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의 시작과 끝…관련자 2600여 명
시민단체가 N번방 가해자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N번방이 퍼져온 형태를 보면 마치 마인드맵과 같다. 하나의 방은 여러 개의 가지를 뻗어 수많은 방을 낳았다. 각 방의 운영자를 동경한 이용자들이 또 다른 방의 운영자를 자처했다. 수십 개에 이르는 N번방과 변종 N번방은 마치 촘촘한 거미줄과 같았다.
시작은 닉네임 ‘갓갓’의 문형욱(24)이다. 문형욱은 2017년 1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서 물색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성착취 영상을 찍게 하고 이를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유포하기 시작했다. 2019년 4월 일부 영상은 홍보를 위해 닉네임 ‘와치맨’ 전 아무개 씨(38)의 고담방에 유출됐다. 문형욱이 N번방을 통해 배포한 성착취 영상은 모두 3762개로 피해자는 50명 이상이다.
2019년 8월쯤 문형욱이 자취를 감춘 뒤 닉네임 ‘박사’ 조주빈(25)이 나타났다. 조주빈은 조직적이고 상업적으로 방을 운영했다. 입장료에 따라 ‘일반방’ ‘시민방’ ‘고액방’으로 그룹을 나누고 그 안에서도 회원의 계급을 구분했다. 규모가 커지자 조주빈은 공범을 모집해 조직적으로 방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2019년 5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운영한 방은 30여 개에 달한다.
이 밖에도 ‘태평양원정대’ ‘프로젝트n번방’ ‘이기야방’ ‘피카츄방’ 등 수많은 성착취 방이 생겼다 사라지며 피해자를 양산했다. 가해자들은 2019년 말부터 올해 상반기에 걸쳐 상당수가 검거됐다. 경찰에 따르면 지금까지 검거된 N번방 사범은 2600여 명에 달한다.
#조주빈 매일 쓰던 반성문 끊어
11월 26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이제는 처벌의 시간이다. 재판부는 11월 26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30년 동안의 전자발찌 부착, 15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준수, 그리고 암호화폐로 얻은 범죄수익금 약 1억 604만 원의 추징명령도 내려졌다. 검찰이 조 씨에 적용한 혐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강간미수·유사성행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강제추행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범죄단체조직 △강요 및 강요미수 △협박 △사기 △무고 등 14개다.
한편 조주빈은 매일같이 써내던 반성문을 더 이상 제출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주빈은 4월 13일 구속돼 5월 1일부터 주중이면 거의 매일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5월부터 11월 20일까지 조주빈이 제출한 반성문과 호소문은 약 129개에 이른다. 그러나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은 뒤로는 반성문이나 호소문을 제출한 내역이 확인되지 않았다.
문형욱의 1심 선고는 2021년으로 예정되어 있다. 문형욱에게 적용된 죄명은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음란물제작·배포(3762개)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유사성행위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강간 △강제추행 △특수상해(몸에 글씨 새기기) △아동복지법상 아동에 대한 음행강요·매개·성희롱 △협박 등 12개다. 검찰 추가 수사로 강제추행과 특수상해 등이 더 적용됐다.
법조계에서는 문형욱 역시 중형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결심공판에서 무기징역을 구형받았으며 조주빈의 판결에 비추어보면 N번방 창시자 문형욱에게 가벼운 형량이 내려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사안이 중대한 만큼 양형기준의 ‘감경’ ‘기본’ ‘가중’의 권고 영역 가운데 ‘가중’ 영역에서 형량 범위가 정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다만 문형욱에게 변수가 있다면 범죄단체조직죄(범단죄) 적용 여부다. 앞서 검찰 관계자는 “박사방 일당과 달리 문형욱과 공범들 사이에선 구체적 지휘체계나 지속적인 공모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범단죄 적용을 확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주빈 1심 선고 이후, 검찰이 문형욱의 공소장 변경을 앞두고 범단죄 적용을 검토할 수도 있으나 아직까지 정해진 바는 없다.
마정권 변호사는 “문형욱은 새로 만들어진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다만 법관들도 양형 기준을 참고하기는 할 것이므로 이를 기준으로 예상 형량을 계산해보면 문형욱의 최소 형량이 20년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년부터 시행되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제작의 경우 형량 범위는 7~13년, 아동청소년성착취물 배포의 경우 4~8년이다. 문형욱의 죄목이 여러 개라 이를 합산하게 된다. 양형위원회의 다수범죄처리기준에 따르면 형량 범위가 가장 높은 범죄의 형량을 기준으로 하되 다음으로 높은 범죄 형량의 2분의 1, 그 다음의 3분의 1을 합산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문형욱의 형량을 계산해보면 최소 20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양형기준의 특별가중인자를 따져보면 형량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마 변호사는 “각 범죄의 형량 상한은 특별가중인자로 인해 각 1.5배씩 가중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대략 31년 정도의 계산이 나오는데 40년이 선고된 조주빈 판결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면 문형욱에게는 최소 20년 최대 35년 정도의 형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마 변호사는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그는 “양형기준을 따르는 사례더라도 형량 상한이 25년 이상일 경우 법관이 무기징역을 선택할 수 있다. 또 얼마 전 의결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서 성착취물 제작의 ’다수범‘ 및 ’상습범‘의 형량 상한은 29년 3개월로 정해졌을 뿐만 아니라, 실제 양형기준이 적용되는 사례도 아니라는 점에서 여전히 무기징역을 선고할 가능성은 남아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어도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숨어있는, 부인하는 N번방 공범들
조주빈 선고에 이어 N번방 창시자 문형욱의 형량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N번방이 단지 조주빈과 문형욱 두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 방에는 수많은 동조자가 있었다. 문제는 그 행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숨어있는 공범들의 자기 변호는 더욱 대담했다.
조주빈의 공범으로 성착취물 제작유포와 자금전달을 맡았던 ‘부따’ 강훈(19)은 신상공개 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걸었다. 법원이 이를 기각했으나 뒤이어 위헌법률심판제청도 신청했다. 현재 강훈은 헌법재판소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범행도 부인하고 있다. 강훈은 성착취물 배포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범죄에 가담한 부분이 전체에 비춰보면 다소 적다”며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12월 8일 결심 공판에서 강훈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거제시청 공무원이었던 천 아무개 씨(29)도 11월 20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외국에서는 영상 촬영에 합의한 경우 처벌을 배제하는 규정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한 모든 경우를 처벌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합의만 하면 미성년자와도 음란물을 찍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미다. 천 씨는 미성년자인 피해자들과의 성관계를 촬영하고, 그들에게 음란물을 촬영하게 시키고, 피해자들에게 음란한 글과 영상을 전송한 혐의 등을 받는다. 재판부는 천 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한편 문형욱의 후계자라고 불렸던 닉네임 ‘켈리’ 신 아무개 씨는 징역 1년, ‘와치맨’ 전 씨는 징역 7년, ‘로리대장태범’ 배 아무개 씨는 장기 10년, 단기 5년을 선고받아 범죄에 비해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텔레그램 감시 심해져, 떠나자”
N번방 사건 이후로도 텔레그램에서는 한동안 음란물 공유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관련기사 n번방 그후…“거미한테 부탁해” 텔레그램 음란물방 또 생겼다). 특히 ‘거미방’ ‘나노방’ ‘케이방’ 등에서 미성년자의 불법촬영물과 음란물 등이 유포되었으나 언론 보도 이후 모두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음란물 유포방이 사라지자 해당 방 이용자들은 “텔레그램의 감시가 너무 심해졌다. 경찰·기자·페미니스트가 많아졌다”며 “(음란물은) 다른 데서 찾자”고 말하기도 했다.
요즘 미성년자의 성착취 통로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곳은 온라인 개인 방송 플랫폼이다. 미성년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고민상담이나 칭찬 등으로 친밀감을 형성한 후 취약점을 이용해 성적 행위를 요구하는 ‘그루밍’ 형태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협박이나 강요로 시작되는 N번방 범죄와는 또 다른 주의가 요구되는 셈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2월 7일 인터넷 방송 BJ A 씨(27)를 성폭력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A 씨는 평소 자신의 방송을 즐겨보던 미성년자를 메신저로 유인해 3차례 성추행·성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온라인 플랫폼에서 친분을 쌓은 청소년에게 음란물을 찍어 보내도록 하고 성매매를 강요한 20대 남성 B 씨도 10월 구속됐다. B 씨는 영상 유포 협박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미성년자가 그루밍 피해를 입었을 경우 콕 집어 단죄할 수 있는 처벌 조항은 아직까지도 없다. 형법 제305조에 따르면 만 13세 미만의 상대를 간음 또는 추행한 자는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상대가 만 13세 이상이면 미성년자라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는 가해자의 주장이 법정에서 인정될 수 있다. 성착취는 매 순간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지난 6월 국회에서 온라인에서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유인하거나 권유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온라인 그루밍 행위 처벌 법안이 발의됐으나 아직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