변을 자랑하는 젭은 현재 연설가로서도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강의 주제는 주로 현대의 기업가 정신에 대한 것이며, 회당 최대 6만 달러(약 7000만 원)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한 번 강연에 15만 달러(약 1억 7000만 원)를 받는 형에 훨씬 못 미치지만 사람들은 연설가로서는 동생이 형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평가하고 있다. 형이 동생보다 더 높은 강연료를 받는 이유는 단지 그가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젭에게 공화당이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일부에서는 젭을 차기 공화당 대권주자로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는 해가 갈수록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를 ‘비밀병기’로 간주하고 있는 일부 공화당 지지자들은 벌써부터 예비선거 준비에 돌입했으며, 정치 기부금을 모금하면서 서서히 워밍업을 하고 있다. 공화당 원로인 앨 카르데나스는 “젭이야말로 현재 공화당에서 가장 독보적인, 그리고 가장 두드러지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주지사, 마이크 허커비 아칸소주지사도 유력하지만 젭보다는 지지도 면에서 떨어지고, 현직에 있는 헤일리 바버 미시시피주지사나 팀 폴렌티 미네소타주지사 정도가 현재 젭의 경쟁상대로 점쳐지고 있다.
젭의 대권 도전 가능성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가장 큰 무기로 그의 든든한 지지층인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을 꼽고 있다. 대학에서 라틴아메리카 역사와 문화를 전공한 데다 스페인어에도 능통하며, 그의 아내인 콜롬바는 멕시코 출신이다.
이런 배경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란 것은 자명하다. 미국 사회에서 히스패닉계는 백인, 흑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인종 집단으로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히스패닉계는 4700만 명이며, 전체 유권자 가운데 1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공화당 내부에서는 플로리다주지사 시절부터 히스패닉계 유권자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왔던 젭이 2012년 출사표를 던진다면 재임을 노리는 오바마에 충분히 맞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젭 본인은 과연 대선 출마를 꿈꾸고 있을까. 플로리다주지사직에서 물러나면서 “상원의원이나 대통령직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현재 그의 진짜 속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은 항상 ‘노’라고 말해선 안 된다”라고 말하면서 살짝 가능성을 열어 두기도 했다. 또 한 번은 대선 출마 의향에 관해 묻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해둡시다.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말하면서 완강하게 부인하지는 않았다.
과연 젭은 공화당과 일부 유권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실추된 부시 가문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우선은 오는 11월 치러질 중간선거에서 그가 과연 자신의 말을 뒤엎고 상원의원에 출마할지에 미국인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