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학생 두 명은 ‘스파링’으로 가장해 학교폭력을 저질렀다. 태권도용 머리 보호대를 착용하게 하는 등 나름 스파링으로 보이도록 꾸며 놓았지만 경찰 수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자를 보내 위협을 가하고 협박한 정황이 다 드러났다. 이미지는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하다. 사진=일요신문DB
지난 11월 28일 저녁 A 군의 여동생은 “니네 오빠 나하고 스파링 하다 맞아서 기절했어”라는 문자를 받는다. 이날 A 군은 친구와 할 얘기가 있다며 외출했었다. A 군의 어머니는 딸에게 문자를 보낸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의 위치를 확인한 뒤 상태를 물었고, “자는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렇게 A 군의 어머니는 급히 인천의 한 아파트 체육시설을 찾았다.
현장에 도착하니 A 군은 아무 힘이 없이 축 늘어져 숨을 고르게 내쉬지 못하고 동공의 반응도 없었다. 의사 소견서에 따르면 당시 A 군의 상태는 ‘동공확장 및 동공반사저하’였다. 급히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갔다. 119 구급대원이 폭력사건으로 보이니 신고부터 하라고 얘기해 바로 신고가 이뤄졌다. 경찰이 응급실로 출동했고 A 군은 급히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A 군과 함께 체육시설에 있던 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고교생 두 명이었다. 이들은 체육시설에서 A 군에게 복싱을 가르쳐 주고 스파링을 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단지 스파링일 뿐 폭행이 아니라는 게 경찰 조사에서 이들의 주장이었다. A 군이 태권도용 머리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친구끼리 복싱 스파링을 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경찰 조사 과정에서 스파링이 아닌 폭행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해학생 두 명은 A 군에게 태권도용 머리 보호대를 착용하게 한 뒤 무려 1시간 동안 폭행했다. 사건을 담당한 인천 중부경찰서는 가해 학생 두 명을 중상해 혐의로 구속한 뒤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구속 사유에 대해 경찰은 “증거인멸 등의 이유”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피해 학생인 A 군의 어머니가 12월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잔인하고도 무서운 학교폭력으로 우리 아들의 인생이 망가졌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12월 16일 오전 기준 22만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잔인하고도 무서운 학교폭력으로 우리 아들의 인생이 망가졌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이 글을 통해 A 군의 어머니는 “가해 학생들은 일진이고 무서운 친구들이었다”며 “가해 학생들이 아들에게 새벽에 나오라고 며칠 동안 지속적으로 문자를 보내고 아들이 통금시간 때문에 혼난다고 계속 얘기하니 죽을 각오 하라고 그러고는 다음날인 11월 28일에 만나서 폭행을 당했다. 아들은 이미 맞을 걸 알고 나갔던 것”이라고 밝혔다.
가해 학생 두 명은 ‘스파링’으로 가장해 학교폭력을 저지른 것이었다. 태권도용 머리 보호대를 착용하게 하는 등 나름 스파링으로 보이도록 꾸며 놓았지만 경찰 수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자를 보내 위협을 가하고 협박한 정황이 드러났다. 더욱 충격적인 부분은 가해 학생들이 학교폭력 사건에 연루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A 군의 어머니는 청원 글에서 “가해 학생 둘 다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라며 “우리 아들 이전에 다른 피해자가 있었으나 변호사를 통해 큰 처벌 없이 무마된 걸로 들었다”고 밝혔다.
과거 학교폭력 사건을 취재하며 만난 서울 소재의 한 경찰서 소속 형사는 “실제로 이들이 그 전에도 학교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돼 변호사까지 선임해 사건을 해결했다면 그때 일종의 요령이 생겼을 수 있다”라며 “학교폭력을 행사하면서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복싱 스파링이라는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처럼 크게 다치지 않고 몇 군데 멍드는 수준이었다면 맞은 게 아니라 스파링을 했다고 말하라고 피해자들을 종용했을 수 있다. 이런 방식의 피해자가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섯 시간이 넘는 응급수술을 받은 뒤 A 군은 중환자실에 있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다. 진단명은 외상성경막하출혈, 간대성발작, 치아 앞니 4개 골절 등이다. A 군의 어머니가 청원글에서 “하루하루가 지옥”이라며 “우리 아들이 깨어나도 다시 온전하게 일반인처럼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예후가 더 많이 보인다”고 밝혀 많은 국민들은 안타깝게 했다.
게다가 가해 학생들은 A 군이 심각한 폭행을 당해 기절했지만 119도 부르지 않았다. A 군의 어머니는 “(가해 학생들이) 기절해 있는 아들을 그냥 두고 장난치고 놀고 한참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자 물을 뿌리고 이리저리 차가운 바닥에 끌고 다녔다고 한다”며 “골든타임도 놓치고 아들은 뇌손상이 크게 왔다”고 밝혔다.
A 군의 어머니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이유는 관련법 개정이다. A 군의 어머니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로만 끝이 나니 이런 일들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지르고 또 금방 풀려날 거라 생각할 테고 우리 아들 같은 피해자들은 계속 늘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 부탁의 글은 원문 그대로 옮긴다.
“기적이 일어나서 우리 아들이 깨어나고 온전하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폭력이 사라질 수 있게 국민 여러분 도와주세요. 관련법들을 만드시는 분들 제발 저희 아이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A 군 어머니의 청원 글은 단 하루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청와대 답변 요건을 갖췄다. 그만큼 A 군 어머니의 진정 어린 청원에 합당한 청와대 답변과 정부 대책이 나오길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또한 많은 이들이 A 군의 쾌차를 기원하고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