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처리되자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튿날인 12월 15일 국무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과 경찰법 개정안 법률공포안이 처리됐다. 경찰법 개정안에 따라 경찰은 조직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게 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뉘고 ‘국가수사본부’가 신규 설치된다. 동시에 국정원법 개정안에 따라 국정원이 갖고 있던 대공수사권은 3년 뒤 경찰로 이양될 계획이다.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거쳐 국무회의에서 처리되기 전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대공수사권 이양을 둘러싼 여야 시각차가 첨예했던 까닭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권력기관 개혁 3법’의 일환으로 국정원법 개정안 통과에 강력 드라이브를 걸었다. 국민의힘은 국정원법 개정안이 대공 시스템을 무너뜨릴 것이라며 반발했다. 12월 10일엔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시작되며 여야 공방이 뜨거워졌다.
외교부 출신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12월 11일 필리버스터 연단에 서서 “대공수사권은 북한의 간첩을 잡으려는 목적”이라면서 “하지만 (국정원법 개정안은) 북한 간첩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잡느냐가 아니라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꺼내기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조 의원은 “이렇다 보니 이관을 하는 쪽도, 받는 쪽도 준비가 안 돼 있다”면서 “(이 법은) 출발이 잘못됐다. 북한 간첩 잡는 일에 있어서 어떤 방식이 최선인지 따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국정원 출신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원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필리버스터에 임했다. 김 의원은 “일부 대공 전문가라는 분들은 독일 통일 후 조사하니 서독에 동독 간첩만 1만~3만 명이 암약했다며 국정원 수사권이 이관되면 대한민국이 간첩천국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면서 “그러면 서독이 망했느냐”고 반문했다. 김 의원은 “망한 국가는 동독”이라면서 “이미 체제 경쟁이 끝났기 때문이며 당시 서독과 동독 국력 차이가 5배 정도인데 한국과 북한의 차이는 30배가 넘는다”며 국정원법 개정안 찬성 취지를 설명했다.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국정원법 개정안 관련 필리버스터 현장. 사진=박은숙 기자
결국 국정원법 개정안은 여당이 원하는 대로 처리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야당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고 본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토스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법 개정안 법률공포안을 처리하면서 법 개정에 쐐기를 박았다. 당·정·청은 일사천리로 국정원 대공수사권 이관을 추진했다.
개정안에 대해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대공수사권 관련 인프라는 국정원에 그대로 있는데 책임만 경찰로 이양하면 부작용은 불보듯 빤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것을 일상적인 일화에 비유하자면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이 뛰던 경기에 아마추어 동아리 선수들을 투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게임에 뛸 권한을 줘도 실력이 없으면 능률이 떨어진다”면서 “5월 충남 보령에 중국인들이 보트를 타고 밀입국한 사건에서도 경찰이 실마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국정원이 사건 추적에 성공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이 사실상 기무사(현 국가안보지원사령부, 안보사)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안보사의 간첩 잡는 비율이 상당폭으로 감소했다”면서 “과거 대공용의자를 찾아내는 큰 축이었던 안보사가 최근 들어 간첩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안보사로 이름이 바뀐 기무사는 대공 용의자들을 잡을 만한 여력이 없다. 결국 기무사는 주변에 있는 장교들을 단속하는 역할과 방위산업체 비리를 추적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임무가 상당폭 축소됐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원이 간첩을 잡는 것보다 해외 스파이나 산업스파이 잡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국정원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런 현상에 간첩 잡는 인프라 자체를 와해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정보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돼도 국정원에겐 막대한 예산이 주어질 것이다. 그 돈을 어디에 쓰나. 결국 국정원이 기무사처럼 권한이 대폭 축소된 조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존재감은 미미한 채 예산만 비대하게 유지될 것이다.”
2010년대 초·중반 국정원과 기무사에 대공 용의자 첩보를 제공하던 한 첩보원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지적했다. 첩보원은 “최근 기무사나 국정원에서 간첩 잡던 대공 담당자들의 연락이 사실상 끊겼다”면서 “대공수사 인프라가 와해됐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첩보원은 “2010년대 중반부터 국정원 국내파트 약화 양상이 보였다”면서 “한 대공 용의자에 대해 간첩 신고를 했는데 그 간첩이 중국으로 건너갈 때까지 정보기관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결국 그 대공 용의자는 중국에서 ‘이중간첩’ 혐의를 적용받아 체포됐다. 우리나라에서 간첩으로 신고를 받고도 무사했던 사람이었다. 점점 간첩들이 활보하기 좋은 환경이 돼가고 있는 셈이다. 거의 연락이 끊긴 기무사 관계자들도 가뭄에 콩나듯 대공 용의자를 추적하긴 한다. 그때 그들이 경찰을 끼고 다닌다. 기무사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현 여권 내부엔 오랜 기간 정보기관 대공파트로부터 정치적으로 당했다는 의식이 팽배한 것으로 안다”면서 “그렇다고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겠다는 격이다. 대공수사 인프라 공유에 대한 계획 없이 수사권만 덜컥 경찰에 주겠다고 하면 대공수사 인프라는 몇 년 안에 무력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지원 국정원장. 사진=이종현 기자
경찰도 대공수사권 이관을 호재로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듯하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대공수사는 ‘독이 든 성배’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인력·정보·장비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수사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국회 정보위 의원실 관계자는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이관받은 뒤 겪을 난관을 수치를 바탕으로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10년 동안 잡힌 간첩 90%가 해외에서 신분을 세탁하고 들어오거나 해외와 연계돼 있다”면서 “국정원은 해외 정보 네트워크망이 촘촘하게 짜여 있는 반면 경찰은 국내에서만 수사권을 활용할 수 있다. 경찰이 해외에서 유입되는 간첩을 잡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답은 ‘절대 불가능’”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공수사권에 있어 경찰이 가지는 약점은 경찰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런 약점을 보완하려는 조치나 사전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다. 2019년 기준 국정원과 경찰이 대공수사권 이양과 관련한 협의를 한 전례가 없었다. 국정원이 대공수사 정보수집만 관할한다고 했을 때 그 정보수집 범위가 어느 정도까지인지도 합의된 사항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합의도, 국정원 내부 법률 검토도 미비한 상황이다.”
또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는 “경찰은 형사소추 기관인데 대공수사는 형사소추에 추가적인 옵션이 존재하는 특수한 영역”이라고 했다. 형사소추란 형사 사건에 대해 법원에 심판을 신청해 재판을 받는 일을 일컫는다. 그는 “형사소추만으론 효율적인 대공수사가 어렵다”면서 “그간 국정원이 간첩이나 혐의자를 잡으면, 그들을 활용해 ‘형사소추 면제’를 조건으로 역공작을 하는 방식으로 간첩의 큰 줄기를 캐내는 방식을 취해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사소추에 특수한 영역이 추가된다는 부분은 대공수사권을 가지고 있던 국정원의 특수한 권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간첩 혐의자 형사소추 면제를 조건으로 또 다른 간첩 무리를 잡거나 북한에 대한 핵심 정보를 빼내는 방식이다. 간첩 검거라는 단편적 시각이 아니라 간첩 조직 줄기 파악과 북한 핵심 정보 파악이라는 ‘고구마 줄기’를 캐내는 거다. 그러나 형사소추 이외에 다른 권한이 없는 경찰이 대공수사를 맡을 경우에 고구마 줄기를 캐는 경우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간첩 검거 비율 자체가 감소할 것이다.”
12월 15일 박지원 국정원장은 세간의 우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박 원장은 김창룡 경찰청장과 만나 “3년 뒤 대공수사권이 이관될 때까지 경찰이 사수가 되고 국정원은 조수가 될 것”이라면서 대공수사 인프라에 대한 적극적 공유를 암시했다. 박 원장은 “사이버수사 등 국정원 대공수사기법을 경찰에 모두 전수할 것”이라면서 “향후 수사 공조와 수사권 이관과 관련해 경찰 요구를 가급적 모두 수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 원장은 “일각에서 3년 뒤 (대공)수사권 이관이 다시 유예되거나 무산될 것이란 우려를 하지만 경찰과 공조·협의해 대공수사권이 차질 없이 이관되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박 원장에 따르면 국정원은 원활한 대공수사권 이관을 위해 내부 전담조직을 설치해 정기적으로 경찰과 소통할 방침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